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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가에 부는 ‘어른 열풍’…불안세대가 찾는 ‘진짜 어른다움’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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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행복은…’ 30만부 ‘어른의 품위’ 8만부 돌파

출세비결보다 단단하게 사는 법과 같은 통찰 담겨

경쟁·변화에 지친 2040세대, 롤모델 삼아 불안 떨쳐

‘어른다움’을 다룬 책에서 뽑은 ‘어른’에 관한 문장들. 문장 하나하나를 읽으며 ‘좋은 어른’의 모습을 떠올려 볼 수 있다. 그래픽 노수민 기자 bluedahlia@hani.co.kr

요리 예능 ‘흑백요리사’ 시즌 2의 뚜껑을 열자, 뜻밖에도 ‘어른’들이 튀어나왔다. 후덕죽, 박효남, 선재 스님, 최강록 등은 단순히 뛰어난 셰프를 넘어, 이 시대가 갈망하는 ‘어른’으로 호명됐다. 이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쌓아온 시간과 태도로 ‘어른다움’의 본질을 보여주며 시청자들의 뜨거운 지지를 얻었다.

출판계에서도 ‘어른’이라는 키워드가 독자들의 선명한 호응을 얻고 있다.

‘어른의 행복은 조용하다’(페이지2북스)는 2024년 말 출간 이후 줄곧 베스트셀러 자리를 차지하며 30만부 판매를 돌파했다. 지난해 ‘예스24’와 ‘밀리의 서재’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 책은 어른이라는 이름으로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와 그 속에서도 놓지 말아야 할 삶의 태도를 차분히 짚는다. 그 태도는 거창한 성공이나 눈부신 성취를 추구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하루를 단단히 꾸리면서, 주변에 다정하고, 조용하고 무탈한 일상에서 기쁨을 발견하는 것이다. 남들처럼 치열한 경쟁과 끝없는 비교 속에서 성공을 위해 달려왔던 태수 작가는 성공보다 만족, 화려함보다 평온, 성취보다 꾸준함에 어른의 행복이 있음을 설득력 있게 풀어낸다.

책의 인기 비결에 대해 출판사 페이지2북스는 “지나친 경쟁 속에 노력해도 이뤄지지 않는 것들이 대부분인 청년들과 변화하는 시대에 도태되지 않기 위해 계속 달려야 하는 중년들을 포함하는 3040세대가 주 독자층”이라며 “이들에게 더는 부산스럽게 세상을 좇기보다는 조용히 자신을 들여다보고 자신이 만족하는 것들을 찾고 거기에 집중하는 삶을 제안하는 내용이 깊게 공감을 얻은 것 같다”고 분석했다.

‘어른’이라는 주제를 다룬 베스트셀러 도서들과 이 시대의 ‘어른’으로 불리는 후덕죽(왼쪽) 셰프와 김장하 어르신. 각 출판사 제공, 한겨레 자료사진

지난해 말 출간된 ‘어른의 품위’(북로망스) 역시 출간 4개월 만에 8만부 판매를 넘기며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올랐다. ‘잘될 수밖에 없는 너에게’(북로망스)로 대중의 큰 사랑을 받은 아나운서 출신 최서영 작가의 신작이다. 이 책 역시 치열한 경쟁의 한복판을 통과한 뒤에야 비로소 발견한 ‘진짜 어른’의 조건을 이야기한다. 작가는 어른다움을 특정 지위나 성취가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의 축적’에서 찾는다. 그 태도의 핵심을 ‘품위’라고 보는데, 이는 조급해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성실히 살아내는 힘, 누구에게서든 배움을 발견하는 겸손, 상황에 흔들리지 않는 중심 같은 태도의 총합이다. 북로망스는 “어른이란 결국 매일의 태도가 쌓여 만들어진다는 메시지가 조금 더 어른답게 살아가고 싶다는 욕구를 가진 20~40대 독자층에 크게 와닿은 것 같다”고 인기 비결을 전했다.

