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생체리듬 플랫폼 기업 ‘써카디언’ 대표 김대환 교수(국민대 전자공학부 )
현대인은 많은 빛 탓에 ‘생체리듬 교란’
‘항산화 효과’ 멜라토닌도 예외 없지만
기존 혈액·타액 측정방식, 불편·비효율
심박수 등으로 측정하는 새 방식 개발
‘시간 기반의 헬스케어 포털’로 진화 중
김대환 국민대 전자공학부 교수는 빛의 과잉시대에 빛을 제대로 조절하는 기술이 건강 회복의 열쇠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승식 기획위원
“공기청정기와 정수기는 이제 집집마다 필수 가전이 됐습니다. 먹는 물과 숨 쉬는 공기의 질은 그토록 꼼꼼히 챙기면서, 왜 우리는 호르몬과 건강을 좌우하는 ‘빛’은 그대로 방치하고 있을까요?”
21세기의 인간은 유례없는 ‘빛의 과잉’ 속에 산다. 밤늦도록 켜진 엘이디(LED) 조명과 스마트폰 화면은 뇌를 속여 밤을 낮처럼
인식하게
만들 수 있고
,
그 결과 생체리듬이
흐트러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
이 같은 교란은 수면장애와 면역력 저하 , 만성질환과의
연관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
이 무너진 리듬을 되찾겠다며 반도체 설계자의 정밀함으로 도전장을 내민 인물이 있다 . 국민대 전자공학부 교수이자 스타트업 써카디언 대표 , 김대환 교수다 .
반도체 설계 전문가, 인간의 리듬을 연구하다
김 교수는 서울대 전기
전자
공학부에서 학사·석사·박사 학위를 받은 뒤 2002년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디램(DRAM)설계팀 책임연구원으로 합류했다.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메모리 반도체를 직접 설계하던 그는 2005년 국민대 전자공학부 교수로 자리를 옮겨
지능형반도체
&
디스플레이연구소
(ISDRI)를 이끌었다.
반도체 소자와 바이오센서를 연구하던 그의 시선이
생체리듬
으로 향한 것은 2015년이었다. 같은 학교 동료 교수로부터 서캐디언 리듬을 처음 접한 순간이었다. 서캐디언(circadian)은 라틴어 ‘circa’(키르카·약)와 ‘diem’(디엠·하루)의 합성어로, 약 24시간을 주기로 반복되는 생체리듬을 뜻한다. 수면과 각성, 체온, 호르몬 분비, 면역 반응까지 관장하는 이 리듬은 건강 전반과 깊이 맞물려 있었다.
김 교수는 관련 의학 논문 수백 편을 읽으며 그 중요성을 확인했다. 동시에 한 가지 공백도 발견했다. 건강과 직결되는 이 문제에 공학적 접근을 시도한 사례가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연구는 대부분 의학과 생물학의 언어로 이뤄졌고, 측정과 제어의 관점은 상대적으로 비어 있었다. 김 교수에게 서캐디언 리듬은 결국 ‘정확히 측정하고 정밀하게 제어해야 할 시스템’이었다. 반도체 설계자가 평생 다뤄온 대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의학과 생물학의 영역이었지만, 공학자의 눈으로 보니 결국 ‘측정’과 ‘제어’의 문제였습니다. 반도체 설계자가 해온 일이란 정확히 측정하고 오차를 줄이는 일 아닙니까. 그런데 이토록 중요한 호르몬을 편하게 측정할 방법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이 저를 움직였습니다.”
그는 곧바로 연구 체계를 꾸렸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선도연구센터(ERC) 과제에 국민대 교수 8명이 참여하는 컨소시엄으로 도전해 총 200억원 규모의 연구비를 확보했다. 2016년 출범한 ‘국민대 일주기ICT연구센터’의 센터장을 맡아 학제 간 융합 연구를 이끌었고, 단계평가 S등급, 최종평가 A등급을 받았다. 7년간 발표한 과학기술인용색인(SCI)급 논문 310편, 특허 145건 출원/ 62건 등록은 그 연구 여정의 밀도를 보여준다. 당시 연구를 함께 한 핵심 인력 다수는 현재 써카디언에 합류해 기술 상용화를 이어가고 있다.
2018년 국민대 기술지주 1호 자회사로 출범한 써카디언은 이후 수차례 투자를 유치했고, 중소벤처기업부의 ‘민간투자주도형 기술창업지원 프로그램’(TIPS)을 포함해 총 6건의 정부 과제를 수주하며 약 13억원의 연구개발 자금도 확보했다.
‘어둠의 전령’ 멜라토닌, 몸의 시간을 지휘하다
멜라토닌의 리듬을 총괄하는 곳은 뇌 시상하부의 시교차상핵(SCN)이다. 눈을 통해 들어온 빛을 신호로 받아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 판단하고, 멜라토닌과 코르티솔의 분비 시점을 정교하게 조율한다. 멜라토닌은 저녁 무렵부터 서서히 증가해 새벽 2~4시 정점을 찍고 해가 뜰 무렵 급격히 감소하며 몸을 각성 상태로 이끈다.
멜라토닌은 단순한 수면 호르몬이 아니다 . 강력한 항산화 작용으로도 주목받는다 .
