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전쟁의 시대, 문학의 역할을 보다
DMZ세계문학페스타 오늘 개막
‘노벨상 수상’ 알렉시예비치 등 문인 100여명
3일간 분단·평화 등 5가지 주제로 발표·대담
문제의식 공유 작가들, 올안 ‘연대 조직’ 발족
‘DMZ세계문학페스타 2026’ 행사 로고와 주요 참여 작가 사진을 결합한 한겨레 텍스트 섹션 커버 이미지. 그래픽 디자인 김은정 ejkim@hani.co.kr
27~29일 디엠제트(DMZ·비무장지대) 캠프그리브스와 파주출판도시에서 큰 행사가 열린다. 2015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를 비롯한 외국 작가 9명과 한국 문인 100여명이 참여하는 ‘디엠제트세계문학페스타2026’이 그것이다. ‘침묵의 땅에서 생명의 언어로’를 주제로 열리는 이 행사에서 참여 작가들은 분단·평화·민주주의·디아스포라·마이너리티 다섯개 세션으로 나누어 발표와 토론을 벌이고 대담을 펼치며, 한반도 분단의 현장인 디엠제트를 답사한다.
파주출판도시에서는 전국동네책방네트워크 주관으로 북페어도 열린다. 행사가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도록 참가 작가들은 ‘생명·평화·공존 세계작가네트워크’라는 조직을 띄우고 폐막에 맞추어 대회선언문을 발표할 예정이다. 행사 개막을 앞두고 이 대회의 공동집행위원장인 고명철 광운대 교수(문학평론가)와 상임전문위원인 김남일 소설가, 전문위원인 정은경 중앙대 교수(문학평론가)가 지난 9일 오후 한겨레신문사에서 행사의 배경과 의미, 전망을 살펴보는 좌담을 마련했다.
고명철(이하 고)
이번 행사가 두개의 주요 공간에서 펼쳐진다는 게 의미심장합니다. 캠프그리브스는 디엠제트에서 불과 2㎞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한반도 분단의 상처와 고통을 상징하는 장소인 셈이죠. 또 파주출판도시는 한국 출판의 현재를 보여주는 곳이자 미래의 한국 문학과 세계 문학의 관계를 만들어갈 공간이죠. 그 점을 염두에 두고 두분 선생님들께서 이번 행사의 취지와 의의를 먼저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김남일(이하 김)
저는 공간과 더불어 이번 행사가 열리는 시간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지금 우리는 아침마다 전쟁 뉴스를 접하고 있는데다, 한국은 불과 얼마 전에 전대미문의 내란을 겪은 바 있죠. 이제 겨우 정상을 되찾는 초입에 와 있지만, 사회 구성원 간의 갈등이 증폭되고 극우 세력이 혐오와 차별을 선동하는 엄중한 상황입니다. 이렇게 급박한 국내외 정세에서 문학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진지하게 질문을 던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정은경(이하 정)
두 분 말씀에 공감합니다. 특히 디엠제트는 우리가 극복하고자 하는 모든 분쟁과 고통을 상징하는 물증으로서의 장소라고 생각해요. 그동안 한국문학번역원과 대산문화재단 등이 세계적 규모의 문학 행사를 많이 치렀습니다만, 이번 행사는 분쟁의 현장인 디엠제트에서 열린다는 점에서 특히 의미가 깊다고 봅니다.
고
정 선생님 말씀처럼 이런 행사가 한국에서 한두차례 있었던 건 아닌데, 이 기회에 지난 과정을 돌이켜볼 필요도 있겠습니다. 오래전부터 한국 진보 문학이 세계 문학과 만나는 일에 적극 참여해온 김남일 선생님께서 간략하게 회고를 해주시죠.
김
먼저 떠올려야 할 사례가 1950년대 말부터 1980년대까지 활동했던 아시아아프리카작가회의입니다. 미국과 소련을 정점으로 하는 냉전 체제에서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겠다는 작가들이 반제국주의·반식민주의·반인종주의의 기치 아래 만난 모임이었죠. 1975년 김지하 시인이 그 단체가 주는 로터스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많은 작가들이 참여했고 성과도 거두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흐지부지되었습니다.
