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폭탄’. 삼백상회 제공
지난해 개봉해 일본 실사영화 흥행 기록을 깬 ‘국보’와 18일 개봉하는 ‘폭탄’에는 몇가지 공통점이 있다. ‘국보’는 재일동포 3세 이상일 감독이 연출을 했고, ‘폭탄’은 지금 일본 문단에서 대단히 주목받는 작가 중 하나인 재일동포 3세 오승호의 원작을 영화로 옮겼다. ‘폭탄’은 지난해 10월 말 일본에서 개봉한 인기 애니메이션 ‘극장판 체인소맨: 레제편’을 꺾고 흥행 1위에 올랐다. 두 작품은 지난해 흥행에 성공한 ‘8번 출구’와 함께 오랫동안 침체를 겪던 일본 상업영화의 부흥을 알렸다.
소설 ‘폭탄’은 2023년 일본에서 발간된 직후 미스터리 소설 순위·가이드북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1위, 서점대상 4위 등에 오르며 일찌감치 영화화가 결정됐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주인공이 도쿄 주요 도심의 폭탄 테러를 예고하면서 경찰과 주인공 사이에서 심장 쫄깃하게 펼쳐지는 심리전을 그려 호평받았다.
술에 취해 맥주 자판기를 부숴 연행된 중년 남성 스즈키(사토 지로)는 경찰의 심문에 집 주소도,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어눌하게 말한다. 부랑자 같기도 하고 지능이 떨어져 보이기도 하는 남성은 의미 없는 말을 이어가다 자신이 촉이 좋다며 폭탄이 터질 거라고 말한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경찰은 스즈키가 예견했던 시간에 도쿄 한복판 아키하바라에서 폭탄이 터지자 대책반을 꾸리고 경시청에서 온 강력범죄 전담 형사들이 심문을 시작한다. 선배 형사를 보조하던 루이케(야마다 유키)는 횡설수설하는 것처럼 보이는 스즈키의 말에 다음 폭발에 대한 단서들이 있다는 걸 알아차린다.
영화 ‘폭탄’. 삼백상회 제공
‘폭탄’의 첫번째 재미는 수수께끼를 풀듯 스즈키가 꺼내는 말들에서 단서를 캐내 폭탄의 위치를 찾아내려는 루이케와 스즈키의 심리전이다. 밀실에 가까운 취조실에서 다른 형사들은 자신만만함으로 스즈키를 궁지에 모는 듯하다가 예상 못 한 지점에서 공격당하며 멘털이 무너진다. 꾀죄죄하지만 순한 인상의 사내가 궁색하게 아부하다가 어느 순간 섬뜩하게 돌변하는 등 스즈키 역 사토 지로의 변화무쌍한 연기가 영화의 절반 이상을 끌고 나간다. 후쿠다 유이치 감독의 4차원 개그 영화에 단골 출연하던 사토 지로만 봤던 관객이라면 충격적일 만큼 놀라운 연기 변신이다.
영화 중반 경찰이 스즈키의 단서를 풀었다고 생각한 순간, 예상했던 유치원이 아닌 노숙자 무료급식소에서 폭탄이 터지며 혼란은 극도에 달한다. 경찰이 무의식적으로 노숙자 급식소를 지목하는 단서보다 유치원을 지목하는 단서에 집중했다는 사실을 두고 스즈키는 묻는다. “형사님은 생명이 평등하다는 걸 진짜 믿나요?” 단순히 장르적 쾌감에만 머물지 않는 이 영화의 주제 의식은 뒤로 갈수록 촘촘하게 사건과 연결되면서 인간의 고질적인 편견에 도전적인 질문을 던진다. 스릴러의 외피를 둘러쓴 작품 속에서 ‘살인자와 함께 살 수 있을 것인가’ 같은 불편한 윤리적 질문을 집요하게 던져온 오승호 작가의 주제의식이 영화에서도 흐트러짐 없이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