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길을 찾다 11 유화승 대전대 한의대 교수
학생 때 ‘종양학이 한의학의 미래’ 말 듣고
두 학문 연결 위해 미국·중국 등에서 연구
지난 2월 ‘대한통합암학회 이사장’ 맡아
다양한 암치료법 활용해 면역력 높이는
‘수레바퀴 암치료법’ 발전시켜오면서
‘한국형 치료 세계화’ 목표로 연구 이어가
유화승 대전대 대전한방병원 교수가 환자의 맥을 짚으며 혀를 들여다보고 있다. 대전한방병원 제공
유화승 대전대 한의대 교수는 통합암치료 전문가다. 통합암치료는 현대의학을 중심으로 과학적 근거가 있는 다양한 방법을 환자 치료에 활용하는 것을 말한다.
유 교수는 ‘표준치료’에 한의학의 침, 뜸, 한약 등을 병행하는 한국형 통합암치료 체계를 정립한 인물이다. 지난 2월 보건복지부 인가 사단법인 대한통합암학회 3대 이사장을 맡았다.
그가 28년째 근무 중인 대전대 한방병원 동서암센터는 통합암치료 분야에서 많은 성과를 내고 있다. 이곳은 국내 최초 한의대병원 부속 암센터다.
유 교수는 그동안 통합암치료의 과학적 근거를 확보하는 데 공을 들였다. 2026년 2월 기준 125편의 과학기술논문색인지수(SCI)급 논문과 200여 편의 한국학술지인용색인(KCI) 등재 논문을 발표했다. 또한 동서암센터를 통해 많은 한의사 출신 암 전문의를 배출했다.
대전시 서구 대덕대로에 자리한 대전한방병원 8층에 있는 약장. 항암 치료에 쓰이는 다양한 한약재가 비치돼 있다. 대전한방병원 제공
동서암센터의 한국형 통합암치료는 유 교수의 스승 조종관 대전대 한의대 교수가 창안하고 그가 발전시킨 ‘수레바퀴 암치료법’에 기반한다. 수레바퀴를 지탱하는 살처럼 다양한 통합 암치료법으로 환자의 면역력을 극대화하는 암환자 관리 프로그램이다.
‘수레바퀴 암치료법’은 한의약물치료, 대사활성치료, 호흡명상치료, 항암식이치료 등 4가지 축으로 이뤄져 있다. 항암에 도움이 되는 약침과 면역강화 약물과 함께 항암식이, 온열, 명상, 요가 등 다양한 통합암치료 프로그램이 제공된다.
치료 효과는 많은 환자에게서 확인된다. 암세포가 간과 복막에 전이돼 항암 치료 중인 췌장암 4기 환자는 극심한 통증으로 잠을 잘 못 자고 식사도 제대로 못하는 상태에서 지난해 말 동서암센터를 찾았다. 진료진은 고주파 온열 암치료, 프리미엄 항암단 복용, 고용량 비타민C 정맥주사 치료, 침뜸, 약침 치료 등을 병행했다. 해당 환자는 현재 통증이 크게 줄어 수면의 질이 좋아졌고 식사량도 늘어났다.
유화승 대전대 대전한방병원 교수가 병원 복도 벽면에 설치된 연혁을 가리키며 동서암센터의 지나온 길을 설명하고 있다. 권복기 건강한겨레 기획위원
2018년 자궁경부암 진단을 받고 수술 뒤 항암과 방사선 치료를 받은 여성은 2022년 암이 폐로 전이됐다. 두 차례 수술과 항암 치료를 했지만 암세포는 흉막에까지 똬리를 틀었다. 2024년에는 흉추 부위로, 2025년에는 복막에까지 암세포가 번졌다. 급성 신우염과 폐렴으로 여러 차례 입원치료까지 받은 뒤 이곳을 찾았다.
진료진은 환자의 체력과 면역력이 매우 낮은 상태임을 고려해 항종양 약침 치료와 침 치료를 중심으로 하는 통합암치료를 진행했다. 그는 치료 뒤 통증이 크게 줄어 마약성 진통제 복용량을 줄였다. 수면의 질이 좋아지고 식사량도 늘었다고 한다.