고
아시아아프리카작가회의는 1955년 반둥 회의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식민 지배에서 벗어난 신생 독립국들을 중심으로 미국과 소련이 주도하는 국제 질서와 다른 길을 모색하자는 정치적 움직임의 문학적 표현이었던 셈이죠. 그런 움직임 속에서 한국 문학 역시 모색을 이어왔고 그 연장선에 있는 게 김 선생님이 주도하신 ‘베트남을 이해하려는 젊은 작가 모임’이라고 봅니다. 이 모임이 한국 문학의 국제 연대의 물꼬를 튼 셈인데요.
DMZ 캠프 그리브스와 파주출판도시에서 열리는 ‘DMZ세계문학페스타 2026’을 앞두고 고명철 공동집행위원장(광운대 교수, 왼쪽부터)과 상임전문위원인 김남일 소설가, 전문위원인 문학평론가 정은경 중앙대 교수가 9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좌담을 하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김
제가 1993년에 처음 일본에 갔을 때 ‘재일조선인 작가를 읽는 모임’이라는 모임을 만났어요. 학자나 전문가들이 아니라 일반 시민들이 그런 모임을 꾸리고 있다는 게 충격이었습니다. 그에 자극을 받아 1994년에 동료 문인들과 함께 만든 게 ‘베트남을 이해하려는 젊은 작가 모임’입니다. 베트남은 우리가 전쟁 가해자로서 빚을 진 나라이고, 그런 베트남을 이해하는 것이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것이라는 생각이었죠. 모임은 그 뒤 꾸준하게 이어져서 베트남 문인들과 정기적으로 교류를 하고 신뢰 관계를 쌓는 성과를 이루었습니다.
이 모임 이후 ‘팔레스타인을 잇는 다리’라든가 몽골 교류 모임 ‘아시아문화유목’, 또 ‘버마(미얀마)를 사랑하는 작가들의 모임’, ‘인도를 생각하는 예술인 모임’ 등이 생겨나면서 인적 교류가 이어졌고, ‘아시아문화네트워크’라는 단체와 계간 문학지 ‘아시아’도 생겨났습니다. 그런 움직임들이 모여서 한 단계 더 나아가는 계기가 된 게 2007년 전주에서 60여개 나라 작가 100여명과 국내 작가 100여명이 참가해 열린 ‘아시아 아프리카 문학 페스티벌’이었습니다. 2010년대 초에는 인천에서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문학 포럼’이 몇차례 열리기도 했죠.
정
민족 문학이 1990년대의 담론이었다면 2000년대는 세계 문학 담론의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민족주의와 민족 문학으로 제국주의에 저항하기보다는 다른 세계 문학을 꿈꾸며 모여서 이야기를 나눌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세계 작가 네트워크를 만든다면, 분쟁과 갈등의 장소마다 상징적인 조형물을 만들고 작가들이 답사하는 네트워크 방식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고
좋은 말씀입니다. 과거와 같은 반제국주의나 민족주의와는 다른, 탈근대의 문제들이 논의 선상에 올라야 하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행사에 참여하는 작가들 중에서 두 분이 주목하는 작가가 있다면 소개해 주시면 좋을 듯합니다.
정
저는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와 ‘아연 소년들’을 들고 싶습니다. 알렉시예비치의 작업은 전쟁을 남성과 국가의 언어로 얘기하지 않습니다. 평범한 여성들이 전쟁 중에 겪은 하찮은 이야기들,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전한 소년들이 끔찍하게 희생당한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기록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소년병 출신 작가 이스마엘 베아의 작품들에도 눈길이 갑니다.
