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음반 ‘슈베르트’ 내고 80살 생일 5월10일까지 전국 투어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30일 서울 영등포구 신영체임버홀에서 열린 데뷔 70주년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음악 세계는 큽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곡들은 그 세계의 아주 작은 한 부분에 불과하죠. 알아야 할 곡도, 연주하고 싶은 곡도 아직 많은데 다는 못 하겠죠. 일생이 너무 짧아요.”
70년간 건반 위에서 쉬지 않았던 팔순의 피아니스트에게서 나온 “일생이 너무 짧다”는 말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다. ‘건반 위의 구도자’라는 유명한 별명을 어떻게 얻게 되었는지 알려주는 숙연한 답변이었다. 1956년 10살 때 해군교향악단과 그리그 피아노협주곡을 연주하며 무대에 데뷔한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데뷔 70주년을 맞아 새 음반 ‘슈베르트’를 내고 전국 투어에 나선다. 새달 3일 부산에서 시작해 전국 11개 도시를 돌고, 여든번째 생일인 5월10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공연을 펼친다.
30일 서울 여의도 신영체임버홀에서 기자들과 만난 백건우는 “이전과 다르게 편안하게 음악회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돌이켜보면 오랜 세월 동안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마음으로 스트레스를 받으며 하는 연주 생활이 이어져왔어요. 이렇게 생각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남은 건 음악을 즐기는 게 아닐까, 이제부터는 자유롭게 음악을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게 요즘 내 마음 상태입니다.”
그는 새 음반에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13·14·18·20번을 담았고, 공연에서 13·20번을 브람스 네개의 발라드와 함께 연주한다. 그는 이 특별한 시점에 슈베르트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슈베르트는 우리가 늘 가까이서 들어왔지만 정말 특별한 작곡가”라면서 “때로는 이 음악이 정말 인간이 쓴 건가, 천국에서 온 게 아닐까 착각이 들 때가 있다”고 했다. 그는 “어떤 작품들은 작곡가가 구상하고 만드는 노력이 보이는데, 슈베르트는 그냥 흘러나오는 음악 같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이번 곡들을 선택했다기보다 항상 같이 했던 느낌”이라고 덧붙였다.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네곡을 담은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새 음반 ‘슈베르트’. 도이치 그라모폰 제공
그는 올 하반기 자서전 출간도 준비하고 있다. 백건우는 “지난 60~70년 동안 세상도 많이 변했고 내가 겪은 세계도 많이 변했다”면서 “한국뿐 아니라 미국과 서유럽, 그리고 동유럽과 중국 등 급변한 세상에서 연주 생활을 하며 겪은 이야기들을 알리는 것도 나의 의무인 것 같아서 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콩쿠르에 참가하기 위해 처음 비행기를 타고 미국 뉴욕에 갔던 1961년을 떠올렸다.
“음악 역사에 남는 거대한 연주자들을 한 도시에서 만날 수 있었어요. 피아니스트만 해도 블라디미르 호로비츠나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클라우디오 아라우 등 열거하면 끝이 없는 거장들이 동시에 같은 도시에서 활동했고, 옆집에서는 번스타인이 매일 지휘를 했죠. 지금과는 분위기도 달랐고 음악인들이 음악하는 태도도 많이 달랐어요. 그런 시대를 거쳐오면서 내가 경험한 걸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익숙한 것, 편안한 것들에 안주할 나이가 됐지만 지난해 실내악단 이무지치와 함께 폴란드 작곡가 구레츠키의 피아노 협주곡을 한국 초연하는 등 끊임없이 도전해온 백건우는 젊은 음악가들에게도 현대음악에 대한 도전을 격려했다. “제가 줄리아드에서 공부할 때만 해도 현대음악을 가르치지 않았어요. 하지만 우리의 역할은 쓰인 곡을 청중에게 알리는 건데 200~300년 전 음악에 머물러 있어야 하나라는 질문이 필요해요. 특히 초연은 내 손으로 세상에 처음 울리는 소리를 책임지는 건데 그 이상 흥분되는 일은 없죠.”
이제는 자연스럽게 이름 앞에 붙는 ‘건반 위의 구도자’라는 별명에 대한 질문에 그는 구도자의 겸손이 담긴 나직한 말투로 답했다. “그 질문을 정말 여러번 받았는데, 누구나 자기가 하는 일에 충실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다 구도자이죠. 직업이 무엇이든요. 남들도 다 하는 건데 이런 별명은 좀 무겁게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