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심학산 맛집촌’
해발 194m 야트막한 심학산
가성비 좋은 맛집들 수두룩
파주 장단콩 두부 메뉴 특화
‘왕사남’ 밥상처럼 속편한 맛
파주 ‘심학산 맛집촌’의 대표 주자 중 하나인 ‘심학산 두부마을’의 비빔밥. ‘퉁퉁장정식’을 주문하면 리필이 계속되는 나물로 비벼 먹으라는 주인장의 조언을 듣게 된다. 박미향 선임기자
꽃망울이 터지기 시작한 봄이다. 가볍게 산행하기에 더없이 좋은 계절이 왔다. 경기도 파주에는 심학산이 있다. 파주시 동패동, 서패동, 산남동 3개 동에 둘러싸여 있는 산이다. 해발 194m로 낮다. 언뜻 야트막한 언덕처럼 보인다. 등산객이 애써 찾지 않는 산이지만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수려한 풍광을 목도할 수 있는 명소다. 이름엔 유래가 있다. 조선시대 숙종은 아끼는 학 두마리가 궁을 탈출하자 상심했다. 사방을 찾다가 학들이 지금 심학산 자락에 터 잡은 것을 확인했다. 숙종은 한자 ‘찾을 심’(尋) 자를 써 ‘학을 찾은 산’이란 뜻으로 심학산이라 이름 지었다.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다.
지역 주민이나 오르던 이 산이 지난 1월께 세상의 주목을 받았다. 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시즌2에서 스타로 등극한 임성근 셰프가 심학산 인근에 가게를 연다고 해서였다. 이 일대에서 장사하던 20여개 식당은 내심 기대가 컸다. ‘부부의 웃음꽃은 덤, 심학산 닭갈비’(이하 ‘심학산 닭갈비’)를 운영하는 설남순(57)씨는 당시 “(임 셰프 가게와의 경쟁에서 밀릴 것 같아 우리가) 손해라기보단 이름난 요리사가 오면 아무래도 좋다”고 했다. 하지만 이제 지역민들은 심학산 맛집과 임 셰프 이름이 연결되는 게 부담스럽다. 임 셰프가 음주 전력으로 물의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곳 식당들은 아쉬울 게 없다. 이미 가성비 좋은 맛집이 몰려 있는 ‘촌’으로 명성이 높기 때문이다. 전국권 명성은 아니지만 식도락에 일가견 있는 이들 사이에선 소문이 잔잔하게 난 맛집촌이다.
지난 1월 봄을 기다리며 심학산 둘레길을 걷는 지역 주민들. 박미향 선임기자
‘심학산 맛집촌’ 투어는 심학산초등학교 정문에서 시작하면 된다. 정문에서 대로변으로 난 길 양쪽에 한식당이 몰려 있다. ‘둘레길 한정식’ ‘원조 심학산 도토리국수’ ‘산뜨락 곤드레’ ‘이가네 봉평 메밀향’ 등이 있다. 그 뒷골목엔 ‘물 만난 한우’ ‘강경불고기’ 등과 도정률을 낮춰 쌀눈을 살린 쌀을 판매하는 ‘황초당’이 있다. 이 길에서 걸어 1~2분 거리에 ‘심학산 닭갈비’가 있다. 조금 더 멀리엔 ‘청이네 청도 미나리 삼겹’ ‘심학산 옹심이 메밀칼국수’ ‘청산어죽’ ‘옹기종기’ 등도 있다. 그야말로 한식 집결지인 셈이다.
‘심학산 닭갈비’는 ‘심학산 맛집촌’의 대표 주자다. 푸짐하다. 1인분이 1만8800원이다. 전체 450g에 닭고기만 400g이다. 당근, 양배추, 떡사리 등 부재료도 넉넉하다. 1인분은 2명이 먹고도 남을 양이다.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는 요술을 부린다. 식당 한쪽엔 손님이 마음껏 김치전을 부쳐 먹을 수 있는 조리 시설이 있다. 라면 조리대도 있다. 손님 누구나 끓여 먹을 수 있다. 가격에 포함되지 않는다. 올해로 개업한 지 7돌이 된 이 집은 서비스 이벤트도 한다. 3인분을 주문하면 피자 한판을 무료로 제공한다. 한쪽 벽에 붙은 전국 닭갈비 지도는 볼거리다. 남편 정경훈(62)씨와 개업해 가게를 운영하는 설씨는 본래 외식업자가 아니다. 남편이 직장생활을 접자 함께 시작한 제2의 인생이다. “이 일대(심학산 인근) 쟁쟁한 집이 일곱군데나 있어서 공부와 준비를 열심히 해서 왔다”고 말한다. 이 식당엔 유난히 젊은 층과 가족 단위의 손님이 많다. 손님 이금비(35)씨는 안양에 거주하는데 일부러 ‘심학산 맛집’ 리스트를 뽑아서 왔다고 했다. 그중에서 이 집을 “너무 좋다”고 평했다. “푸짐하고 직접 전도 해 먹을 수 있고 친절해서 젊은 사람들이 좋아한다”며 “가성비 최고”라고 치켜세웠다.
