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 광역단체장을 다 탈락시킨 자신감
수도권 정원오·추미애·박찬대는 최약체
승리 확률 높지만 몇 가지 변수가 있다
‘내란 청산' 프레임에 국민 피로감 누적
범죄 연루 인사들 출마는 선을 넘은 것
절제 안 하면 민심은 오만한 권력 심판
일러스트=이철원
민주당 현역 광역단체장이 모두 공천에서 탈락했다. 이번 지방선거는 민주당 현역 단체장 없이 치르는 첫 선거다. 자신감일까 무모함일까. 아마도 자신감일 것이다. 그 과정에서 마치 날릴 기회를 기다렸다는 듯 김관영 전북도지사를 속전속결로 제명했다. 당 대표를 지낸 6선 추미애에게 여성 가산점을 주는 핸디캡을 안고 싸운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패배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현역 광역단체장이 모두 생존했다. 이정현 공관위원장이 컷오프시키려던 박형준 부산시장도 경선에서 살아남았다. 오세훈 서울시장과 (거의 죽었다가 살아난) 김영환 충북도지사도 이긴다면 현역 단체장이 모두 재공천받게 된다. ‘전원 재공천’은 궁여지책이다. 구도에서 크게 밀리는 국민의힘은 인물 경쟁력으로 맞설 수밖에 없다. 어쨌든 선거는 ‘전원 배제’와 ‘전원 재공천’ 전략이 맞붙는 모양새다. 어느 쪽이 웃을까.
민주당은 ‘AGAIN 2018’을 확신하는 것 같다. 낙관적 전망이 민주당을 지배한다면 국민의힘은 비관적 전망이 지배하고 있다. 대구마저 내주고 경북만 지킬 수도 있다는 극단적 공포도 있다. 그렇게 된다면 열린우리당이 전북도지사 한 곳만 이긴 2006년 지방선거를 재연하는 셈이다. ‘친노’와 ‘반노’의 극심한 분열 결과다. 국민의힘도 그 못지않은 분열 상태다.
비교 대상은 역시 2018년 지방선거다. 대통령 탄핵 1년 뒤 야당으로 맞은 선거라는 점에서 지금과 비슷하다. 적폐 청산과 내란 청산으로 인해 ‘야당 심판’ 프레임이 ‘정권 심판’ 프레임을 압도하는 상황도 닮았다. 대통령 직무 수행 평가도 긍정이 부정을 압도하고 있다. 긍정 평가가 55%를 넘고 부정 평가가 35% 밑이면 구도가 인물과 이슈를 지배한다. 지난주 갤럽 조사에서는 67% 대 24%였다. 정당 지지율도 48% 대 20%이다. 2018년과 비슷한 흐름이다. 그렇다면 결과도 2018년에 수렴할까.
6.3 지방선거 더불어민주당 수도권 광역단체장 후보들이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 앞 벤치에서 원팀 간담회를 갖고 있다. 이날 정원오 서울시장 후보, 추미애 경기지사 후보, 박찬대 인천시장 후보는 지방선거 승리를 위한 공동 결의문을 발표했다. /박성원 기자
그런 예측이 합리적이지만 아직 몇 가지 변수가 있다. 첫째, 이재명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 실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지율 상단이 85%, 윤석열 대통령은 55%, 이재명 대통령은 65%로 추정됐다. 콘크리트 비토층을 감안한 수치다. 최근 조사에서 이재명 대통령 직무 수행 긍정 평가가 65%를 넘어 69%까지 치솟았다. 다소 이례적이다.
세 가지 가설이 있다. ①국정 능력에 대한 신뢰와 주가 상승에 힘입어 ‘뉴이재명’이라 불리는 새로운 지지층이 유입되었을 가능성 ②국민의힘 지도부에 강력한 경고를 보내기 위한 일부 중도 보수층의 역선택 가능성 ③민주당이 치열한 경선 중이라 여론조사에 예민하게 반응한 민주당 지지층 과표집 가능성이다. 가능성의 크기는 ③①② 순이다.