출간 40일 만에 10쇄를 찍으며 화제를 모은 ‘즐거운 어른’(이야기장수)은 또 다른 결의 어른 상을 제시한다. 70대 후반인 이옥선 작가는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 ‘다 지나간다’ ‘절대 유명해지지 마라’ ‘남자 잘못 만나 인생 망한 여자는 있어도 안 만나서 망한 여자는 없다’ 같은 통쾌하면서 유쾌한 삶의 철학으로 독자를 사로잡는다. 자기 연민이나 자기 과시도 없이 독서와 운동, 탕욕, 물구나무서기 등을 즐기며 자유롭고 명랑하게 살아가는 저자의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다. 무엇보다 자식과 건강한 거리를 유지하고, 남편과 사별했지만 ‘혼자서 적적하지 않나요?’라는 인사는 거절하며, 남을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특히 인간관계를 대하는 홀가분한 태도가 돋보인다. “모든 것은 이미 지나갔거나 지나가고 있거나 지나갈 것이다. 그러니 인간끼리의 관계를 너무 심각해하지 말고 가뿐하게 생각하고 유연한 마음으로 서로를 대하는 게 좋지 않겠나 싶다.”

이 밖에 ‘남인숙의 어른수업’(리안북스), ‘어른의 문장들’(샘터) 등도 꾸준히 독자들의 선택을 받고 있다.

‘어른’이라는 주제를 다룬 베스트셀러 도서들과 저자 이옥선(왼쭉)과 ‘흑백오리사2’ 프로그램을 통해 ‘어른’으로 불리는 박효남 셰프. 각 출판사 제공, 한겨레 자료사진

‘남인숙의 어른수업’은 ‘여자의 모든 인생은 20대에 결정된다’ 등 다수의 베스트셀러 책을 쓴 남인숙 작가가 유튜브 ‘어른성장학교’를 운영하며 주고받은 고민 상담을 토대로 쓴 책이다. ‘나는 상대에게 잘해주는데 상대는 왜 나에게 그만큼 돌려주지 않을까’ ‘어떻게 하면 재미있는 사람이 되어 인기를 얻을 수 있을까’ ‘인생에 도움이 되는 인맥은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친구는 꼭 필요한가’ ‘혼자 있으면 외롭고 사람을 만나면 괴로운데 어떻게 해야 하나’ 같은 지극히 현실적인 질문에 대해 저자는 어른의 해법을 들려준다. 나를 지키면서도 편안한 관계를 만들고, 남에게 베풀되 내게 해로운 사람을 과감히 ‘손절’ 할 줄도 알며, 궁극적으로는 성장과 성숙으로 나아가는 길을 제시하는 문장들에 밑줄을 쫙쫙 긋게 만든다.

인기 번역가이자 에세이스트인 박산호 작가가 쓴 ‘어른의 문장들’은 활자 중독자인 그가 수많은 책에서 길어 올린 어른의 통찰을 한권에 엮었다. ‘저는 아줌마가 되면 멋도 안 부리고 몸매도 망가지고 뻔뻔해지고 목소리는 커지고 호피 무늬 옷 같은 거나 입게 되고, 그래서 인생이 끝장나는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그런데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더군요. 자신에 대해 더욱 잘 알게 되어 오히려 편해졌습니다’ 같은 요시모토 바나나의 유머러스한 고백에서부터 ‘직시한다고 해서 모든 것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직시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여유가 없으면 곧바로 본성이 얼굴을 내민다’ 같은 날카로운 문장까지 폭넓게 담았다. 각각의 문장은 저자의 경험과 사유를 덧입으며 더욱 구체적으로 다가온다. 더불어 ‘어른 이후의 어른’(엘리), ‘어른이 된다는 건’(민음사) 같은 ‘어른’에 관한 책들도 함께 소개해 독서의 지평을 넓혀준다.

이들 책이 어른의 태도를 일러준다면, 한편에서는 어른의 문해력과 말하기에 주목한 책들도 인기다.

