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훈의 삐딱
방탄소년단(BTS)이 3월2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 마련된 특설 무대에서 3년9개월 만에 정규 5집 ‘아리랑’(ARIRANG) 발매를 기념한 무료 공연 ‘BTS 컴백 라이브: 아리랑\'에서 신곡과 춤을 선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나도 국뽕 좋아한다. 지난 10년은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가장 뽕이 차는, 아니다. 표준말을 쓰자. 가장 자랑스러운 시기였다. 애국적 시기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나는 애국이라는 말을 좋아해본 적이 거의 없다. 불평이 많은 사람이라 그렇다. 초등학교 시절 정수라의 ‘아! 대한민국’을 부르면서도 의아했다. “볼수록 정이 드는 산과 들”이라니? 1980년대 한국 산과 들은 정이 들 만큼 푸르지도 않았다. 그 시절 찍은 사진을 보면 배경은 언제나 황토색이다. 나무가 없어서 그렇다. 어린 시절 식목일은 국민적 행사였다. 모두 산으로 올라가 묘목을 심었다. ‘우리 강산 푸르게 푸르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영화 ‘기생충’이 오스카 작품상을 받는 날, 나는 울었다. 나는 잘 우는 사람이 아니다. 영화를 보고 울어본 적도 거의 없다. 유일하게 나를 울리는 영화는 윤제균 영화다. 영화평론가로 일하며 항상 삐딱하게 구는 주제에 ‘국제시장’을 보고 울었다고 말하는 건 아무래도 좀 부끄럽다. 어쩔 수가 없다. 나는 한국적 신파에 약하다. ‘이래도 울지 않을 작정이냐!’ 호통치는 영화를 봐야 비로소 눈물이 난다. 그런 내가 시상식을 보면서 울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영화계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나 울어.” 답장이 돌아왔다. “나도 울어.”
싸이 유튜브 공식채널 ‘오피셜 싸이’ 갈무리
그 순간이 내가 국뽕을 마침내 받아들인 순간이었을 것이다. “두 유 노 싸이?” “두 유 노 김치?” 하던 게 엊그제다. 이젠 “두 유 노?”를 할 필요가 없다. 모두가 안다. 나는 “두 유 노 싸이?”를 직접 입으로 꺼내어 말해본 적도 있다. 헝가리에 갔을 때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빌보드를 휩쓴 이듬해다. 공원에 앉아 있는데 담배가 피우고 싶었다. 아무리 둘러봐도 편의점이 보이질 않았다. 한국만큼 편의점이 많은 나라는 없다(역시 한국이 최고다). 나는 담배를 피우는 헝가리 젊은 친구들에게 다가갔다. 영어를 못하는 친구들이었다. 그중 하나가 서툰 영어로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 “사우스 코리아”라고 답했다. 다들 멍한 눈동자였다. 나는 말했다. “두 유 노 싸이?” 말춤을 추며 말했다. 그들도 웃으며 말춤을 추기 시작했다. 싸이 덕에 부다페스트에서 공짜 담배를 피웠다. 싸이 만세다.
