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에서 찾았다 오늘 별이 된 사람]
1988년 4월 19일 87세
한국 최초 여성 비행사 권기옥.
101년 전인 1925년 신문에 24세 권기옥(1901~1988)은 조선 최초의 여류 비행가로 소개됐다.
“조선에 처음인 녀류비행가 권긔옥(權基玉) 양은 금년에 중국 운남 육군 항공학교를 졸업하고 방금 그 학교에서 비행긔를 련습하는 중이다. 그의 고향은 평양이니 긔질이 튼튼하고 담대하고 녀성적 긔분이 적으며 한번 덩한 일은 긔어히 하고야 마는 것은 그의 텬성이라 할 수 잇다. (…)”(1925년 5월 27일자 3면)
1925년 5월 27일자 3면.
1년 후인 1926년 5월에는 ‘풍진 어지러운 중국 공중에 이채 찬연한 조선 여장부’라며 중국으로 건너간 과정을 전했다.
“그는 평양 출생으로 고향에서 숭현(崇賢)여학교를 졸업한 후 군자금 모집 사건으로 일년반 동안이나 텰창의 부자유한 생활을 테험한 일이 잇섯고 그후에도 항상 경찰의 엄중한 감시를 피하야 조동모서(朝東暮西)로 뎡처 업시 쫏겨 다니다가 일천구백이십년 십월에 무정히 그를 포박하러 달려오는 형사에게 쫏겨서 그길로 진남포로 도주하야 조선 목선을 타고 상해로 들어갓든 것이다.”(1926년 5월 21일 자 석간 2면)
1926년 5월 21일자 2면.
권기옥은 중국으로 탈출한 1920년 10월 이후 상해 임시정부에서 활동했다. 1923년 중국 운남항공학교에 입학하고 2년 뒤 우리 역사상 여성 최초로 비행사 자격을 얻었다. 중국 국민당군 항공사령부 비행원 등으로 활동하면서 1943년 중경 임시정부에서 애국부인회를 조직했다. 1949년 귀국해 6·25전쟁 때 국회 국방위 전문위원 등을 지냈다.
1962년 ‘한국 여성계 파이오니아’ 시리즈 12회 기사에서 “최초의 여류 항공사”로 소개됐다.
1962년 7월 3일자 4면.
“운남항공사관학교 제1기생으로 37명의 남학생과 함께 사관생이 되었다. 2년간의 수업을 끝낸 후 곧 중국 공군에 입대하여 14년 동안 장교 생활 후 중일 전쟁이 끝나자 곧 제대하였다.”(1962년 7월 3일 자 4면)
1965년 인터뷰에서 ‘공군 할머니’ 권기옥은 비행사가 된 이유로 “비행기에 폭탄을 가득 싣고 일본까지 가서 폭격을 할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슬하에 자녀는 없다”고 밝혔다.
1965년 10월 3일자 5면.
권기옥은 1928년 중국 국민혁명군 소속으로 훗날 중장까지 진급하는 독립운동가 이상정과 결혼했다. 시인 이상화와 체육 행정가 이상백 서울대 교수의 친형이다. 이상정은 권기옥이 귀국하기 2년 전인 1947년 중국에서 사망했다.
권기옥은 1977년 기사에서 다시 등장한다. 1975년부터 불우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했다는 내용이다.
1977년 2월 11일자 6면.
“권 할머니가 장학 사업에 뜻을 둔 것은 작고한 남편 이상정 장군(전 서울대 교수 이상백씨의 형)의 유지에 따른 것이다. 20여년간을 중국 대륙에서 독립 투쟁에 몸바쳤던 이 장군은 해방된 조국 땅을 미처 밟지 못하고 이역에서 눈을 감았다. 이때부터 권 할머니는 ‘내 대신 조국에 유익한 일을 해달라’는 남편의 간곡한 당부를 한시도 잊은 적이 없었다고 한다.”(1977년 2월 11일 자 6면)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다. 1988년 4월 19일 87세로 별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