2021년 대장암 진단을 받은 남성은 수술과 항암 치료를 받았으나 암세포는 2023년 림프샘으로, 2024년 직장으로, 지난해에는 폐로 전이됐다. 항암 치료 중인데 통증 때문에 어려움을 겪자 동서암센터를 찾았다. 그는 입원 치료 뒤 통증이 줄고 식사량이 늘면서 체력이 좋아졌다. 지금까지 14차 항암치료를 받았는데 지난해 9월 찍은 컴퓨터단층촬영(CT)에서는 폐의 결절 크기가 줄어들기도 했다.
유 교수가 암 치료를 소명으로 삼겠다고 결심한 것은 본과 2학년 종양학 첫 수업 때 그의 스승인 조종관 교수로부터 종양학이 한의학의 미래 비전이 될 수 있다는 말을 듣고서였다.
“‘창의성은 연결에서 나온다’(Creativity is just connecting things)는 스티브 잡스의 말을 좋아해 자주 인용합니다. 특히 서로 다른 것 사이의 연결 말입니다. 운 좋게도 한의대 시절 종양학과 한의학의 연결이라는 통찰을 갖게 됐습니다.”
유 교수는 졸업 뒤 대전대 대전한방병원에서 암환자 치료와 통합암치료법 연구에 몰두했다. 특히 한국형 통합암치료법 정립을 위한 과학적 근거를 마련하는 데 힘을 쏟았다. 이를 위해 국경을 넘나들며 배우고 연구했다.
1998년 중국 베이징 광안먼병원에서, 2001년에는 상하이중의약대학 부속 룽화병원에서 연수했다. 중국은 국가 차원에서 통합암치료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었다. 연수 기간 유 교수는 특히 중국동포인 박병규 광안먼병원장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유 교수는 광안먼병원 연수를 마친 뒤 귀국해 암세포의 혈관 신생을 억제하고 종양면역을 활성화하는 항혈관 면역요법을 발전시켜 환자 치료에 큰 성과를 냈다.
그는 2007년 이 방법으로 동서암센터의 단독 한의암치료 결과를 분석한 최상연속증례프로그램(BCSP) 연구 결과를 SCI급 국제 학술지인 ‘통합암치료지’에 발표했다. 인도에 이어 아시아에서 두 번째였다. 이듬해 같은 잡지에 자궁내막암, 췌장암, 림프종 환자의 치료에 대한 내용도 실었다.
2012년에는 국내 최초로 미국 텍사스주립대학의 엠디앤더슨 암센터 통합의학부서에서 방문교수로 1년간 연수했다.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폐암 치료를 받은 곳이다. 그 경험을 담은 책 ‘미국으로 간 허준’은 베스트셀러가 될 정도로 주목을 받았다.
유 교수는 병원 경영에도 뛰어난 능력을 보여줬다. 그는 2019년 대전대 서울한방병원 초대 병원장을 맡았는데 이듬해 코로나19 팬데믹이 세상을 덮쳤다. 하지만 그는 ‘근거 중심 통합암치료’와 ‘환자 중심 치료’를 모토로 내걸고 노력한 끝에 임기 중 병원 경영을 정상궤도에 올려놓았다.
서울한방병원장을 그만둔 뒤에는 다시 한국형 통합암치료의 발전을 위한 연구에 몰두했다. 2024년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 의대 데이나파버암연구소에서 교환교수로 재직하며 세계적인 통합암센터들의 임상 적용 사례를 경험했고 이를 새 책 ‘하버드로 간 허준’을 통해 알렸다.
유 교수의 그런 노력에 힘입어 대전대 한방병원 동서암센터는 한국 통합암치료의 본산이 됐다. 그는 ㈔대한통합암학회 이사장에 취임하면서 더 큰 꿈을 꾸고 있다.
“한국형 통합암치료법을 계속 발전시켜 세계가 주목하도록 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과학적 근거를 갖춘 솔루션을 계속 내놓아야겠지요. 어려운 길이겠지만 가능하다고 봅니다.”
권복기 기획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