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고시언의 ‘백남준: 되감기/되풀이’전
거장 백남준의 장조카로 저작권 상속자인 켄 백 하쿠타가 백남준의 퍼포먼스 짝이었던 첼리스트 샬럿 무어먼의 대형 패널 사진 앞에서 포즈를 취하며 웃고 있다. 그는 1일 오후 서울 용산 아모레퍼시픽 빌딩 1층의 APMA 공간에서 개막한 가고시안 갤러리의 백남준 회고전에서 국내 취재진과 만나 앞으로 국내 전시 구상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노형석 기자
“백남준 삼촌이 지금 이 자리에 있었다면 정말로 기뻐하셨을 거예요. 그동안 한국에 소개되지 않았던 그의 중요한 작품들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게 이번 전시의 가장 큰 의미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한국의 큰 뮤지엄에서 백남준 전시를 한다면 저도 더없이 기쁠 겁니다.”
미디어아트 거장 백남준(1932~2006)의 장조카이자 저작권 상속자인 켄 백 하쿠타(75)는 행복에 겨운 듯 시종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는 모습이었다. 올해 백남준 20주기를 맞아 알려지지 않은 고인의 미공개 작품들을 한국 관객들에게 소개하는 회고전이 1일 하쿠타가 직접 참석한 가운데 막을 올렸다.
미국에 본사를 둔 메이저 화랑업체 가고시언은 이날부터 서울 용산구 아모레퍼시픽 빌딩 1층 프로젝트 공간 ‘에이피엠에이(APMA) 캐비닛’에서 20주기 기획전 ‘백남준: 되감기(Rewind)/되풀이(Repeat)’를 시작했다. 당대 첨단 기술과 예술을 접목하는 데 앞장섰던 작가의 진보적인 작품 세계 전반을 되짚어보는 이 전시는 하쿠타와 협력해 만들었다. 유족과의 협력 전시가 서울에서 열리는 건 25년 만이다. 하쿠타는 영국제 우편함으로 만든 설치 작품 ‘런던과 해외를 위하여’(우편함, 1982)와 생전 백남준과 첼리스트 샬럿 무어먼(1933~1991)이 협업한 ‘살아 있는 조각을 위한 티브이(TV) 브라’(1969) 등 역사적인 작품들을 일일이 설명하면서 삼촌과의 느꺼운 인연과 일화들을 털어놓았다.
“제가 16살 때였어요. 첼리스트 무어먼이 퍼포먼스에 앞서 삼촌이 만든 티브이 브라를 가슴에 착용하게 도와달라고 했어요. 저는 흔쾌히 오케이 하며 도와줬죠. 그런데 나중에 삼촌이 이 사실을 알고 어떻게 아이한테 이런 걸 시키냐며 불같이 화를 내서 난리가 났었죠. 하하.”
“어린 아이였을 적에 삼촌과 나는 뉴욕 맨해튼 소호에서 차이나타운까지 거의 날마다 함께 걸어서 산책하곤 했어요. 산책하면서 삼촌은 늘 신문 가판대에서 뉴욕타임스를 샀지요. 어느 날 자기 이름이 뉴욕타임스에 나온 것을 보고 삼촌이 말했던 게 기억나요. ‘뉴욕타임스에 이름 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아느냐’고요.”
하쿠타가 비화를 털어놓은 ‘살아 있는 조각을 위한 티브이 브라’는 전시의 대표작이다. 플렉시글라스 상자에 담긴 소형 흑백 비전 2대를 투명 비닐 속옷에 내장한 얼개를 띤다. 무어먼은 1969년 뉴욕 하워드 와이즈 갤러리에서 열린 ‘창조적 매체로서의 티브이’전 개막 퍼포먼스에서 이 작품을 처음 착용하고 연주했다. 첼로 연주 소리를 통해 비전 화면의 이미지를 변화시켜 ‘전자기기의 인간화’를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1일 서울 용산 아모레퍼시픽빌딩 1층의 특설전시장 APMA 공간에 선보인 백남준의 2005년 작 ‘골드 티브이 부처’. 노형석 기자
‘베이클라이트 로봇’(2002)은 중고 시장 등에서 모은 빈티지 라디오들로 구성한 작품. 백남준은 라디오를 영상을 틀 수 있도록 개조하고, 6개의 다이얼 계기판을 티브이 모니터로 교체해 공상과학 영화, 빈티지 로봇 완구 영상, 초기 비디오 편집 발췌 장면 등을 결합한 특별 영상을 내보냈다. 영상 설치 작품 ‘골드 티브이 부처’(2005)는 출세작 ‘티브이 부처’ 연작(1974~2005)의 후기작이다. 금박 입힌 채색 청동 불상을 폐회로 비디오카메라와 모니터 앞에 놓아 명상하는 듯한 구도로 배치해 고대의 영성과 현대 미디어, 동서양의 사유가 교차하는 지점을 보여준다.
하쿠타는 2006년 백남준이 세상을 떠난 뒤 국내 미술기관·화랑들과 기념 사업·전시를 놓고 갈등을 빚으며 10년 이상 연락을 끊은 바 있다. 그러다 최근에는 백남준아트센터, 국립현대미술관 등과 소통을 늘리면서 화해를 모색하는 조짐을 보여왔다. 그는 국내 미술계와 빚은 갈등과 관련해 “무조건 (소통을) 거절하거나 막은 것은 절대 아니었다”면서 “한국(미술계)의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제안이나 문의를 받아도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잘 몰랐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면서도 “(국내 미술계 인사들이) 제게 답을 듣지 못하거나 아예 연락을 하지 않은 채 (백남준과 관련된) 일을 진행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며 서운함을 내비치기도 했다.
드넓은 대양을 노 저어 가는 바닷사람들의 배를 떠올리며 만든 백남준 작가의 1995년 영상 설치 작품 ‘콘 티키’. 아모레퍼시픽 1층 공간의 백남준 회고전과는 별개로 지하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에 마련된 현대미술 소장품 특별전 공간에서 만날 수 있다. 노형석 기자
오는 2032년 백남준 탄생 100주년을 앞두고 한국에서 전시를 구상하고 있느냐는 물음에는 “탄생 100주년 전시가 열린다면 더없이 좋을 것”이라며 “아직 5년이란 시간이 남았으니, 전시를 준비할 시간은 충분하다”고 답했다. 그는 자신과 동료들의 백남준 과업을 강조하면서 말을 맺었다. “목표는 명확합니다. 백남준의 가장 좋은 작품을 최고의 박물관이나 개인 컬렉션이 소장하도록 하고, 그 뒤로는 에스테이트(유산)가 사라지도록 하는 게 저희들의 과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