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으론 반자유주의, 경제적으론 자유주의
위태로운 모순으로 압축적 근대화에 성공
공정 논란과 K-열풍까지 여전한 영향력 행사
오늘날 세계를 휩쓰는 케이-문화의 저변에도 박정희 이데올로기가 살아 숨 쉰다. 사진은 경주 보문관광단지 관광역사공원에 세워져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동상 모습. 배현정 기자 sprring@hani.co.kr
‘위대한 지도자’와 ‘잔인한 독재자’ 사이를 오가는 박정희에 대한 평가는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여전히 현재형이다. 신간 ‘박정희 이데올로기’는
이같은
찬반의 구도를 반복하기보다, 박정희라는 인물을 떠받치고 있는 사상과 체계의 구조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저자는 역사문제연구소 연구부소장과 한국사학회 회장을 역임한 황병주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관이다. 저자가 겨냥하는 것은 ‘공과’의 목록이 아니라, 박정희라는 이름을 가능하게 한 시대와 정치의 문법이다.
그런 점에서 5·16 쿠데타 이전까지 ‘박정희’를 빚어낸 그의 생애와 행적을 짚지 않을 수 없다.
소농 집안의 막내아들로 태어난 그는 어머니의 교육열에 힘입어 구미보통학교에 입학했다. 그는 6년 내내 뛰어난 성적으로 일본인 교사들의 신임을 받았고, 반장을 도맡으며 또래 위에 군림했다. 말을 듣지 않으면 가차 없이 뺨을 때려 그에게 맞지 않은 동급생이 드물었다고 한다. 총명함과 통솔력, 승부 근성, 권력의지는 이 시기부터 그를 수식하는 핵심 어휘들이었다.
우수한 성적으로 대구사범학교에 진학했지만, ‘교련’이나 ‘체조’를 제외하면 성적이 바닥이었다. ‘나폴레옹 전기’와 히틀러의 ‘나의 투쟁’ ‘플루타르크 영웅전’ 등을 탐독하며 군사적 영웅상에 매혹됐던 그에게 교사를 양성하는 교육 과정은 흥미를 주지 못했다. 졸업과 동시에 문경보통학교 교사로 부임했으나, 결국 ‘군인’의 길을 택해 만주군관학교에 진학한다. 나이와 혼인 경력으로 원칙적으로 입교가 어려웠지만, ‘혈서’를 써서 지원함으로써 합격했다.
만주군관학교 2년과 일본 육군사관학교 2년에 걸친 교육은 박정희의 개인적 성향은 물론 이후 ‘박정희 체제’로 불릴 통치 방식의 원형을 형성했다. 일본 극우 파시즘과 군국주의, 능력주의와 엘리트주의, 규율 권력과 폭력성까지 ‘박정희 정치’의 대부분이 이 시기에 완성된다.
박정희 이데올로기 l 황병주 지음, 돌베개, 3만원
피식민지 엘리트로 살아가려 했던 그에게 ‘해방’은 아닌 밤중에 홍두깨였다. 군관학교 동기의 증언에 따르면, 해방 직후 박정희는 “이제 어떡하면 좋겠느냐”며 낙담한 모습이었다. 일본 제국 대신 새로운 충성 대상을 찾아야 했던 그는 잠시 광복군에도 참여하고 남로당에도 가입한다. 남로당 가입에 대해선 공산주의로의 전향이라기보다 좌익 세력이 압도적으로 우세했던 현실과 남로당원이었던 친형의 죽음이라는 개인적인 사정이 겹친 상황적 선택이라는 해석이 설득력이 있다. 당시 미군정의 여론조사에서 70%가 사회주의를 지지한다고 했을 정도로 해방 공간에서 좌파의 위력은 막강했다.
하지만 남로당원 박정희는 별 활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후 숙군 과정에서 살아남았고, 더 철저히 살아남기 위해 제 손으로 남로당을 체포했다. 즉 ‘남로당’ 경력은 그에게 무자비한 반공주의만을 남겼을 뿐이다.
이렇게 개인적 출세를 위해 달렸던 박정희는 권력을 잡은 뒤엔 국가의 출세를 위해 달린다. 정치적으로는 민족주의와 군사주의를 버무려 파시즘을 방불케 하는 반자유주의적 이데올로기를 구축했고, 경제적으로는 시장경제의 자유경쟁을 토대로 하는 자유주의를 번성시켰다. 저자는 이를 ‘군사적 자유주의’라고 칭하면서, 양자의 기묘한 조합에 대해 “시장에 전쟁 문법이 적용되고 전쟁에 시장 논리가 차용되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1960년대 두 자릿수에 달했던 병역 기피율은 ‘군대 갔다 와야 사람 된다’는 사회적 규범의 확산 속에 0.1% 이하로 떨어졌다. 학교, 공장, 군대가 삼위일체처럼 복종과 규율의 질서로 움직였고, 수출 전쟁·경제 전쟁·산업 전사 같은 군사적 언어가 경제를 지배했다. 한편에선 능력과 노력만 있으면 누구나 성공이 가능하다며 무한 자유경쟁의 판을 깔았다.
이 모순적 조합은 압축적 근대화라는 성공 신화를 만들어냈고, 오늘날 세계를 휩쓰는 케이(K)-열풍의 기반이 됐다. 철저한 경쟁과 군대 훈련을 연상케 하는 K-아이돌의 육성 시스템에도 ‘군사적 자유주의’의 흔적이 남아 있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올림픽 남북 단일팀 구성 논란부터 인천국제공항공사 정규직 전환 사태와 조국 사태에 이르기까지 그 저변에 아른거리는 박정희의 그림자를 날카롭게 포착해 낸다. “박정희는 일종의 이데올로기다. 그의 육신은 이미 죽어 자연으로 돌아간 지 오래지만, 이데올로기 박정희는 맹렬하게 여전히 살아 있다. 어쩌면 한국 사회는 박정희 없는 박정희 체제를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6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이지만, 학술성과 대중성의 절묘한 균형으로 묵직하면서도 흡인력 있게 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