한국갤럽이 세계일보 의뢰로 실시한 광역단체장 10곳(서울·경기·인천·부산·강원·대구·대전·충북·충남·경남) 조사 중에 민주당 김경수 후보 44%, 국민의힘 박완수 지사 40%로 나온 경남도지사는 민주당이 승리를 낙관할 수 없다. 지지율 격차가 15% 내외인 강원·부산·서울·인천도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왼쪾)과 정원오 전 성동구청장. /뉴스1
둘째, 인물 경쟁력이다. 정원오·추미애·박찬대로 짜인 민주당 수도권 라인업은 역사상 최약체다. 현역 단체장도 없고 대권 주자도 없다. 2022년 송영길(서울)·김동연(경기)·박남춘(인천)과 비교해도 무게감이 떨어진다. 박남춘은 현역이었다. 2018년에는 박원순(서울)·이재명(경기)·박남춘(인천) 라인업이었다. 박원순은 현역 서울시장이었다. 2014년에는 박원순(서울)·김진표(경기)·송영길(인천)이었는데 박원순과 송영길 모두 현역이었다. 친노의 부활을 알린 2010년에는 한명숙(서울)·유시민(경기)·송영길(인천)의 친노 라인업이다.
1995년 조순(민주당)·정원식(민주자유당)·박찬종(무소속)이 맞붙은 이래로 서울시장 후보는 대권 주자·당대표·국무총리·장관급 몫이었다. 구청장 출신은 처음이다. 게다가 상대는 5선에 도전하는 오세훈 시장이 될 가능성이 크다. 확실히 체급 차이가 있다. 전국 선거를 이끌 만한 야전 사령관이 보이지 않는다. 모두 각개 약진이다. 물론 인물 경쟁력이 다소 떨어져도 압도적으로 유리한 구도에서 싸우니까 승리 가능성은 여전히 높다.
민주당이 가장 경계해야 할 셋째 변수는 구도의 변화 가능성이다. 민주당은 ‘내란 청산’ 프레임이 지속될 것이라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눈치다. 국민의힘 지도부를 보면 그런 생각을 할 만도 하다. 미국을 방문 중인 장동혁 대표와 김민수 최고위원이 미국 의사당을 배경으로 찍어 올린 사진은 어이없을 정도로 민망하다. 지도부가 그 지경이니 국민의힘은 조롱과 경멸의 대상이다.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윤석열 정권 정치검찰 조작기소 의혹 사건 진상규명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제8차 전체회의에서 열린 대장동·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위례신도시 조작기소 의혹 사건 청문회에 이원석 전 검찰총장이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남강호 기자
그러나 식품에 유통 기한이 있듯 ‘내란 프레임’도 유통 기한이 있다. 대선 이후 1년간 지속된 ‘내란 청산’에 대한 누적된 피로도가 임계점을 넘으면 폭발할 수도 있다. 2심까지 유죄를 받은 대통령 최측근이 노골적으로 공천을 요구한다.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공소 취소’를 목표로 한 국정조사도 진행 중이다. 쌍방울 대북 송금을 수사했던 박상용 검사는 연일 조리돌림당하고 있다. 금품 수수 의혹을 받은 사람이 출마하고 당은 공천을 주고 수사 기관은 바로 불송치했다. 2차 종합 특검 특검보는 김어준 뉴스공장의 코너 중 하나인 ‘정준희 눈’에 출연해 수사 관련 내용을 공개했다. 모두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다.
민주당은 권력에 취했다. 국민은 오만한 권력은 반드시 심판한다. 권력은 국민을 두려워해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과 민주당은 이쯤에서 숨을 고르고 지난 1년을 성찰해야 한다. 그래야 ‘AGAIN 2018’이 현실이 될 수 있다. 지금처럼 절제와 통제 없이 계속 가면 민심의 임계를 넘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