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책 l 백무산 시인의 ‘만국의 노동자여’
노동문학 40여년 거장, 5년만에 신간
스승·습작도 없이 시 발표한 조선소 노동자
첫 시집도 10년여 복사물로 떠돌아
조선소 노동자로 혼자 시를 쓰다 1984년 작품 활동을 시작한 백무산(71) 시인. 최근 11번째 시집 ‘누군가 나를 살아주고 있어’를 펴냈다. 시인 제공
시를 쓰기 시작한 계기가 무엇이었느냐는 질문을 간혹 받을 때가 있지만, 나 자신도 수긍할 만한 대답을 찾을 수 없었다. “시가 거기 있었으니까요”라고 얼버무리고 마는데, 그래도 내 사정에 비추어 그리 성의 없는 대답은 아닌 것 같다. 내가 문학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그런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이 아닌 줄 알고 하는 질문으로 별난 계기가 있으리라고 기대했겠지만, 그럴 만한 사정을 한마디로 말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어떻게 그동안 계속 써올 수 있었느냐는 질문이 이어져도 상황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고밖에 할 말이 없었다.
문학 수업을 받아본 적 없고, 선배도 스승도 없고, 같이 공부한 동료도 없었다. 등단조차 타인의 손에 의해 이루어졌다. ‘시인’이라는 이름도 다른 일과 마찬가지로 자기 생의 진로로 삼고 정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면 내게는 그 이름도 어울리지 않는다.
일찍이 내가 내던져진 세상에 나는 적당히 자신을 적응시킬 수가 없었다. 내가 지켜야 할 것과 적응해야 할 현실 사이에서 심각하게 분리돼 있었다. 창문 하나 없는 담장 안에서 출구를 찾을 수 없는 심정이었다. 그 시절 노동자로 산다는 것은 간신히 유지되는 생존과 자기 부정의 시간만 허용되었다. 내가 처한 환경에는 온전하게 존재하는 것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모든 것이 파헤쳐지고 파괴되고 죽어가고 있었다. 하루아침에 수백년 살아온 마을 하나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살아 있다는 것의 온전한 형태는 어떤 것인가? 밑도 끝도 없는 그러한 의문이 떠나지 않았다.
공단 거리에 있는 작은 책방 하나가 내가 유일하게 바깥세상을 내다볼 수 있는 창이었고 숨 쉴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 책방에서 나는 어릴 적에 읽은 책들이 만들어놓은 아주 작은 정원 하나를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 정원에 들어앉아 읽고 쓰는 일에 매달리고 싶었다.
등단을 목적으로 습작의 시간을 가진 적도 없었다. 그러나 그동안 자유롭게 써온 글들이 시에 근접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의 형식을 다듬기 위해서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지도 몰랐고,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했다. 그 무렵 알게 된 박영근 시인의 요청으로 보낸 시들이 무크지 ‘민중시’에 실리게 되었다. 1984년이었고, ‘지옥선’이라는 제목의 연작시였다. 20대를 보낸 조선소 경험을 날것으로 담은 시였다. 등단이랄 것도 없는 등단이었다. 그리고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지만, 표현의 자유조차 없던 시절이라 그나마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문학의 가능성에 빨려 들었다. 그 후 내 시의 발표 지면은 주로 문예지가 아닌 불법 유인물이나 시민단체의 자료집이었다. 검열 때문에 사용한 가명이 굳어져 지금의 필명이 되었다.
87년은 군사독재 퇴진 민주화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던 해였다. 새해 벽두에 일어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되었다. 6·29 선언이 이어지고 곧장 노동자 대투쟁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나는 그해 1월부터 11월까지 백골단의 몽둥이와 전경의 군홧발과 화염병과 돌멩이와 유치장과 미친 최루탄 속에 있었다.
