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책 l 해방신학자 김근수의 ‘슬픈 예수’
해방신학자 김근수. 김근수 제공
1988년 독일에서 성서신학 공부를 시작할 때, 독일 친구들이 가끔 말했다. “너는 민주주의가 몸에 밴 것 같지 않아.” 뜨끔한 지적이었다. 민주주의를 향한 내 열망과는 달리, 작은 일과 일상에서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습관이 많이 부족했다.
1997년 남미 엘살바도르에서 해방신학을 공부할 때, 글자를 못 읽는 어느 농민이 예수가 누구냐고 물었다. 어설픈 스페인어로 열심히 설명했지만, 나는 핀잔을 들었다. “어렵게 설명하면, 나처럼 못 배운 사람은 어떻게 알아듣나요?” 가난한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데, 6개 외국어를 하면 뭐하는가. 내 교만과 엘리트주의는 고맙게 무너졌다.
11년간의 유학 생활을 마치고 귀국해 제주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학원 강사로 살게 되었다. 2012년 어느날, 페이스북 친구가 된 한 일간지 기자가 책을 쓰라고 설득했다. 내 글이 간결하고 압축적이며, 예수에 대한 신선한 정보와 시각을 담고 있어 매력적인 책이 기대된다는 이유였다. 성서신학과 해방신학의 두 눈으로 마가복음을 해설하기로 나는 결심했다. 그런 파격적인 시도는 한국에서 처음이었다. 망설이지 않고 쓴 원고를 국민학교 5학년이 최종 학력인 어머니께 보여드리고, 이해되지 않는 곳에 연필로 동그라미 표시를 해달라고 부탁드렸다. 그렇게 내 첫 책 ‘슬픈 예수’가 2013년 6월에 나왔고, 두달 만에 4쇄를 찍었다.
슬픈 예수 l 김근수 지음, 21세기북스(2013)
마가복음의 예수 메시지는 이렇다.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억압하는 세력에게 저항하라. 그동안 억압받는 사람들에 대한 예수의 자비는 강조되었지만, 억압하는 세력에 대한 예수의 저항은 주목받지 못했다. 악의 세력을 편들지 않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악의 세력에 저항하지 않는 것은 나쁜 일이다. 서양신학은 예수에게서 ‘자유’를 발견했지만 ‘해방’을 알아차리진 못했다. 그래서 해방자 예수는 여전히 ‘슬픈 예수’다.
예수는 갈릴래아에서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로했고, 예루살렘에서 억압하는 세력에게 저항했다. 이스라엘을 식민지로 지배했던 로마제국 총독 빌라도는 서기 30년에 예수를 로마제국에 저항한 독립투사들의 괴수로 판결했고, 정치범 처형 방식에 따라 십자가에 처형했다.
68년, 네로 황제가 죽은 뒤 세 황제가 나타나 내전을 벌였다. 유대독립전쟁(66~70년)을 진압한 베스파시아누스 장군이 이집트와 시리아에 주둔하던 군대의 도움으로 70년에 새 로마 황제로 옹립되었다. 로마 시내로 개선 행진을 했던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와 두 아들로 대표되는 식민지 지배자 3인은,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매달린 두 독립투사로 대표되는 피식민지 사형수 3인과 극적으로 대비되었다. 인류 역사의 진정한 승리자는 로마 황제인가, 예수인가.
70년 무렵 로마제국 수도 로마에서 쓰여진 듯한 마가복음은 로마 황제가 아니라 예수가 복음이라고 선언하고, 살아 있는 로마 황제에게 붙이던 ‘신의 아들’과 ‘주님’이라는 존칭을 예수에게 헌정했다. 마가복음은 로마제국에 저항하는 불온 문서에 다름없었다. 그런 살벌한 환경에서 탄생한 마가복음은 인류에게 큰 선물이다.