김
저는 일본 작가 호시노 도모유키의 ‘식물기’를 매우 신선하게 읽었습니다. 식물을 주인공으로 삼아 ‘식물적 사유’를 펼치는 소설집인데, 한강의 ‘채식주의자’와는 또 다른 충격을 받았어요. 그야말로 육식 문화의 폭력성을 극단적으로 보이는 미국의 행태에 맞서 식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겠습니다. 또 주목해야 할 작가는 이번 행사의 공동 조직위원장을 맡은 프리야 바실입니다. 인도와 영국, 케냐, 독일 4개국에 걸친 배경을 지닌 분인데, 이런 다국적 배경이 국제적 감각이나 디아스포라 문제 등에서 큰 장점이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고
디아스포라는 지금 전세계의 중요한 문학적 화두라 해야 하겠죠. 이번 행사 참여 작가 중에 아르헨티나 출신인 마리아 로사 로호 역시 디아스포라적 문학 세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정 선생님은 오래전부터 디아스포라 문학에 관한 연구와 비평을 해오고 계신데요, 그와 관련해서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정
지금 세계 인구 가운데 디아스포라가 3억명 이상이라고 합니다. 유대인 디아스포라가 700만명이 넘고 한민족도 비슷한 수입니다. 이번 행사에 참여하는 한국계 작가 제인 정 트렌카 역시 입양인으로서 디아스포라에 해당합니다. 그런 점에서 디아스포라 담론은 민족 문학과 세계 문학 담론에 못지않게 중요한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9일 한겨레 주최로 열린 ‘DMZ세계문학페스타 2026’ 기념 좌담에 참석한 문학평론가 고명철 광운대 교수(왼쪽부터), 소설가 김남일, 문학평론가 정은경 중앙대 교수.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고
전쟁과 폭력, 차별로 얼룩진 아비규환과 같은 세계에서 문학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역시 이번 대회 참가자들의 중요한 화두가 될 것입니다. 그와 관련해서 한말씀씩 해 주시죠.
김
문학은 기본적으로 골방에서 하는 작업이잖아요. 그리고 무엇보다 작품을 통해서 말해야 하는 거예요. 작품을 읽고 토론하면서 타자를 이해하고 대안을 찾는 작업이 트럼프 유의 폭력을 넘어서는 실마리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
동의합니다. 삶에서든 문학에서든 ‘연루’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인터넷 알고리즘의 미시 권력을 뚫고 나오는 언어가 육체성의 언어이고 현장의 언어인 것이죠. 알렉시예비치가 기록한 여성의 언어, 소년들의 언어입니다. 세계 문학은 칸트적 의미의 코즈모폴리터니즘을 지향해야 하겠지만, 문학적 발언이나 고민은 어디까지나 현장에 입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고
이번 행사가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작가들끼리 연루되고 연대해야 할 테고, 올해 발족 예정인 생명·평화·공존세계작가네트워크가 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김
이런 행사를 할 때마다 조심스러웠던 것이, 우리가 너무 나서면 다른 목소리가 지워지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2007년 전주 행사 때 인도 작가들이 했던 말이 기억나는데요, 한국이니까 왔다는 거였어요. 식민 지배 역사가 있는 일본이나 패권주의의 우려를 낳는 중국이 아니라 식민 피해자 출신인 한국이 주도하는 행사니까 참석한다는 거였죠.
정
올해 행사는 준비 기간이 짧았기 때문에 생각만큼 많은 외국 작가들을 초청하지 못했습니다. 섭외 과정에서 일정상 불가피하게 올해는 오지 못하지만 내년 행사에는 오겠다고 구두로 약속한 작가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고
맞습니다. 2021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압둘라자크 구르나, 부커상 수상 작가 아룬다티 로이, 팔레스타인 작가 아다니아 시블리, 한국계 미국 작가들인 그레이스 조와 캐시 박 홍 등이 내년에는 꼭 참석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디엠제트에서 열리는 행사인 만큼 북한 작가들의 참여를 호소하는 공개서한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만, 장기적으로는 북한 작가들도 참여해서 평화와 공존에 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