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개막 맞아 첫 방한
‘빌리 엘리어트’ 연출가 스티븐 달드리. 신시컴퍼니 제공
“공연장에서 같은 공기를 마시며 같은 이야기를 함께 지켜보는 경험은 에이아이(AI)도 재현할 수 없습니다.”
‘빌리 엘리어트’ 영화와 뮤지컬을 함께 탄생시킨 영국의 연출가 스티븐 달드리는 13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기자들과 만나 무대가 갖는 ‘특별한 힘’을 강조했다. 지난 12일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 우리은행홀에서 네번째 시즌을 시작한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7월26일까지) 개막에 맞춰 처음 한국을 방문한 달드리는 “한 소년의 성장담을 넘어, 사라져가는 공동체와 그 안에서 자기 목소리를 찾으려는 인간의 이야기”라고 작품을 설명했다. 그는 영화 ‘디 아워스’, ‘더 리더’로 아카데미 감독상 후보에 올랐고, ‘빌리 엘리어트’ 영화(2001)와 뮤지컬(2005), 넷플릭스 시리즈 ‘더 크라운’, 연극 ‘기묘한 이야기: 더 퍼스트 섀도’까지 스크린과 무대를 넘나들며 독보적인 연출 세계를 구축해온 거장이다.
달드리는 ‘빌리 엘리어트’가 지금도 유효한 이유로 “공동체의 붕괴”를 먼저 짚었다. 1984년 영국 광부 파업을 배경으로 한 작품은 발레를 통해 자기 언어를 발견하는 소년 빌리의 이야기이면서, 제조업 쇠퇴와 함께 삶의 터전을 잃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는 “작품에선 결국 공동체가 빌리를 지지하는 순간이 오지만 그 공동체 자체는 죽어가고 있는 것”이라며 “오늘날 에이아이 혁명으로 안정적이라 여겼던 산업과 일자리가 빠르게 사라지고, 다시 대규모 실업과 사회적 불안이 찾아올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럴수록 라이브로 진행되는 공연의 가치는 더 선명해진다고 그는 강조했다. “영화에서 에이아이가 점점 더 많은 것을 해낼 수 있겠지만, 극장에서 관객이 한 공간에 모여 호흡을 나누며 이야기를 경험하는 일만큼은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작품의 장수 비결에 대한 질문에는 뜻밖에도 “처음엔 이렇게 오래갈 줄 몰랐다”며 웃었다. “저예산 영국 영화였던 ‘빌리 엘리어트’가 처음부터 세계적 반향을 일으킬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고, 뮤지컬 역시 한국을 포함한 다른 문화권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전혀 확신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작품이 오래 살아남은 건 “공동체 속 소년이 자기 목소리를 찾는 핵심 서사가 보편적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더불어 그는 세계 어느 곳에서든 관객이 “빌리의 춤이 보여주는 ‘우아함’에 반응한다”고 말했다. “순수한 우아함을 무대 위에서 보는 순간 관객은 즉각적으로 감정적으로 반응을 하는 것이죠.”
영화와 무대 작업의 차이도 설명했다. 그는 “뮤지컬이야말로 무대에서 시도할 수 있는 가장 어려운 형식”이라고 했다. “연극이나 뮤지컬은 창작의 출발과 끝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공동으로 체감할 수 있는 작업인 반면, 영화는 수백, 수천명이 참여하지만 정작 무엇이 만들어지고 있는지 온전히 아는 사람은 연출가뿐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런 점에서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는 “소년이 무대 위에서 실시간으로 자신의 한계에 가까이 가는 순간을 관객이 함께 목격한다는 점에서 영화와는 다른 떨림을 준다”고 했다.
전날 서울 첫 공연을 본 소감도 밝혔다. 그는 “오랜만에 다시 본 ‘빌리 엘리어트’가 신선하고 살아 있었다”고 감격스러워했다. 특히 빌리 역을 맡은 아역 배우(김승주∙박지후∙김우진)를 두고는 “정말 놀라울 정도로 훌륭했다”고 칭찬했다. 달드리는 “영국 배우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을 만큼 세계적 수준”이라며 “서울 시민들은 이런 훌륭한 배우들과 공연 문화를 가진 축복받은 관객”이라고 말했다.
처음 방문한 서울에 대해선 “정말 살아 있는 도시”라며 “친절하고, 활기차고, 매우 흥미로운 도시”라고 표현했다. 무엇보다 도시가 지닌 공연의 에너지에 감동했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현재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공연 중인 연극 ‘기묘한 이야기: 더 퍼스트 섀도’를 한국에 소개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가장 ‘미친 공연’이죠. 서울에 꼭 가져오고 싶어요. 한국 관객들도 정말 좋아할 것 같습니다.”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빌리 엘리어트’ 연출가 스티븐 달드리. 신시컴퍼니 제공
연출가 스티븐 달드리가 12일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에서 개막한 ‘빌리 엘리어트’ 공연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신시컴퍼니 제공
‘빌리 엘리어트’ 연출가 스티븐 달드리. 신시컴퍼니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