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훈의 삐딱│‘엡스틴 파일’에 트럼프도 있다지만
도킨스·촘스키·서머스까지…‘정치적 자산’ 흔들
미국 의회에서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가 지난달 26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엡스틴 파일의 전면 공개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왼쪽 사진에는 과거 제프리 엡스틴과 트럼프의 친분을 보여주는 모습이 찍혔다. 로이터 연합뉴스
지난 몇주간 나는 영웅을 잃었다. 영웅이라고까지 하기는 좀 그렇다. ‘나의 영웅’ 이런 건 너무 미국적인 표현이다. 미국은 영웅이라는 단어를 참 좋아한다. 올림픽 메달을 따도 영웅이다. 아이를 투견으로부터 보호해도 영웅이다. 과체중인 사람이 살을 빼도 영웅이다. 평범한 개인이 모두 영웅이라는 특유의 미국 정신이다. 머라이어 케리 노래의 가사도 이렇다. “희망이 없다고 느낄 때 내면의 마음을 보며 강해지세요. 결국 알게 될 거예요. 영웅은 당신 마음속에 있다는 것을.”
미안하다. 나는 영웅이 아니다. 내 마음 깊은 곳에도 영웅은 없다. 게다가 생각해보시라. 미국에 영웅이 그토록 많다면 사회적 문제는 이미 다 해결됐어야 옳다. 그럴 기미는 없다. 그래서 미국은 디시(DC)코믹스와 마블코믹스를 만들었다. 슈퍼맨, 배트맨, 캡틴 아메리카, 아이언맨이라는 가상의 영웅이라도 만들어 정신적 무통 주사를 맞고 사는 것이다. 한국 영화계도 히어로물 비슷한 걸 만들려는 시도를 좀 했다. 잘될 리가 있겠는가. 영웅 서사에 있어서 한국인은 미국인의 반대다. 개인이 영웅이라는 건 믿지 않을뿐더러, 뭘 해낸 사람도 영웅이라고까지 받드는 건 꺼릴뿐더러, 있는 영웅도 내려앉히는 사람들이 한국인이다. 나도 그렇다.
물론 속으로는 몇몇 사상적 영웅 같은 걸 간직하고 살았다. 이를테면 나는 리처드 도킨스를 존경했다. 이 영국 진화생물학자는 잔인하다. 인간이란 오로지 디엔에이(DNA)라는 분자를 후세에 전하기 위한 생존 기계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걸 강력하게 주장한 책이 ‘이기적 유전자’다. 나는 이 책을 판본이 새로 나올 때마다 산다. 인간 존재에 지나치게 꽃 같은 화환을 주고 싶어지는 마음을 바로잡기 위해서다. 인간은 자기 존재에 너무 감상적으로 굴면 안 된다는 내 철학에 이토록 잘 맞아떨어지는 책은 없다. 도킨스는 무신론자의 영웅이다.
지난달 24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국정연설 직전에 의회에서 민주당 여성의원모임이 엡스틴 성착취 사건 피해 생존자들과 함께 연 기자회견에서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왼쪽 둘째)가 발언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노엄 촘스키도 있다. 진보 학자와 정치인에게 지난 반세기 동안 촘스키만큼 위대했던 인물은 몇 없다. 설명하기 쉬운 사람은 아니다. 좌파의 상징이기 이전에 언어학자다. 촘스키는 인류의 뇌에는 언어 습득 장치가 존재하고, 그 장치에는 보편문법이라는 원리가 작동하며, 그렇기에 모든 언어는 보편적 기제에 의해 작용한다고 했다. 언어생득가설이다. 여기서 멈추자. 내 보기에 세상에서 제일 이해하기 어려운 학문 중 하나가 언어학이다. 진보가 촘스키를 사랑한 이유는 언어학 때문이 아니다. “뉘른베르크 재판을 적용한다면 모든 미국 대통령은 교수형감”이라며 조국인 미국을 끊임없이 비판해온 덕이다.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이 촘스키 저작을 읽어본 적은 없다는 사실이다. 워낙 복잡한 생각을 복잡한 글로 풀어낸 양반이라 한국 진보 인사들은 종종 그의 말을 다 잘라 먹고 자기 입맛(두뇌 용량)에 맞는 것만 인용하곤 한다.
