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간학회, 오는 6월 새로운 치료 가이드라인 제안 준비
지난 6일 서울 송파구 소재 서울아산병원에서 건강한겨레와 인터뷰 중인 임영석 대한간학회 신임 이사장(서울아산병원 소화기내과 교수). 최지현 기자
“환자분, 간수치(AST/ALT)가 조금 높으시네요.”
혈액검사나 건강검진 결과 상담을 받다보면 아리송할 때가 많다. 간수치(간효소수치)가 대표적이다. 검사 전 컨디션에 따라 ‘간수치 이상’(40IU/L(아이유퍼리터) 이상) 결과가 나올 수도 있어 대체로 문제가 없다곤 하지만, 불안감은 높아진다. 여기에 40살 이후 국가검진에 ‘비(B)형 간염 검사’가 추가되면 더욱 혼란스럽다. 이 검사는 B형 간염 항원(HBsAg, 바이러스)과 항체(HBs-Ab, 면역력) 보유 여부를 각각 확인하는데, 결과 해석과 대응 방안이 조금 어렵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임영석 대한간학회 신임 이사장(서울아산병원 소화기내과 교수)은 간을 ‘거대한 공장 단지’에 빗대어 설명한다. 우리 몸에 필요한 수많은 물질을 만들어내는 공장(간세포)이 모여 있기 때문이다.
그래픽은 임 교수 팀의 2023년 연구 결과를 요약한 것이다. 해당 연구는 혈중 B형 간염 바이러스 농도에 따라 간암 위험도가 일직선(기존 치료 기준)이 아닌 포물선 모형을 나타내며 중등도군 이상에서 B형 간염 치료를 시작할 때 간암 예방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임영석 교수 제공
지방간·간염, 간경변증(간경화), 간암으로 발전하는 간질환은 공장에 발생한 ‘화재 상황’으로 볼 수 있다. 여기서 B형 간염 바이러스(항원)는 화재를 일으킬 수 있는 ‘불씨’다. 국내 간경변증 원인의 70~75%, 간암의 60%가 B형 간염이다.
반면, B형 간염 항체는 ‘소방대원’이다. 불씨를 잡아 화재를 예방하거나 화재 상황을 진압한다. 간수치는 ‘화재 상황 보고서’에 가깝다. 불씨를 잡거나 화재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간세포가 파괴되며 발생하는 물질을 분석한 결과다.
이런 비유를 이용하면 B형 간염 검사 결과를 좀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먼저, 항원이 음성이고 항체가 양성이라면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 간 속에서 불씨가 살아날 가능성이 없는 상태(항원 음성)라 별다른 치료도 필요 없다. 과거 B형 간염 바이러스에 감염됐으나 자연적으로 면역력이 생긴 경우 혹은 예방접종을 받은 경우로 볼 수 있다. 재감염되거나 타인을 감염시킬 우려도 사실상 없다. 간혹 항원과 항체 모두 음성이 나오는 경우엔 재검사가 필요하다. 바이러스 노출 및 예방접종(항체 생성) 이력을 제대로 확인할 수 없는 탓이다.
문제가 되는 고위험군은 항원이 양성인데 항체는 음성인 경우다. 불씨가 살아 있는데 이를 막을 방책이 부족한 상태다. 다만, 고위험군이라 해서 당장 B형 간염 치료(화재 진압)가 필요하진 않다. 전파력(증식 속도)이 높은 대신 치명도(위해성)는 낮은 B형 간염 바이러스의 특성상 불씨 자체가 곧장 큰 화재로 이어지진 않기 때문이다. 간 기능에 크게 문제가 안 될 정도로 일정 수준 이하에서 바이러스가 증식하는 ‘면역 관용기’(비활동기) 상태는 치료 개입을 미뤄도 무관하다. 문제는 간염 바이러스의 증식 속도가 개인의 면역력과 간세포의 재생 속도를 넘어서는 순간인 ‘면역 제거기’(활동기·활동성 B형 간염) 때다. 면역 세포들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간세포를 급작스럽게 공격하기에 순식간에 큰불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과거에 보균자로 불렸던 B형 간염 고위험군은 보통 6개월에 한 번 추적검사를 하며 의료진과 함께 상태를 지속적으로 점검한다. 치료를 시작하면 바이러스 유전체의 복제(증식) 과정을 방해하는 원리의 알약 형태 치료제를 하루 한 알 먹는다. 1990년대 말 치료제가 처음 나온 이후 3세대까지 발전하면서 치료 효과와 내성·간독성 등의 안전성도 빠르게 개선됐다. 완치는 아직 어려워 치료제를 장기 복용해야 한다. B형 간염 고위험군의 치료는 언제 시작할 것인가의 문제다.
