⑦ 멕시코와 싸워 태평양 진출
정착민들의 텍사스 알라모 항전 후
포크 대통령, 캘리포니아 등 정복
하지만 힘으로 다 해결할 순 없어
케네디의 쿠바 위기 해법도 배우길
미국은 올해 탄생 250주년을 맞았다. 1776년 독립 이후 미국의 영토는 약 11배 확대됐고 인구는 135배 폭증했다. 세계 제1 경제력을 갖춘 건 100년 전이다. 영국인들이 세운 식민지는 어떤 과정을 거쳐 이런 기적을 이뤘을까? 미국과 세계가 중대한 변곡점에 선 지금이야말로 그 역사를 통해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대비해야 할 시점이다. -편집자 주
1836년 3월 6일 새벽 멕시코군이 샌안토니오의 알라모 요새를 총공격하자 수적으로 열세에 몰린 텍사스 방어군이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 이 공격으로 텍사스 방어군이 전멸하면서 13일간 이어진 알라모 전투는 멕시코군의 승리로 끝났다. /텍사스 기록보관위원회(TSLAC)
미국과 이란의 전쟁이 7주차에 접어들었다. 종전 협상이 결렬된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선언했다. 전쟁은 다시 시계 제로 상태에 빠졌고, 세계는 미국의 다음 행보에 주목하고 있다. 그 사이에 미국은 달 탐사선 아르테미스 2호를 발사했고, 우주비행사들은 임무를 마치고 지구로 귀환했다. 중동에서는 치명적인 전쟁을 벌이고 있지만, 미국 본토에서는 미래를 향한 도전과 평화로운 일상이 이어지고 있다.
이 두 가지가 어떻게 양립될 수 있을까? 가장 큰 이유는 전쟁터가 외국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1812년 미영전쟁과 1861~1865년 남북전쟁을 제외하면, 자국 본토에서 전쟁을 벌인 적이 없다. 또 다른 이유는 미국은 전쟁을 통해 탄생했고 전쟁을 통해 성장했다는 점이다. 미국과 미국인은 어느 나라보다 전쟁에 익숙하다. 오늘날 미국에서 가장 중요하면서 미국의 미래를 상징하는 텍사스와 캘리포니아 역시 전쟁을 통해 차지했다.
미국인들, 멕시코 땅으로 몰려들다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이 프랑스로부터 미시시피강 서쪽의 광활한 땅을 매입한 지 20여 년도 지나기 전에 미국인들은 새로운 땅을 찾아 나섰다. 욕망을 충족시킬 만한 땅이 남부와 서부에 펼쳐져 있었다. 오늘날의 텍사스와 캘리포니아였다. 그 땅의 주인인 스페인 제국은 당시 취약하기 짝이 없었고, 주민도 거의 없었다. 미국 정부는 1820년대에 두 차례에 걸쳐 텍사스를 사들이려 했으나 실패했다.
하지만 민간은 포기하지 않았다. 소수의 이민자들이 스페인 정부로부터 허가를 받아 텍사스로 들어갔다. 1821년 스페인 제국으로부터 멕시코가 독립하면서 텍사스 관할권도 신생 멕시코 정부로 넘어갔다. 그러자 이민이 더 적극적으로 이뤄졌다. 가장 성공적인 사례는 미주리 주에서 온 젊은 스티븐 오스틴이었다. 그를 중심으로 이민자 수백 명이 모여 최초의 합법적 미국인 정착지가 건설됐다. 이민자들이 늘어나자 위기감을 느낀 멕시코 정부는 이민을 금지시켰지만 불법 이민은 계속됐다.
오늘날과는 정반대의 상황이었다. 그 결과 1830년대가 되면서 텍사스에 거주하는 미국인 수가 7000명으로 멕시코 인구의 2배를 넘어섰다. 미국인과 멕시코인 사이에 갈등이 고조됐다. 결국 충돌로 치닫자 미국인 정착민들은 1836년 과감하게 멕시코로부터 독립을 선포했다.
텍사스군이 끝까지 저항한 알라모 요새 안 전도소 건물. /게티이미지코리아
포크 대통령 “대서양에서 태평양까지”
당시 멕시코의 독재자 산타 안나 장군은 대군을 이끌고 텍사스로 진군했다. 소수의 미국인들은 오늘날 샌안토니오 인근의 알라모 요새에서 13일 동안 용감히 항전했으나 결국 전멸했다. 미국인들의 반란은 실패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샘 휴스턴(1793~1863) 장군이 산하신토 전투에서 멕시코 군대를 격파하면서 판세가 뒤집혔다. 산타 안나는 텍사스의 독립을 허용하는 조약에 서명할 수밖에 없었다.
텍사스 공화국을 선포하고 휴스턴을 대통령으로 뽑은 뒤, 텍사스는 바로 워싱턴으로 대표를 파견해 미 연방 가입을 제안했다. 기대와 달리 미국 정부는 이를 거절했다. 노예제도가 허용된 텍사스가 가입함으로써 연방 내 자유주와 노예주 사이에 불거질 갈등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텍사스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됐다.