연구에 따르면 멜라토닌은 비타민 대비 우수한 항산화 잠재력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
세포 수준 연구에서 디엔에이(
DNA)
손상 억제 효과가 보고된 바 있다
.
면역 균형 조절 , 항염증 , 성호르몬과 포도당 대사에도 관여하며,
치매 등 신경퇴행성 질환과의 높은 관련성을 탐색하는 연구가 진행 중이다
.
그런데 이 호르몬은 30 살 이후
연령 증가에 따라 감소하는 경향이 보고됐다
.
나이가 들수록 잠이 줄고 회복이 더뎌지는 현상이 단지 노화의 결과만은 아닐 수 있다는 의미다 .
문제는 현대인이 밤에도 끊임없이 빛에 노출된다는 데 있다 . 멜라토닌이 부족할 수 밖에 없다 . 이를 바로잡으려면 단순히 조명을 어둡게 하는 수준을 넘어 , 빛의 질과 양을 설계해야 한다 . 해가 뜰 때와 질 때는 비슷한 밝기라도 파장이 다르고 , 인체는 바로 그 미세한 차이로 하루의 리듬을
읽어내기 때문이다
.
피 한 방울 없이 그려내는 24시간 호르몬 곡선
우선 주어진 과제는 멜라토닌 측정이었다. 기존 방식은 지나치게 침습적이었다. 병원에서는 팔에 주삿줄을 꽂은 채 밤새 혈액을 채취하거나, 일정 시간마다 타액을 반복 채취해야 했다. 게다가 이마저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병원이 국내에서 손꼽힐 정도였다.
그가 주목한 것은 심박수(HR)였다. 스마트워치만으로도 비교적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고 일상 속 연속 데이터 확보가 가능하다. 호르몬은 초 단위로 급변하는 신호가 아니라 5~10분 간격으로도 추적 가능한 느린 생체 신호다. 연구팀은 수년간의 임상을 통해
심박 리듬과 멜라토닌 리듬의 상관관계를 분석했고
,
유의미한 연관성을 정밀 분석했다
.
여기에 직접 개발한 광 파장 센서를 결합했다 . 빛은
멜라토닌 리듬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요인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 인공지능(
AI)
은
이 두 가지 데이터를 학습해 혈액 채취 없이 24 시간 멜라토닌 곡선을 실시간으로
추정하는 모델을 개발했다
.
기술의 가치는 결국 임상에서 입증된다 . 써카디언은 서울 강남 소재 대형
병원과
공동 임상을 진행했고 ,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 빛을 통제하는 것만으로도
멜라토닌
분비량은
24
명 평균 약
3
배
증가했고, 분비
시작
시각
(DLMO)
은
최대
1
시간가량
앞당겨졌다
.
뚜렷한 수면 효율 개선 경향이 관찰됐고
,
밤새 10 회 이상 깨던 환자의 야간 각성 횟수는 2.8 회로 줄었다 . 멜라토닌 분비 시각 예측 정확도는 오차 ±25 분으로 , 기존 학계 최고 수준인 ±45 분을 크게 앞섰다 . 이러한 결과들은
개인의 생체리듬을 정량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며
,
생체리듬을 정밀하게 모니터링하고 제어할 수 있는 기술적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
.
‘빛청정기’를 넘어, 시간의 플랫폼을 꿈꾸다
써카디언의 기술은 진단에 머물지 않는다.
빛공해
센서를 탑재한 램프
‘
멜라이트
’
와 멜라토닌 리듬 진단 앱을 B2C 시장에 선보이며 사업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헬스케어·건설·전자 분야 기업들과의 협업 범위도 넓혀가고 있으며, 조울증·양극성장애·ADHD 전문의, 암 환자 클리닉, 요양병원 등 의료 현장에서도 관심이 이어지고 있다.
김 교수가 그리는 최종 목적지는 TaaS, 즉 ‘적정시간 서비스’(Timing as a Service) 플랫폼이다. 개인의 생체리듬 데이터를 바탕으로 언제 먹고, 언제 자고, 언제 운동하고, 언제 약을 먹어야 하는지를 제안하는 시간 기반 헬스케어 포털이다. 앞으로는 성장호르몬, 인슐린 저항성, 장내 미생물 다양성 등으로 AI 모델을 확장해 호르몬 데이터로 질병 가능성을 조기에 감지하고 경고하는
예방의학적 가치를 지닌 서비스로 고도화할
구상도 품고 있다.
써카디언이 제시하는 로드맵은 스마트워치 기반 멜라토닌 앱에서 센서 내장 램프, 빛 환경을 수치화하는 M-EDI 센서, 그리고 빛 환경과 생체 신호를 함께 읽는 스마트링으로 이어진다. 물론 김 교수의 시선은 기술의 미래만을 향하지 않는다.
“빛은 누구에게나 평등한 공공재입니다. 빛의 교정을 통해
빛공해를 해결하고
지자체와 협력해 홀로 사는 어르신들의 삶의 질을 높이며 치매 예방에도 기여하고 싶습니다. 소외된 이들의 건강을 지키는 것이 이 기술이 가진 가장 큰 가치라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