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사람 l 슈붕 지음, 이매진, 1만6800원
꼭 5년 전 악몽이 지금도 생생하다. 2021년 2월1일, 아침 일찍 엄마가 황급하게 ‘나’를 깨웠다. 전날 밤늦게까지 친구들과 온라인으로 수다를 떨고 게임을 하다 잠든 참이었다. “쿠데타가 일어났대. 새벽에. 이게 진짜야? 우리 어떻게 되는 거야?” 국립 양곤대에 다니며 외교관을 꿈꾸던 ‘나’도 믿기지 않았다. “가짜 뉴스일 거야. 그런 일이 벌어질 리 없어.” 전화와 인터넷이 차단됐지만, 금세 진짜임을 확인했다.
군부가 민주정부 2기 출범을 쿠데타로 뒤엎은 그날 이후, ‘나’와 가족, 미얀마 국민의 삶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나’는 딸의 안위를 걱정하는 부모의 만류를 뒤로하고 거리 시위에 나갔다. 시민과 친구들이 군인들의 총탄에 쓰러졌다. 사태는 갈수록 험악하게 치달았다. 충격과 슬픔이 컸지만 이 나라를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했다. 갈망과 고민이 깊었지만 군부 정권이 주는 졸업장에 연연할 생각은 없었다. 그해 3월, ‘나’는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제2외국어를 배우던 나라, 드라마와 케이팝 노래로만 알던 나라. 모든 게 낯설고 외롭고 힘들었다.
미얀마 시민들이 2021년 6월3일 아침 양곤 거리에서 쿠데타에 반대하는 기습시위를 벌이고 있다. AFP 연합뉴스
벌써 5년이 흘렀다. 그동안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 대학에서 학부를 마치고 대학원에 진학했다. 차츰 한국은 ‘살 만한 나라에서 머물고 싶은 땅’으로 바뀌었다. 생전 처음 책을 썼다. 글쓰기는 아주 단순한 이유에서 시작됐다. 잊히지 않으면 좋겠다는 마음. 모국어가 아닌 한국어로 내 이야기를 쓰는 현실이 실감이 안 난다. 제목은 ‘나라는 사람’. 지금 여기에 있는 ‘나’는 누구일까? 망명자, 이방인, 경계인, 무엇보다 여전히 조국을 사랑하는 미얀마 청년.
쿠데타 이후 미얀마의 최대 수출품은 사람이다. 생각할 수 있는 젊은 두뇌 유출이 심각하다. ‘나’도 합법적 한국 체류를 위한 비자 연장, 그를 위한 군부 정권의 여권 갱신에 가슴을 졸인다. 미얀마 국적으로는 내 나라에서 아무런 보호도 받을 수 없는 모순이 마음을 어지럽힌다. ‘나’는 앞으로 나아가는데 종신형을 선고받은 친구의 삶은 그날에 멈춰 있다. 분노, 무력감, 죄책감….
그래도 1980년대 이후 한국과 미얀마가 공유하는 민주화 투쟁의 경험은 연대와 희망의 근거다. 저항은 밀려난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붙잡을 수 있는 태도다. ‘나’라는 사람을 생각하면서 ‘나라(국가)는 사람’이라는 걸 깨닫는다.
* 이 기사는 미얀마 국적 한국 체류 대학원생이 한글로 쓴 수기 ‘나라는 사람’의 내용을 압축해 재구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