이와 관련해 대한간학회는 오는 6월 국제적으로 새로운 치료 가이드라인을 제안하려고 준비 중이다. 만성 B형 간염 환자의 치료 기준을 간수치에서 ‘혈중 B형 간염 바이러스(HBV DNA) 농도’로 전환하려는 시도다. 간암 예방 효과를 높이기 위해 중등도 HBV DNA 농도인 2000단위(IU/㎖, 혈액 1㎖당 2천 개의 B형 간염 바이러스 유전자가 존재한다는 뜻) 이상이라면 간수치가 정상이라도 치료를 시작할 수 있도록 치료 시점과 건강보험 급여 기준을 통일하자는 제언이다. 현재 건강보험 급여 기준으로는 HBV DNA 농도가 2천IU/㎖ 이상이면서 동시에 간수치도 정상 상한치의 2배(80IU/L) 이상 상승해야 치료를 시작할 수 있다. 결국 간수치로 정하기 때문에 적기를 놓칠 가능성이 있다.
임 교수팀은 2023년 B형 간염 조기 치료 효과를 살펴본 어텐션(ATTENTION) 연구에서 HBV DNA 농도에 따른 B형 간염 조기치료 효과를 처음으로 입증한 바 있다. 우선 HBV DNA 농도가 증가할수록 간암 발생 위험도는 포물선 모양을 그린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저농도군(약 2천IU/㎖)에서 중등도군(1만~1억IU/㎖)으로 올라가면 간암 발생 위험비(HR=1)가 1.8에서 6.10까지 최대 3.38배 높아진 뒤 고농도군(1억IU/㎖ 이상)에서 위험비가 1.28까지 다시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때 중등도군부터는 간수치가 정상이더라도 치료제 복용을 통해 간암 발생 위험을 낮출 수 있는데, 중등도군에서 치료제를 복용하면 그 위험비가 최대 1.5배가량 낮아진다. 고농도군은 상대적으로 간암 위험도가 낮더라도 결국은 중등도군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치료제를 복용하는 등 선제적인 치료가 필요하다고 봤다.
임 교수는 이에 반해 간수치는 사후적 지표라는 점에서 치료 시기가 늦어진다고 지적한다. B형 간염 바이러스의 증식을 억제하기 위한 면역 활동으로 간세포가 파괴된 뒤에야, 즉 ‘불이 난 뒤에야’ 증가하는 탓이다. 임 교수는 이를 두고 만성 B형 환자들의 간암 예방엔 역부족이라고 진단한다. 우리나라의 B형 간염 진단율은 80~85%에 달하면서도 치료율은 22%에 불과한데 1999년부터 2013년까지 간암 조사망률(치료받다가 사망하는 경우를 나타내는 지표)은 줄지 않고 오히려 약 18% 증가한 것이 그 방증이다.
다행히 최근 들어 정부의 정책적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지난 2월 정부는 ‘감염성 간염 관리법’을 발의했는데, 이는 국가가 주도해 B·C형 간염의 발견과 진단, 치료, 관리까지 전 주기 지원 체계를 마련하는 게 골자다. 이는 세계보건기구(WHO)의 ‘2030년 바이러스성 간염 퇴치’ 목표와도 맞닿아 있다. 임 교수는 “이번 시도는 국내 학계의 연구·임상·정책을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하는 기념비적 사례”라고 평가하며 “전세계에서 가장 앞선 정책을 먼저 시행하기는 쉽지 않은 결정이겠지만, 우리 정부도 정책적으로 세계를 선도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용기를 갖게 되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