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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인기 가수 현인, 1970년대 美 이민 간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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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에서 찾았다 오늘 별이 된 사람]

2002년 4월 13일 83세

가수 현인

1974년 55세 ‘노장 가수’ 현인(1919~2002)은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현인의 이민은 다소 충격적인 소식으로 받아들여졌다.

“‘신라의 달밤’ ‘굳세어라 금순아’ 등의 많은 히트곡으로 올드팬의 기억에선 지워질 수 없는 노장 가수 현인씨가 미국으로 이민을 가기 위해 최근 보사부에 이민 신청을 냈다. 떠나는 날짜는 아직 미정이라고. 작년에는 ‘연락선’ 등으로 유명한 장세정씨가 이민 간 바 있다. 가요계의 산 증인들은 우리 곁을 자꾸 떠나고 있다.”(1974년 2월 7일 자 8면)

현인 이민 신청. 1974년 2월 7일자 8면.

현인의 미국 이민 소식이 전해진 이튿날 조선일보 기자는 칼럼 ‘기자수첩’에서 안타까운 어조로 유명 인사의 이민이 이어지고 있다고 적었다.

“그간 정치인 김상돈, 배우 천선녀, 가수 장세정씨 등 낯익은 얼굴들이 미국·일본 등지로 건너갔다. 잡문이라면 코방귀를 뀌던 이색 작가 손창섭씨도 최근 가족 방문 형식을 취해 일본으로 사실상의 이민길에 올랐고, 흘러간 노래 ‘신라의 달밤’을 불렀던 가수 현인씨도 미국으로 가기 위해 절차를 밟고 있다. 물론 여류 작가 장덕조씨처럼 해외 이주에서 되돌아온 케이스도 있긴 하지만, 정말 많이 갔구나 하는 실감이 든다.” (1974년 2월 8일 자 3면)

현인과 임근식 경음악단 광고. 1949년 5월 29일자 2면.

현인은 해방 이후 10년간 여러 히트곡을 낸 정상급 인기 가수였다. ‘신라의 달밤’(1947)을 비롯해 ‘고향 만리’(1949), ‘럭키 서울’(1949), ‘베사메무초’(1949), ‘비 내리는 고모령’(1949)이 잇달아 히트했다. 6·25전쟁을 전후한 시기에도 ‘서울 야곡’(1950), ‘전우여 잘 자라’(1950), ‘굳세어라 금순아’(1953), ‘꿈속의 사랑’(1956) 등 다수 히트곡을 불렀다.

현인과 경음악단 창립 대공연. 1951년 11월 18일자 2면.

1970년대에 사정이 달라졌다. 현인은 위 기사 표현처럼 ‘흘러간 노래’를 부른 ‘노장 가수’로 여겨졌다. 당시 포크 음악이 대세였다. 이장희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송창식 ‘피리 부는 사나이’, 김정호 ‘이름 모를 소녀’ 등이 인기를 끌었다. 현인은 이미 ‘가요계의 산 증인’이 되었고, 노래할 무대는 좁아졌다.

미국 이민은 아주 오래 가지는 않았다. 간간이 귀국해 노래를 부르다가 7년 후인 1981년 영구 귀국했다. KBS가 마련한 특별 무대에 섰다.

1975년 2월 15일자 4면.

“일요일 저녁 6시 35분 제1TV ‘KBS특선’은 가요계 원로 현인의 특별 무대로 꾸민다. 대중과 애환을 나누며 40여 년간 활동해 온 현인이 출연, ‘신라의 달밤’ ‘고향 만리’ ‘비 내리는 고모령’ ‘럭키 서울’ ‘꿈이여 다시 한번’ ‘굳세어라 금순아’ 등 추억의 가요를 들려주고 당시의 사회상과 노래에 얽힌 일화들을 이야기한다.”(1981년 10월 25일 자 12면)

1960년대 이후 태어난 세대는 현인을 주로 KBS ‘가요무대’에 선 모습으로 기억한다. 1985년 11월 첫 방송을 시작한 ‘가요무대’는 현인을 비롯한 옛 가수들의 인기에 다시 불을 붙였다.

1989년 2월 5일자 8면.

“60대 이상의 노인 가수층이 한국 가요계의 한 ‘세력’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 ‘눈물 젖은 두만강’의 김정구(73)를 비롯, ‘신라의 달밤’의 현인(71), ‘홍도야 우지 마라’의 김영춘(72), ‘선창’의 고운봉(70), ‘차이나타운’의 백설희(63), ‘강남제비’의 신카나리아(72), ‘알뜰한 당신’의 황금심(66) 등이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1989년 2월 5일 자 8면)

현인은 팔순에 접어든 1998년 극장쇼를 재현한 연극 무대에도 섰다. ‘제2의 전성기’라는 말이 나왔다.

1998년 5월 16일자 17면.

“우리 나이로 여든. ‘신라의 달밤’으로 이름난 가수 현인씨는 요즘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60년대 극장 쇼를 재현한 ‘그때 그 쇼를 아십니까’(배해일 연출)를 통해서다. 하루 두 차례씩 그는 무대에 서서 ‘신라의 달밤’ ‘굳세어라 금순아’ ‘비 내리는 고모령’ 등 히트곡을 번갈아 부른다. 막간극 ‘초친 술’에서는 갓 쓰고 수염 붙인 이방으로 나서 코믹 연기까지 불사한다. 2천명이 들어가는 정동이벤트홀은 지난 7일부터 빈 좌석이 거의 없다.”(1998년 5월 16일 자 17면)

대한민국 정부 수립 50주년을 맞은 1998년 ‘가수 베스트 50’을 꼽은 설문에서 현인은 8위에 올랐다. 1~7위는 조용필·이미자·나훈아·서태지·남인수·배호·패티김, 9위 김정구, 10위 남진이었다.

2025년 5월 24일자 B9면.

인문학자 전봉관 KAIST 교수는 현인을 “진정한 국민 가수”로 평가했다.

“해방의 기쁨, 분단과 이산의 아픔, 6·25전쟁 승리에 대한 의지를 노래했던 진정한 ‘국민 가수’ 현인은 음악 인생 60년 동안 1000곡 이상의 노래를 발표했다. 2002년 세상을 떠난 이후로도 그가 남긴 수많은 명곡은 후배 가수들이 다시 부르고 있다. ‘한국인이 사랑한 노래’를 꼽을 때 그의 곡이 빠지는 법이 없다.”(2025년 5월 24일 자 B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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