‘심학산 닭갈비’의 푸짐한 닭갈비. 가게엔 전 부쳐 먹는 시설과 라면 조리대가 있다. 무료다. 박미향 선임기자
조리된 ‘심학산 닭갈비’의 닭갈비. 박미향 선임기자
‘심학산 맛집촌’엔 유난히 ‘두부’를 내세운 집이 많다. ‘심학산 두부마을’은 파주 대표 특산품 장단콩을 재료로 쓴다. 미식가 허영만 만화가도 다녀갔다. 손님들이 가장 많이 주문하는 ‘퉁퉁장정식’과 ‘청국장정식’은 1인분이 1만4천원인데, 나물만도 6가지가 나온다. 생선구이와 두부, 상추 등도 곁들여진다. 주인 김나윤(62)씨는 “밥에 나물 넣어 비벼 먹으라”고 말한다. “나물은 계속 리필이 됩니다.” ‘퉁퉁장’은 김씨와 남편 황재웅(62)씨가 개발한 장이다. 우렁강된장에 이들만의 양념을 추가해 만들었다. 경기도 일산에서 식당을 운영했던 이 부부는 “심학산 등산을 하다가 너무 좋아서” 10년 전 이곳으로 터를 옮겼다.
파주 장단콩으로 만드는 ‘심학산 두부마을’의 두부. 매생이를 넣어 색이 일반 두붓집 두부에 견줘 조금 다르다. 박미향 선임기자
‘심학산 두부마을’의 퉁퉁장. 박미향 선임기자
이들이 만든 청국장과 두부는 엇구수하다. 구수함의 진수를 보여준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에서 엄흥도(유해진)와 단종(박지훈)이 함께한 밥상 같다. 두 사람이 잠시나마 불안을 내려놓고 먹은 밥상 말이다. 속 편하다. 이 집 구수함의 비밀은 장단콩에 있다. 장단콩은 과거 파주 장단 지역에서 재배된 토종 재래종 콩을 말한다. 장단 지역은 지금 민간인 출입 통제선(민통선) 안 마을 일대를 말한다. 인삼을 재배하던 비옥한 땅이었다. 일교차까지 커 맛 좋은 콩이 재배되는 최적의 조건을 갖춘 데였다.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장단 지역 대부분이 ‘민간인 통제 구역’에 포함되어 장단콩은 사라질 위기에 처했었다. 1973년 통일촌 사업으로 민통선 안 농지에서 장단콩 재배가 재개됐다. 구사일생으로 부활한 것이다. 1990년대 장단콩은 파주를 대표하는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매해 11월 파주장단콩축제도 열린다. 이젠 민통선 안 마을뿐만 아니라 파주 여러 지역에서 장단콩이 재배되고 있다. 그런데 어째 ‘심학산 두부마을’의 두부 색엔 특이한 점이 있다. 짙은 청록색 줄이 흰 두부 사이에 보인다. 김씨는 “매생이를 함께 넣어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지역 대표 식품이다 보니 ‘장단콩 통일동산두부마을’처럼 심학산 일대가 아닌 곳에서 장사하는 장단콩 전문점도 많이 생겼다. 2009년 문 연 ‘이가네 봉평 메밀향’엔 푸짐한 메밀 막국수 등이 있다. 한 사람이 배불리 먹고도 남을 양인데 7천원이다.
넉넉한 양으로 인심이 좋다는 얘기를 듣는 ‘이가네 봉평 메밀향’의 막국수. 박미향 선임기자
‘이가네 봉평 메밀향’의 메전병. 박미향 선임기자
심학산 약천사에 있는 ‘남북통일약사여래대불’. 높이가 무려 13m다. 불상 왼쪽 아래엔 소원 나무판 존이 있다. 박미향 기자
주말엔 어김없이 긴 줄이 생기는 동네다. 한식 취향대로 골라 먹기 좋은 식당이 포진해 있는 이 동네엔 심학산 말고도 가볼 만한 데가 있다. 심학산 약천사엔 ‘남북통일약사여래대불’이 있다. 높이가 무려 13m다. 2008년에 조성했다. 중생을 내려다보는 불상의 위엄에 압도당한다. 푸릇푸릇 봄기운을 맞으며 도는 심학산 둘레길 여행에 가성비 좋은 ‘심학산 맛집촌’이 함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