그러나 제임스 포크(1795~1849) 대통령이 등장하면서 돌파구가 마련됐다. 링컨만큼이나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낸 포크는 테네시 주에서 정치인으로 성장했다. 연방 하원의장과 테네시 주지사를 지냈지만 전국적인 인물은 아니었다. 그런 포크를 민주당 대선 후보로 만든 건 “미국은 대서양에서 태평양까지의 땅을 차지해야 한다”는 공약이었다. 그러려면 텍사스와 캘리포니아는 물론이고, 영국과 경합 중인 오리건 지역(오늘날의 워싱턴주와 오리건주)도 차지해야 했다.
미 제11대 대통령 제임스 포크 /미 국립초상화미술관
멕시코를 상대로 벌인 전쟁
포크는 전쟁을 불사하면서 그 비전을 이루고자 했다. 한 번의 임기만 수행한 그에게 중요한 건 몇 년을 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했느냐였다. 포크의 공약은 당시 확산 중이던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에 열광하던 미국인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포크는 대선에서 전국적 인지도를 가진 헨리 클레이를 상대로 승리했다.
약속대로 그가 취임한 해에 텍사스는 미국의 한 주가 되었다. 멕시코 정부는 즉각 미국과 외교 관계를 단절했다. 전운이 고조됐다. 포크 대통령은 텍사스로 육군을, 캘리포니아로 함대를 파견했다. 작은 충돌을 핑계로 미국은 1846년 5월 13일 멕시코에 전쟁을 선포했다. 멕시코시티를 향해 진군하는 동시에 뉴멕시코와 캘리포니아로도 쳐들어갔다. 전쟁은 미국의 압도적인 우세 속에 진행됐다. 캘리포니아는 그해 가을 정복됐다. 1년 후에는 미군이 멕시코의 수도에 입성함으로써 전쟁이 끝났다.
남부의 열렬한 팽창주의자들은 ‘멕시코 전부(All Mexico)!’를 외쳤다. 노예제 확산을 우려한 노예제 반대론자들이 막아섰다. 미국은 멕시코와의 전쟁을 통해 텍사스 공화국의 연방 가입을 공인받고, 캘리포니아와 뉴멕시코를 차지했다. 비슷한 시기에 포크 대통령은 영국을 압박해 오리건 문제도 해결했다. 오늘날 미국과 캐나다의 서부 국경선은 이때 확정된 것이다.
이렇게 미국은 대서양에서 태평양에 이르는 북미대륙의 중심부를 차지했다.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 미국의 DNA는 그때부터 뿌리내린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든 문제를 힘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20세기 냉전 이후 미국의 여러 전쟁은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전쟁은 막대한 재정 적자의 원인이 되고, 미국 고유의 매력 자산을 훼손하고 있다.
1962년 케네디 대통령은 쿠바 미사일 위기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당시 케네디는 소련과 미국 양측의 강경파를 상대로 절제의 용기를 발휘함으로써 인류를 핵전쟁의 위기에서 구해냈다. 지금 트럼프 대통령에게 필요한 건 ‘전쟁을 멈출 수 있는 더 큰 용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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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독일 외무장관 아르투어 치머만이 멕시코 주재 독일 대사에게 "멕시코가 독일과 군사 동맹을 맺으면 미국 영토를 멕시코에 떼어주겠다"고 보낸 암호 전보. /미 국립문서보관소(NARA)
멕시코가 잃은 땅 되찾을 뻔했는데...
1차 대전 때 ‘치머만 電文’ 사건
역사는 돌고 돈다. 변하지 않는 유일한 법칙은 ‘반드시 변한다’는 사실뿐이다. 한 나라의 땅이던 영토도 여러 이유로 주인이 바뀐다. 특히 인접 국가 간에 영토를 빼앗긴 경우, 원주인은 결코 그 사실을 잊지 않고, 이런 역사적 상처는 분쟁의 불씨가 된다. 평화가 유지되는 것은 대체로 빼앗긴 나라에 되찾을 힘이 없기 때문이다.
멕시코도 그런 처지였다. 텍사스와 캘리포니아라는 광활하고 비옥한 땅을 사실상 미국에 강탈당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두 나라 간 국력 격차가 벌어지니 되찾을 방법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역사 속에서 딱 한 번 실지(失地) 회복의 기회가 있었다. 1차 세계대전이 터진 후, 수세에 몰린 독일 수뇌부가 미국이 영국·프랑스 등 연합국 편에 설 것을 예상하고 멕시코에 손을 내민 것이다.
독일 외상 아르투르 치머만은 1917년 초 멕시코 정부에 전문(電文)을 보내 “독일이 미국과 전쟁을 하게 될 경우, 멕시코와 독일이 손을 잡고 미국에 대항하자”고 제안했다. 그 대가로 전쟁이 끝난 뒤 멕시코에게 미국에 빼앗겼던 텍사스, 뉴멕시코, 애리조나 지역을 되돌려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이 치머만 전문은 영국에 의해 가로채져 미국에 전달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미국 내 여론은 이로 인해 크게 악화되었고, 결국 미국은 1917년 4월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독일을 상대로 승리를 거뒀다. 멕시코가 빼앗긴 영토들은 미국 땅으로 영원히 남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