첫 책이 나온 뒤 후속작 요청과 인터뷰 등으로 내 삶은 더 바빠졌다. 세월호 참사 두달 뒤인 2014년 6월, 한 중앙 일간신문의 통신원 자격으로 바티칸 교황청을 방문해 취재했다(5회 연재). 두달 뒤,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방한했을 때 주한 교황청대사관에서 알현했다. 교황님은 내 스승 소브리노 신부님과 오랜 친구 사이다.
그후 마태복음 해설서 ‘행동하는 예수’(메디치미디어, 2014), 누가복음 해설서 ‘가난한 예수’(동녘, 2017), 요한복음 해설서 ‘평화의 예수’(동녘, 2018)가 연이어 출간됐다. 지금까지 저서 12권과 번역서 3권을 냈고, 올해 3권이 더 나온다. 성서신학과 해방신학의 두 시각으로 ‘가난한 사람들’, ‘예수’, ‘성서’라는 세 주제를 40년째 연구하고 있다. 세상에는 우여곡절, 인연, 보이지 않는 손이 분명히 있다. 어리석은 나를 가르치고 보호하고 지켜주신 스승, 은인, 동지, 특히 어머님, 아내, 딸, 아들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 그리고 다음 책들
예수 평전
나의 예수 연구에서 가장 궁금한 질문은 두가지였다. 예수는 왜 가난한 사람을 선택했을까. 예수는 왜 십자가 죽음을 당했는가. 예수는 가난한 사람을 선택했기 때문에 십자가 죽음을 당했다. 가난한 사람을 모르면, 성서를 모르면, 예수를 따르지 않으면, 예수를 올바로 알 수는 없다. 예수는 갈릴래아에서 민중 문제에 몰입했고, 예루살렘에서 민족문제에 치중했다. 예수는 분단된 우리 민족에게 오늘 어떤 메시지를 주는가.
동녘(2021)
로마서 주석
바울은 로마에 사는 예수운동 사람들에게 자신의 삶과 생각을 해명하는 편지 로마서를 썼다. 로마서는 바울이 쓴 일곱 편지 중에 가장 중요한 편지이다. 로마서는 유대교와 그리스도교를 분열시켰는가. 로마서는 가해자, 즉 죄인만 일방적으로 변호하면서 죄인에게 상처받은 피해자에게 무관심했을까. 최근 성서학계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눈으로, 희생자의 눈으로 바울과 로마서를 해석하려는 시도가 활발하다. 믿음으로 구원, 하느님과 화해라는 주제 말고도 로마서에 매력적인 주제는 더 있다.
꽃자리(2022)
예수운동
유대교와 초대교회 사이에 예수운동이 있었다. 예수운동은 유대교 내부의 개혁 그룹으로 존재했지만, 유대독립전쟁 (서기 66~70) 이후 유대교에서 분리되었다. 예수운동에는 유대교를 보는 관점에 따라 보수파, 중도파, 진보파가 있었고, 유대독립전쟁을 기점으로 1세대와 2세대가 나뉘었다. 세 그룹과 두 세대는 갈등과 영향을 주고받았다. 1세기 예수운동은 로마제국에 커다란 충격과 매력을 선사했다.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공동체가 민주적으로 운영되고 평등이 실천된 유일한 시기는 예수운동 1세기였다.
논형(2024)
갈릴래아 예수
예수 곁에 가난한 사람들, 제자들, 반대자들이 있었다. 가난한 사람들은 예수가 선포하는 하느님 나라와 예수를 환영했지만, 대부분은 예수의 제자가 되진 않았다. 왜 그랬을까. 예수와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 어떤 갈등이 있었고, 그 원인은 무엇이었나. 민중신학자 안병무 선생의 책 ‘갈릴래아의 예수’는 민중과 예수의 일치를 주목했다면, 내 책 ‘갈릴래아 예수’는 가난한 사람들과 예수의 일치보다 갈등에 더 집중하고 있다.
동연(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