어른의 문해력을 처음 들고나온 ‘어른의 어휘력’(앤의서재)은 20만부 판매를 돌파했다. 나이가 들면서 대화에서 명사는 줄어들고 대명사는 늘어난다. ‘그거’ ‘저거’ ‘거기’ 등 두루뭉술한 표현만 남발하다가 끝나는 경우도 많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어주는’ 상대가 있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대화는 답답하고 어긋난다. 유선경 작가는 어휘력 부족이 소통의 불편이나 단절로 이어지고, 나아가 자신감 부족과 공격성으로 이어지는 지점을 예리하게 지적한다. “어떤 말이나 글의 의미와 어감을 쉽게 파악하지 못한다면 ‘눈치’가 부족하다기보다 ‘어휘력’이 부족한 탓이 크다. 말인즉슨 맞는데 묘하게 거슬리는 말도 ‘인간미’가 부족하기보다 ‘어휘력’이 부족해서일 수 있다. 어휘력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힘이자 대상과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이며 어휘력을 키운다는 것은 이러한 힘과 시각을 기르는 것이다. 그래야 ‘어른’다운 어휘력이다.”

한국에서 대학 입시 이후 영어 단어는 외워도 국어 단어를 외우는 사람은 없다. 이 책은 ‘국어 어휘력’을 표현력을 넘어서 어른다움과 연결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정확하고 적절한 표현을 구사하는 힘이 곧 어른다운 힘이라는 것이다.

교보문고 판교점에서 ‘어른의 행복은 조용하다’와 ‘어른의 품위’가 나란히 베스트셀러 매대에 진열돼 있다. 김아리 기자

10만부 기념 개정판이 나온 ‘강원국의 어른답게 말합니다’(웅진지식하우스) 역시 어른의 품격을 ‘말’에서 찾는다. 보통 나이 마흔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하는데, 강원국 작가는 “얼굴보다 말이 더 그 사람의 인격에 가깝다”며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려면 얼굴을 볼 게 아니라 말을 들어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말하는 어른답게 말하는 법의 요체는 네가지다. 첫째 오락가락하지 않아야 한다. 둘째 배울 점이 있어야 한다. 셋째 징징대고 어리광 부리지 않는다. 넷째 나답게 말한다. 사실 어른이 된다고 어른답게 말하는 법을 절로 알게 되지는 않는다. 한국 교육은 읽기는 가르치지만 말하기는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다. 책은 몸은 어른이 되었지만 언어는 어른이 되지 않은 사람들에게 어른답게 존중하고 존중받기 위한 말하기의 실질적인 지침을 섬세하게 일러준다.

한편, 이들 베스트셀러가 공통적으로 말하는 어른의 덕목은 무엇일까?

첫째는 여유와 품위다. 성취를 향해 조급히 달려가는 대신 주변을 살피고 베풀 줄 아는 태도다.

둘째는 겸손이다. 어른은 많은 걸 경험했고 많은 걸 알고 있지만, 가르치려 들기보다 먼저 듣는 태도를 가진다.

셋째는 단단함이다. 실패와 실수에도 무너지지 않고 하루를 묵묵히 살아내는 태도야말로 어른의 증표다.

‘어른’이라는 키워드가 뜨는 데에 대해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김장하 어른을 다룬 다큐멘터리 열풍부터 후덕죽 셰프의 인기까지는 우리 사회가 어른에 대한 갈증이 있다는 증거”라며 “불안이 크고 신뢰가 흔들리는 사회일수록 중심을 잡아줄 존재에 대한 기대를 갖게 되고 그 기대가 ‘어른’이라는 키워드로 표출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아재, 꼰대, 개저씨, 영포티 등의 단어들은 예전과 달리 이제는 나이를 먹었다고 해서 ‘어른’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준다”며 “지금 세대는 성공이나 업적보다는 성숙한 삶의 태도로 어른을 규정하는 경향이 있다”고 전했다.

김태형 사회심리학자 역시 불안에서 원인을 찾았다. 그는 “지금 세대는 이전 세대처럼 발달 단계마다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며 성장해온 세대가 아니라 사회가 요구하는 틀에 맞춰서 입시와 취업을 향해 열심히 달려오느라 바빴다”며 “어른이 되면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상이 없다 보니 그 불안이 반영된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한 출판사 사장은 “예전엔 30대 정도 되면 자연스럽게 어른이 되었다고 느꼈지만, 지금은 30~40대가 되어도 ‘내가 정말 어른인가’ 하는 불안이 있고, 그 불안으로 인해 ‘어른’이라는 책을 찾는 것 같다”고 전했다.

결국 ‘어른’ 열풍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질문이 더욱 절실해졌다는 신호다. 독자들이 찾는 것은 단순히 나이를 먹는 기술이 아니라 삶을 단단히 붙드는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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