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감 제공하는 권력, 도파민 분비로 중독 불러
권력자는 연민·공감 잃을 가능성도 높아
권한 나누는 ‘임파워먼트’, 성숙한 권력의 조건
권력은 황홀한 도파민을 분출시키고 공감 능력을 빼앗는다고 ‘권력중독’은 주장한다. 사진은 윤석열·김건희 부부가 지난 2023년 1월 문화예술인 신년인사회를 갖는 모습.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오랫동안 사람들은 ‘권력은 사람을 외롭고 불행하게 만든다’고 믿어왔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영화 ‘대부’ 속 마이클 콜레오네는 전형적인 사례다. 그는 권력을 손에 넣을수록 점점 고립되고 불행해지는 인물이었다. 한국 현대 정치사를 돌아봐도 권력의 끝이 비극으로 마무리된 장면은 낯설지 않다. 하지만, 권좌에 있는 순간의 경험은 전혀 다른 모습일 수 있다.
처칠은 1940년 대영제국 총리로 임명된 첫날 밤 이렇게 썼다. “새벽 3시, 잠자리에 드는 순간, 커다란 안도감을 느꼈다. 마침내 나는 어디에든 지시를 내릴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사람이 되었다. 마치 지금까지의 인생이 바로 이 시간과 이 시험을 위한 준비였던 것처럼 느껴졌다. (중략) 나는 푹 잘 수 있었고, 오히려 아침이 빨리 오기를 고대했다. 나는 어떤 꿈도 필요하지 않았다. 현실이 꿈보다 나았기 때문이다.”
이 장면이 권력의 본질에 훨씬 가깝다. 수많은 심리학 연구와 조사에서 권력은 인간에게 강력한 행복감을 제공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더 높은 권력의 위치에 올라갈수록 사람들은 열정과 활력, 자신감 같은 긍정적인 감정을 더 자주 경험하고, 수치심이나 걱정 같은 부정적인 감정은 덜 느꼈다. 처칠이 말한 ‘어디에든 지시를 내릴 수 있는 권한’은 자신의 삶과 타인, 세상을 통제하고 있다는 감각, 즉 자유감과 자기주도성, 자기효능감을 강화한다.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배려와 보필 덕분에 강력한 안전감까지 경험한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권력은 뇌의 보상 시스템을 자극한다. 도파민 분비가 폭발하면서 권력 경험 자체가 강력한 쾌락으로 작동한다. 한번 권력의 감각을 경험하면 이전 상태로 돌아가기 어려워진다. 황홀한 도파민 분비를 끊을 수가 없어서 스스로 자리에서 내려오기가 힘들다. 이것이 독일 심리학자가 쓴 ‘권력중독’의 핵심 요지다.
하지만 권력자는 중독 이전에 이미 다른 변화를 겪는다. 연구에 따르면, 권력자는 필연적으로 연민과 공감 능력을 상실할 가능성이 높다.
권력자는 타인을 고정관념화하고 대상화하는 경향을 보인다. 즉 ‘젊은이는 게으르고 뻔뻔해’ ‘이민자는 위험해’ 같은 단순한 도식이 대표적이다. 고정관념은 사고를 단순화하는 인지 전략이다. 오류를 낳을 순 있지만 생각을 쉽고 빠르게 만든다. 권력자는 굳이 타인을 개별적인 존재로 세심하게 인식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고정관념을 적극 활용한다. 반면, 권력이 없는 사람은 상황이 정반대다. 그들은 권력자를 주의 깊고 정교하게 관찰해야 한다. 대인 관계에서의 잘못된 판단 하나가 미래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권력이 약한 위치일수록 타인에 대한 관찰은 더 섬세해진다.
이런 고정관념은 대상화, 탈개인화, 비인간화를 가속화하고, 궁극적으로는 공감 능력을 앗아간다. 심리학자 대커 켈트너는 “권력과 특권은 공감의 상실이라는 대가를 요구한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자신이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상상만으로도 공감 능력은 눈에 띄게 감소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흥미롭게도 권력자는 타인에 대한 감각보다는 자신의 내부 감각, 예컨대 심장박동 감지 같은 자신의 신체에 대한 감각성이 훨씬 더 뛰어난 것으로 밝혀졌다.
공감 능력이 떨어지니 행동은 무신경하고 거칠어진다. 사소한 일에도 분노를 거침없이 표출하고, 무례함도 서슴지 않는다. 권력이 행동의 억제력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말이 생겼다. “권력은 부패한다.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 “어떤 사람의 진짜 성격을 알고 싶다면, 그에게 권력을 줘보라.”
권력중독 l 카르스텐 C. 셰르물리 지음, 곽지원 옮김, 미래의창, 1만9000원
이 지점에서 심리학자들은 또 다른 의문이 생겨났다. ‘혹시 원래부터 나르시시스트이거나 사이코패스적 성향이 있는 사람이 권력자가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매우 자연스러운 가설이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 권력자로 등극하게 되는 것인지 성격의 다양한 변인과 리더십의 상관관계를 연구했다. 하지만 연구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냉혹함이나 공격성, 과도한 우월감과 권력 획득 사이에는 특별한 상관관계가 없었다. 반면, 외향성, 성실성, 개방성은 리더십을 얻는 데 확실히 유리했다.
결론은 못된 사람이 권력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을 가지게 되면 못돼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권력이 인간의 심리와 신경 체계를 바꾸며 그 과정에서 공감은 줄어들고 자기중심성은 강화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권력의 문제를 어떻게 다뤄야 할까?
많은 사람은 권력을 정치인이나 조직의 최고위층 문제로만 여긴다. 하지만 책은 권력을 성숙하게 다루려면, 우선 권력과 위계, 서열 같은 개념이 일상에 늘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두 사람만 있어도 위계와 권력이 발생하는 게 인간의 삶이라는 것이다. 부부 사이, 부모 자식 사이, 친구 사이에도 미묘한 위계와 권력이 작동한다. 권력은 뇌로 하여금 기분이 좋아지게 만들기 때문에 원하는 방식과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권력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그 본능을 인정하는 순간, 권력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문제가 된다.
권력은 중독성이 강하기 때문에 개인의 도덕성만으로 통제하기 어렵다. 저자는 해결책으로 ‘임파워먼트’(empowerment)를 제시한다. 임파워먼트란 권력을 독점하는 대신 타인에게 권한과 자율성을 나누어 주는 것, 다시 말해 영향력을 확장하는 건강한 방식이다. 권력을 내려놓을수록 공동체의 신뢰와 존중이라는 더 큰 보상이 돌아오도록 사회적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책은 권력을 비난하거나 찬양하지 않는다. 대신 인간이 왜 권력을 원하고, 권력이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키며, 그것을 어떻게 성숙하게 다뤄야 하는지를 탐구한다. 권력에 대한 인간적이고 심리학적인 통찰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