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비 정순왕후의 무덤인 경기도 남양주 사릉. 국가유산청 제공
삼촌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죽음을 맞은 단종(1441~1457, 재위 1452∼1455)과, 혼약을 맺은 지 3년 만에 영영 이별하고 평생 비구니로 살았던 왕비 정순왕후(1440~1521). 둘의 무덤을 500여년 만에 꽃으로 잇는다.
국가유산청은 오는 11일 정순왕후의 능인 경기 남양주 사릉 일대에서 들꽃을 따서 단종의 능인 영월 장릉으로 옮겨 심는 추념 행사를 열 예정이라고 9일 밝혔다. 최근 단종의 유배 생활을 담은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1600만 관객을 넘기며 흥행몰이를 하는 가운데 기획한 행사여서 세간의 관심이 쏠릴 것으로 보인다.
국가유산청 쪽은 “단종 사후 무덤조차 떨어져 조성해야 했던 두 인물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꽃’이라는 생명의 매개체로 이어 역사적 슬픔을 치유하려는 취지로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단종의 무덤인 강원도 영월 장릉과 참배길. 국가유산청 제공
행사는 11일 오전 9시 남양주 사릉에서 단종과 정순왕후의 혼백 앞에 고유제를 올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허민 청장이 처음 술을 올리는 제관인 초헌관을 맡아 취지를 알리고, 들꽃을 딴 뒤 이날 오후 영월 장릉으로 들고 가 심는 일정으로 진행된다. 들꽃을 심을 장소는 1999년 사릉에서 장릉으로 옮겨 심은 ‘정령송’ 소나무 주변이다.
국가유산청은 이번 행사를 계기로 해마다 7∼8월께 장릉과 사릉의 사초(무덤 주위에 나는 풀) 씨앗을 캐어 이듬해 한식 일에 두 능묘 주위에 나눠 심는 것도 정례화하기로 했다.
정순왕후의 사릉에서 딴 들꽃을 옮겨 심을 장소인 영월 장릉 정령송 주변. 국가유산청 제공
영월 장릉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조선왕릉’ 40기 가운데 유일하게 수도권 바깥에 있다. 원래 영월 엄씨 집안 선산이었으나 단종이 1457년 유배지 영월에서 사약을 받고 숨지자 지역호장 엄흥도가 방치된 주검을 거두어 묻었고, 1698년 숙종 임금이 단종을 복위시킨 뒤 왕릉 묘역으로 격상됐다. 남양주 사릉은 단종의 누나 경혜공주의 시댁인 해주 정씨 집안 묘역이었다. 1521년 정순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일개 왕족인 노산군(단종) 부인의 무덤으로 조성됐자. 단종 복위 뒤 왕릉의 격에 맞춰 능역을 재조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