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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때 납북 배우 최은희, 홍콩서 또 납북… 8년 만에 극적 탈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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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에서 찾았다 오늘 별이 된 사람]

2018년 4월 16일 92세

마릴린 먼로와 함께… 1954년 2월 주한미군 위문 공연차 대구 동촌비행장에 도착한 미국 영화배우 마릴린 먼로(오른쪽)가 환영행사에서 최은희씨와 활짝 웃고 있는 모습. 군복을 입은 먼로가 한복을 입은 최씨의 팔짱을 끼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1950~70년대 스타 영화배우 최은희(1926~2018)는 1978년 1월 14일 영화 제작 협의차 방문한 홍콩에서 행방불명됐다. 투숙한 호텔 방에 옷과 화장품 등 짐을 그대로 둔 채였다. 실종 사실은 20여 일 지난 2월 6일 알려졌다.

“영화배우 최은희(52·본명 최경순)씨가 홍콩에서 행방불명됐음이 6일 가족들 신고로 밝혀졌다. 영화 제작자이기도 한 최씨는 한·홍콩 합작 영화 제작 협의차 지난달 11일 홍콩에 가 20일 귀국 예정이었으나 1월 14일 이후 호텔에 짐을 둔 채 소식이 끊겼다. 한국총영사관과 현지 경찰은 ①북괴 또는 홍콩의 제3 집단에 의한 납치 ②교통사고 등 사고 또는 강도 등 범죄에 의한 실종 등의 각도에서 수색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1978년 2월 7일 자 7면)

1978년 2월 7일자 7면.

도피·자살 가능성도 제기됐다. 그러나 경찰은 “사생활 채무 및 친교 관계를 조사한 결과 별다른 용의점이 없어 개인 사정으로 도피했거나 자살할 가능성은 거의 희박하다”(1978년 2월 10일 자 7면)고 판단했다.

7개월여 수사 끝에 북한 소행으로 결론을 냈다. 검찰은 최은희 사건 관련자로 구속 기소한 전 신(申)필름 홍콩 지사장 김규화에게 반공법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1978년 9월 21일자 7면.

“김(金) 피고인에게 반공법과 국가보안법이 적용된 것은 최은희씨가 북괴에 납치됐음을 검찰이 인정한 것이다. 서울형사지법 합의11부(재판장 한정진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공판에서 정 검사는 “김 피고인이 반국가 단체인 북괴의 지령을 받고 있는 이상희 여인을 도와 최은희씨를 유인하는 데 필요한 초청장 작성 등에 가담한 혐의를 벗기 힘들다”고 말하고 (…)”(1978년 9월 21일 자 7면)

최은희의 전 남편 영화감독 신상옥도 그해 11월 홍콩에서 실종됐다. 1954년 신상옥과 결혼한 최은희는 1976년 이혼했다.

1984년 4월 2일자 호외 1면.

“신씨는 지난 7월 18일 이후 행방이 묘연한데, 그의 여권은 8월 9일 자로 기간 만료됐다. 신씨는 최은희씨가 실종됐다는 소식을 들은 직후 미국에서의 영화 사업을 이유로 출국, 홍콩을 들렀다가 미국·일본·프랑스, 다시 홍콩 등을 전전하며 기자회견을 갖기도 했었다. 그는 ‘곧 귀국하겠다’는 말을 여러 번 했으나 무슨 이유에선지 귀국하지 않아 왔고 한때는 일본에서 잠적했다는 소문이 있었다.”(1978년 11월 3일 자 7면)

두 사람이 납북됐다는 사실은 실종 6년이 지나서야 공식 확인됐다. 국가안전기획부는 1984년 4월 2일 둘의 납북 사실을 발표했다.

1984년 4월 3일자 1면.

“국가안전기획부는 78년 홍콩에서 실종된 것으로 알려졌던 영화배우 최은희(58)와 남편인 영화감독 신상옥(60)이 북괴 김정일의 지령으로 강제 납북됐으며, 그동안 베일에 가려진 채 북한에서 김일성 부자의 우상화 작업에 강제 동원돼 왔다고 2일 발표했다. 안전기획부는 또 북괴는 최근 안팎으로 처해 있는 곤경을 타개하고 국제사회에서의 지위를 회복하기 위해 최은희·신상옥이 의거 입북한 것처럼 허위 조작하려 하고 있고, 두 사람을 통해 대남 모략 공작을 은밀히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1984년 4월 2일 자 호외 1면)

북한 김정일은 최은희 납북을 직접 지시한 사실이 드러났다. 김정일은 1년 전 배우 윤정희와 피아니스트 백건우 부부를 납치하려다 실패한 책임을 물었다. 최은희 납치 후 공작선을 타고 입항하는 그녀를 김정일이 황해도 해주 부두에 나가 맞이하고 전용차 벤츠에 태워 평양까지 동행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1986년 3월 18일자 3면.

최은희는 북한에서 신상옥이 감독한 영화 ‘탈출기’ ‘사랑 사랑 내 사랑’ 등에 주연으로 출연했다. 1985년 영화 ‘소금’으로 모스크바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신상옥은 납치 직후 4년간 수용소에 갇혀 있다가 최은희와 재회했다. 김정일의 지시에 따라 영화를 제작해 신임을 얻었다.

최은희와 신상옥은 1986년 북한을 극적으로 탈출했다. 그해 3월 13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북 감시인을 따돌리고 미국 대사관에 뛰어들었다. 8년 만의 탈출이었다. 둘은 앞서 북에서 부부로 재결합했다.

“최·신 부부는 12일 밤 그들이 늘 체재하던 헝가리의 부다페스트를 떠났으며, 빈에 도착해서는 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1박했다. 이들 부부는 이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은 후 미행하는 감시원을 따돌린 후 미 대사관에 망명을 요청했으며 망명 희망지는 미국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1986년 3월 18일 자 3면)

최은희는 미국에서 살다가 1999년 영구 귀국했다. 21년 만의 완전한 귀향이었다. 84세 때인 2010년 조선일보 기획 ‘나와 6·25’ 기고에 썼다. 6·25전쟁 때도 납북됐다가 극적으로 탈출했던 경험, 두 번째 납북과 탈출 등 영화 같은 이야기를 회고했다.

2010년 5월 10일자 A6면.

“다른 이의 삶을 연기하는 영화배우로 살았지만, 내가 살아온 길 자체가 한 편의 영화가 됐다. 나는 분단 국가의 유명 배우라는 이유로 인생의 전환기마다 타의에 의해 고난을 겪어야 했다.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은 2006년 세상을 떠난 남편 신상옥 감독을 추모하는 일에 전념하면서 내 뜻대로 살고 싶다.”(2010년 5월 10일 자 A6면)

2018년 4월 17일자 A13면.

최은희는 1947년 영화 ‘새로운 맹서’로 데뷔했다. 첫 남편인 촬영 감독 김학성과 이혼하고 1954년 신상옥과 재혼 후 23년 동안 130여 편 영화를 찍었다. ‘꿈’(1955) ‘지옥화’(1958) ‘춘희’(1959) ‘로맨스 빠빠’(1960) ‘성춘향’(1961)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1961) ‘로맨스 그레이’(1963) 등이다. 납북 후 북에서 찍은 영화 17편에도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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