비티에스(BTS) 앨범이 빌보드 차트 1위를 차지한 날, 나는 부다페스트에서의 10년 전을 떠올렸다. 음악평론가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이게 무슨 일이야?” 답장이 왔다. “그니까, 이게 무슨 일이야?” 국뽕이 차올랐다. 사실 나는 비티에스 노래를 그리 좋아하지도 않았다. ‘피 땀 눈물’이나 ‘불타오르네’ 같은 노래를 좋아하기에 너무 나이가 들었다.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리며 일하면 죽는 나이다. “서서히 사라져 가느니 한순간에 불타 없어지는 것이 낫다”던 커트 코베인의 유언을 행하기에도 너무 늙어버렸다. 비티에스가 빌보드 차트에 오르는 것이 더는 낯설지 않을 때 내놓은 노래들은 좋아한다. ‘다이너마이트’와 ‘버터’는 내가 노래방에서 부를 수 있는 유일한 비티에스 노래다. 랩이 별로 없어서다. 랩을 맡고 있는 알엠(RM)과 슈가와 제이홉에게는 죄송하다.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3월21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정규 5집 \'아리랑\'(ARIRANG) 발매를 기념해 무료 공연 ‘BTS 컴백 라이브: 아리랑’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3년여간 나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기대를 했다. 군 복무를 마친 비티에스가 어떤 앨범을 내놓을지 궁금했다. 모든 것은 후속타가 결정한다. 봉준호가 ‘기생충’ 이후 내놓은 ‘미키 17’은 좀 실망스러웠다. ‘오징어 게임’ 두번째 시즌도 실망스러웠다. 케이팝도 좀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데뷔하자마자 빌보드 차트에 3곡을 올리며 비티에스 공백을 메꾸던 뉴진스는 활동이 막혔다. 이러다 나의 국뽕 시대는 생각보다 빠르게 저물고 말 것인가. 고민하던 차에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폭발했다. 그걸 한국 콘텐츠로 보느냐 아니냐 논쟁은 있을 수 있다만, 아니다. 어쨌든 그건 한국인이 지휘하고 한국인이 참여해 만든 콘텐츠라는 점에서 그냥 국뽕 메뉴에 추가해도 괜찮다.
비티에스 광화문 공연을 보며 조금 당황했다. 나는 이미 국뽕러(국뽕에 취한 사람)다. 어떤 국뽕도 이젠 민망함 없이 삼킬 수 있다. ‘아리랑’이 흘러나왔다. ‘달아 달아 밝은 달아’가 흘러나왔다. 비티에스가 랩을 했다. “Pardon 김구 선생님/ Tell me how you feel”(잠깐만요 김구 선생님/ 지금 기분이 어떠십니까)라고 랩을 했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라던 김구에게 보내는 윙크였다. 그 순간 마음속 국뽕이 오히려 살짝 가라앉았다.
3월21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정규 5집 \'아리랑\'(ARIRANG) 발매를 기념해 무료 공연 \'BTS 컴백 라이브: 아리랑\'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뽕이 절정에 달한 시기다. 뭘 해도 괜찮은 시기다. 뭘 해도 먹히는 시기다. 이런 시기에 국뽕을 강조하는 건 위험하다. 내셔널리즘이라 그런 게 아니다. 살짝 촌스럽게 느껴져서다.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 굳이 그렇게 했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에서 멤버들은 ‘아리랑’이라는 새 앨범 콘셉트를 듣자마자 말한다. “파리바게뜨 가서 김치볶음밥 먹는 느낌이야.” “그냥 국뽕으로 가려고 작정을 했다고 할걸?” 그럼에도 굳이 그렇게 한 이유는 이해한다. 그들도 어차피 한번은 하고 넘어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했을 것이다.
내 소셜미디어는 반으로 갈라졌다. 나와 비슷한 연배 아재들은 공연이 실망스럽다는 게시물마다 달려가 댓글을 쏘아붙이기 시작했다. 나이 들어 국뽕을 삼킨 세대는 국뽕 앞에서 과할 정도로 방어적으로 되는 경향이 있다. 비티에스 음악을 별로 들어본 적도 없다는 사실이 분명한 양반들의 댓글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내 국뽕에 침 뱉지 마라’ 정도가 될 것이다. 나도 내 국뽕에 누가 침 뱉는 거 좋아하지 않는다. 계속 뽕에 취한 상태로 살고 싶다. 그래도 누군가는 침을 좀 뱉어야 한다. 피, 땀, 눈물에 침도 좀 섞어야 걸작은 태어나는 것이다. 이 글을 읽고 ‘이딴 걸 글이라고 쓰면서 잘도 돈까지 받냐’고 댓글로 침 뱉을 분들에게는 미리 감사를 전한다. 덕분에 더 노력하며 산다.
김도훈 문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