두 사람은 엡스틴 파일에 이름이 올라 망신을 샀다. 망신으로 끝날 것 같지는 않다. 촘스키는 일찍이 구설에 올랐다. 엡스틴 전용기를 타고 섬으로 가면서 찍은 사진들이 공개된 탓이다. 둘의 친분은 꽤 깊었다. 촘스키는 지난해 민주당이 공개한 엡스틴 이메일에서 “당신과 정기적으로 교류한 것은 귀중한 경험”이라고 했다. 미 법무부가 공개한 파일에 따르면 엡스틴이 2019년 성매매 혐의로 조사를 받을 때 “최선의 방법은 논란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조언하는 메일도 보냈다. 도킨스도 엡스틴과 교류한 흔적이 담긴 이메일과 사진이 공개됐다. 도킨스는 “기억에 없다”고 했다. 우리는 “기억에 없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오랜 경험으로 잘 알고 있다. 나의 믿음은 지진으로 흔들렸다. 존경은 쓰나미에 쓸려갔다.
미국 민주당 소속 로버트 가르시아 하원의원(왼쪽부터), 아델리타 그리할바 하원의원, 마크 켈리 상원의원이 지난해 11월 의회 상원의 엡스틴 파일 투명성법 가결에 따라 트럼프 정부가 해당 파일을 전면 공개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하필 그즈음 나는 베네치아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받은 짐 자무시 감독의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를 봤다. 록스타 톰 웨이츠가 연기하는 아빠는 가난한 척하며 자식들에게 돈을 정기적으로 타 먹는 뻔뻔한 늙은이다. 오랜만에 방문한 딸이 서재에서 촘스키 책을 발견하고 우습다는 듯 말한다. “하, 촘스키는 언제부터 읽으셨어요?” 기막힌 타이밍이다. 하는 일도 없으면서 잘난 척이나 하며 뻔뻔하게 자식들에게 돈이나 타 먹는 인간의 서재에서 발견하기 딱 좋은 책으로 짐 자무시 감독은 촘스키 책을 선택했다. 마음껏 웃을 수가 없었다. 만약 내가 자식이 있는 노년의 무직 페북 정치 논객이었다면 비슷한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자식들은 내 책장에서 ‘이기적 유전자’를 발견하고 물었을 것이다. “허, 도킨스는 언제부터 읽으셨어요?”
이 글을 쓰는 가운데 또 하나의 전직 영웅이 내려앉았다. 진보 경제학자 래리 서머스가 하버드 교수직에서 물러났다. 엡스틴과의 친분 때문이다. 심지어 서른살이나 어린 경제학자에게 끌린다며 엡스틴에게 연애 상담을 한 이메일도 공개됐다. 그냥 친분이 아니다. 어린 여성에 대한 아낌없는 사랑으로 하나가 된 끈끈한 친분이다. 나는 지금 통한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쓰고 있다. 엡스틴 파일은 진보의 무덤이 되어가고 있다.
물론 당신은 ‘트럼프도 있다던데!’라고 항변하고 싶을 것이다. 트럼프가 있는 만큼 빌 클린턴도 있다. 아니, 트럼프는 딱히 타격을 받지도 않을 것이다. 그는 도덕적 명분을 정치적 자산으로 삼은 인간이 아니다. 누구도 그에게서 윤리를 기대하지는 않는다. 리처드 도킨스는 다르다. 노엄 촘스키는 다르다. 래리 서머스는 다르다. 그 외에 엡스틴 파일에 등장하는 그 많은 진보 영웅들은 다르다. 미투 운동도 마찬가지였다. 보수의 무덤이 아니었다. 결국 진보의 무덤이었다. 진보는 오랫동안 도덕을 정치적 자본으로 삼았다. 그 자본은 붕괴하고 있다. 지나치게 거대한 규모로 붕괴하고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와중에 또 하나의 진보 아이콘이 붕괴했다. 빌 게이츠가 엡스틴이 소개한 두 러시아 여성과 불륜을 저지른 일을 스스로 공개했다. 빌 게이츠는 내 영웅이었던 적은 없으므로 타격은 조금 적다. 나는 애플에 투항하며 마이크로소프트 윈도를 버린 지도 꽤 오래됐다. 게다가 스티브 잡스는 2011년 엡스틴과 만날 새도 없이 세상을 떠났다. 정말 다행이다. 미투 운동이 한창이던 시절 누가 그랬다. 덕질은 죽은 사람 덕질만 하는 거라고 말이다. 나는 여기서 선언한다. 이제부터는 죽은 사람 덕질만 하겠다. 살아 있는 인간이란 믿을 게 못 된다.
김도훈 문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