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쓰는 직장인] <3>
‘교실 안의 철학자’ 안광복 교사
서울 중동고 철학교사 안광복(56)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철학 선생님이다. 1996년부터 만 30년째 교단에 서고 있다. ‘소크라테스 대화법’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간 낸 책은 공저를 빼고도 25권. ‘처음 읽는 서양 철학사’(어크로스), ‘열일곱 살의 인생론’(사계절) 등의 베스트셀러를 썼다. 누적 수십만 부가 나가는 동안 1만 부 밑으로 팔린 책은 찾아보기 어렵다. 대중적 눈높이로 써온 그의 철학책들은 중국·대만 등에도 번역됐다. 15일 학교에서 그를 만났다.
장경식 기자철학 교사 안광복이 매일 3시간씩 공부하며 써 내려간 책들 앞에 섰다. 달리기의 ‘러너스하이(runner’s high)’처럼 수업이 잘 될 때, 글이 잘 풀릴 때의 쾌감을 즐기며 30년째 교단에 서있다.
안광복은 매일 3시간 공부한다. “꾸준히 읽고 공부하지 않으면 수업도 집필도 무너진다”는 게 그의 철학. 안광복은 “자신만의 콘텐츠를 계속 채워야 한다는 점에서 교사와 작가는 정체성이 같다”며 “좋은 글이 좋은 수업이 되고 그 반대도 된다”고 말했다. 이만한 수업 준비가 없는 셈이다. 저녁 8시 30분 일찍 잠들어 새벽 2시부터 5시까지 ‘학자로’ 살아온 게 오랜 습관이다. 다만, 나이가 50대로 접어들면서 ‘새벽 공부’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도 신경써야 했다. 요즘은 왕복 1시간 걸리는 대중교통 출퇴근 시간이라든지 하루 중 자투리 시간을 “조각조각 모아” 3시간을 확보한다. 수험생처럼 다이어리에 매일매일 공부한 시간을 체크하고 메모한다. 토요일이면 남산 도서관에 자리 잡고 긴 시간 공부와 집필에 매진한다. 일요일은 꼭 산에 올라 체력을 키운다.
‘3시간 공부’는 안광복에게 ‘눈물 젖은 루틴’이다. 학자를 꿈꿨던 그는 교사 초년병 시절 적응이 어려웠다. 돈을 모아 유학을 떠나려 했으나 금융 위기가 터졌다. 공부가 너무 하고 싶었던 그는 도서관에서 그리스어 사전을 펴놓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대신 그는 이렇게 결심한다. “난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는 직장인이다. 그 뒤로는 자유인이다. 마음껏 공부를 하자. 칸트처럼 일상을 엄격하게 살자.” 안광복은 “교사를 하며 꾸준히 공부하고 책을 쓰는 게 훨씬 의미 있는 삶이 됐다”며 “우주가 나를 이 길로 이끌었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1999년 처음 기고를 한 날도 잊지 못한다. 한 독서 월간지 필자의 건강 문제로 안광복에게 ‘한 회만 메워 달라’는 요청이 왔다. 안광복은 “마지막 동아줄이라 생각해 일주일 동안 목숨을 걸고 썼지만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원고지에 수정이 필요한 ‘빨간 줄’이 가득했다. ‘30매 쓰라고 했는데 왜 35매 썼냐’ 등의 피드백도 매서웠다. 안광복은 “자존심 때문에 듣고 싶지 않은 피드백도 있었지만 이걸 받아들이지 못하면 나한테 기회는 없다고 생각했다”며 “왕창 깨지고 나니 내 것을 만들기 위해선 우선 세상의 문법을 익혀야 한단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초보 작가가 조언을 부탁하면 “편집자가 옳다. 고집을 세우지 말고 일단 들어라”고 말한다.
그래픽=이진영
교단에서 30년. 처음 가르친 학생은 1978년생이었고 지금은 2000년대생을 가르친다. 같은 나라 학생이란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다르다고 한다. 과거 학생들은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는 국민교육헌장이 어색하지 않았고 국가와 역사에 대한 소명 의식이 자연스러웠다. 지금은 개개인과 각자 삶의 가치가 더 중요해졌다. 수업도 더 섬세해졌다.
다만 요즘 학생들이 더 똑똑하고 건강하다고 했다. 학생들이 책을 안 보는 건 맞지만 인간에 대한 이해와 삶의 성취도는 오히려 올라갔다고 한다. 안광복은 “과거 책에 파묻혀 공부만 하던 학생들은 내면이 어두울 때가 많았다”며 “지금은 ‘문어’가 아닌 ‘구어’ 문명의 시대라 과거의 잣대로는 문해력이 떨어져 보이지만 종합적 언어 능력은 더 우수해졌다”고 말했다.
철학교사 안광복/장경식 기자
명쾌한 답을 주는 것만 같은 AI의 시대에 철학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그는 “자유인의 삶의 기술”이라고 답했다. 고대 그리스에서 일은 노예가 하고 자유인은 철학·운동·문예를 했다. 안광복은 “AI와 로봇의 고도화는 인간다운 삶을 고민하게 만든다”며 “세계관을 정의하는 작업은 늘 철학이 해왔다”고 말했다.
철학을 어렵게 느끼는 사람을 위한 조언을 부탁했다. 소설 100권을 보라는 답이 돌아왔다. “‘선한 사람이 모인 사회는 왜 악해졌는가’ 같은 삶에 대한 근원적 물음이 피어나기 때문”이다. 더 어려워진 것 같다고 재차 물었다. “삶이 아파야 합니다. 지적 감수성을 키우라는 뜻입니다. 고대부터 지금까지 철학이 계속되는 이유는 모든 인간이 생로병사를 거치기 때문입니다. 삶의 경험을 넘어 철학에 입문한 사람은 제대로 철학을 하게 됩니다. 철학으로 영혼의 근력을 만들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