만국의 노동자여 l 백무산 지음, 실천문학사(2014, 개정판)
겨울이 들기 시작하면서 상황이 조금 가라앉았다. 땀에 얼룩진 수첩과 온갖 구겨진 이면지에 메모해 둔 것을 챙겨서 산촌 작은 외딴집에서 사흘을 보냈다. 돌아오는 날 아침 하얗게 서리 내린 들판에서 까마귀 떼들이 몰려왔다. 시린 하늘을 뒤덮고 펄럭이는 검은 날갯짓 소리를 듣다가 내 안에 무엇인가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다. 멀고 고달픈 여정이 내 앞길에 놓여 있는 것만 같았다.
88년에 사회과학 출판사인 ‘청사’에서 시집이 나왔다. 문학과 사회과학의 경계가 별로 없었던 시절이었다. 이 시집으로 제1회 ‘이산문학상’을 받게 되었다. 몇년 지나지 않아 출판사가 문을 닫는 바람에 시집도 사라졌다. 재출간 요구가 있었으나 마음 내키지 않았다. 10년 가까이 책방이나 복삿집에서 복사물로 돌아다녔다. 2014년 실천문학사에서 재출간 되었다.
백무산 시인
그리고 다음 책들
인간의 시간
세번째 시집이다. 후기에 이렇게 썼다. “무너지고 붕괴되고 해체되기 전에 ‘인간’이 먼저 무너져 있었다. 내일의 문턱에서 먼저 일어나야 할 것도 역시 인간이다. 다시 ‘인간의 시간’이다.” 87년 민주화운동 이후 변화가 누적되었다. 소련 해체와 함께 냉전 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세계사적 변화도 적지 않았다. 문학이 사회운동의 전선에 함께해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얼마간 자유로운 분위기로 흘렀다. 이념의 시대가 지나간 자리, 그렇게 비어 보일 수 없었다.
창비(1996)
거대한 일상
사회민주화가 진행되면서 억압과 저항의 힘들 사이의 경계가 점차 흐려져 갔다. 억압을 당한 사람들은 그 억압을 스스로 내면화하여 억압적 힘의 질서 안으로 편입되기도 했다. 자기 존재를 스스로 부정하게 만드는 자본주의 노동에 대한 성찰, 피해자라고 해서 반드시 정의로운 것은 아니라는 자각, 부정의 언어는 다시 자기 파괴력으로 돌아오게 되는 부정의 논리에 대한 모순적 현상들을 돌아보았다. 수동화된 노동은 자기 존재를 배반하는 정치적 보수화를 불러오고 있었으므로….
창비(2008)
폐허를 인양하다
2014년 세월호가 침몰되고 3년 후인 2017년이 되어서야 인양되었다. 침몰되었으나 인양되지 못해 아이들이 수장되어 있던 시기인 2015년 8월에 이 시집이 출간되었다. 87년 이후 25년 넘게 민주화운동을 펼쳤지만 독재자의 딸이 대통령이 되어 일어난 사건이었다. 어두운 시대로부터 우리가 건져 올린 것은 다름 아닌 폐허였다는 자괴감과 슬픔과 분노가 들끓던 시기였다. 이러한 역행은 전쟁이나 천재지변이 아닌데도 삶의 한계를 초과하는 사건을 불러왔다고 생각했다.
창비(2015)
이렇게 한심한 시절의 아침에
촛불 항쟁으로 박근혜 정부를 몰아내고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고 3년이 지난 시기에 나온 시집이다. 시민항쟁의 정서와 제도권 정당에 대한 실망으로 복잡하게 엉킨 감정이 노출되었다. 시집 제목을 두고 불편해하는 목소리도 들렸다. 시를 쓰기 시작한 이래 가장 외로웠던 시간이었다. 그러나 그동안 낸 11권의 시집 가운데 그나마 가까이 두어도 부담이 적은 시집이다. 그대에게 가는 길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풀을 헤엄쳐 너에게로 가야만 한다/ 우리는 풀의 바다에 사는 물고기이므로”
창비(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