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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에 갇힌 경전, 잃어버린 지혜 되찾아라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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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이자 노래, 수행의 예술이던 경전

근대 ‘이성’ 좇은 축자주의로 곡해·갈등

암스트롱 “경전의 잃어버린 예술 복원해야”

2023년 7월, 이라크 바스라에서 열린 집회에서 무슬림들이 스웨덴에서 발생한 쿠란 소각 사건에 항의하며 쿠란을 들어 보이고 있다. AP 연합뉴스

우리 시대의 가장 뛰어난 종교사 저술가이자 영성 사상가 중 한명인 카렌 암스트롱(81)이 일흔넷의 노년에 쓴 ‘경전의 탄생’(2019)이 번역돼 나왔다. 영국 태생인 암스트롱은 열일곱살에 가톨릭 수녀원에 들어갔다가 7년 만에 환속했다. 옥스퍼드대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뒤 종교학자로 방향을 바꾼 이래 ‘신의 역사’(1993), ‘붓다’(2001), ‘신화의 역사’(2005), ‘축의 시대’(2006), ‘무함마드’(2006), ‘신을 위한 변론’(2009), ‘신의 전쟁’(2014), ‘성스러운 자연’(2022)’ 등 20여 권의 저작(모두 번역서 제목)을 쏟아냈다.

암스트롱은 균형 잡힌 시각,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 방대한 비교종교학적 지식, 탁월한 통찰력으로 학계와 대중의 신뢰와 존경을 받아 왔다. 이번 ‘경전의 탄생’ 출간으로 암스트롱이 최근 사반세기에 걸쳐 쓴 종교 관련 저작 전부가 우리말 번역본을 얻게 됐다.

경전의 탄생 l 카렌 암스트롱 지음, 정영목 옮김, 교양인, 4만2000원

카렌 암스트롱. 위키미디어 코먼스

‘경전의 탄생’은 세계 주요 종교들의 경전이 문자에 갇힌 편협한 교리가 아니라, 고통과 필멸의 인간이 성스러움을 경험하며 존재의 의미를 찾고, 공동체가 시대의 곤경에 응답하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 써 온 현재진행형 텍스트임을 웅변한다. 책의 원제가 ‘잃어버린 경전의 예술(The Lost Art of Scripture)’이다. 암스트롱은 아담과 하와 이야기에 영향을 준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지혜’ 전승부터 기독교 성경, 이슬람 쿠란, 중국의 시·서·역경과 춘추, 인도의 베다 전통, 유대 랍비들의 탈무드, ‘법화경’을 비롯한 불교 경전까지 주요 종교 전통의 경전들을 시공간을 가로질러 살폈다.

모든 종교는 먼 옛날부터 개인의 수양과 안녕, 공동체의 정의와 평화를 기구한 데서 시작해 교리와 체계를 갖추며 발전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종교는 세계 전역에서 갈등과 분쟁의 주요 원인이 됐다. 전투적 무신론자들은 창조 신화가 과학적 발견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폄하한다.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은 창세기가 과학적 사실이라며 지구 나이 6천년을 주장한다. 이슬람 지하드(성전) 전사들은 쿠란에서 테러 행위를 뒷받침하는 구절들을 인용한다. 유대교 시오니스트들은 토라(모세오경)를 내세워 배타적 선민의식을 공유하고 팔레스타인 땅의 소유권과 아랍인 박해를 정당화한다. 중세 십자군 전쟁과 종교 개혁 이후 종교전쟁은 ‘신의 이름’으로 수행됐고 , 오늘날 서구 기독교 문명권과 아랍·이슬람권의 무력 충돌도 ‘신의 가호’ 아래 벌어진다.

2017년 1월 미국의 제45대 대통령 당선자가 연방의회에서 성서에 손을 얹고 취임 선서를 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암스트롱은 경전의 협소한 해석, 다시 말해 사람들이 경전에 담긴 진정한 메시지를 읽지 못하고 문자에 얽매인 ‘축자주의’가 원인이라고 단언한다. 오늘날 경전은 보통 기록된 ‘텍스트’를 가리킨다. 그러나 본디 거의 모든 경전은 영감을 받아 입으로 말해지고 전해졌다. 사람들은 세속적 언어와는 다른 방식으로 경전을 노래하거나 읊조렸다. 종교는 문자가 발명되기 훨씬 전부터 있었으며, 경전도 마찬가지다. “최초의 인간들은 도구를 조작하는 법을 익히자마자 삶의 공포·경이·신비라는 감각을 이해하기 위해 예술 작품을 창조했다. 맨 처음부터 예술은 우리가 ‘종교’라고 부르는 것과 뗄 수 없이 결부돼 있었는데, 이 종교 자체가 하나의 예술 형식”이다.

말하자면 경전은 눈으로 읽고 공부하는 텍스트가 아니라 소리이자 노래였으며, 엄숙한 의례를 통해 몸으로 익히는 수행의 예술이었다. “경전은 기본적으로 공연예술이며, 근대 이전에는 거의 언제나 의례 속 드라마에서 실연됐고 신화의 세계에 속해 있었다.” 예컨대, 6세기 초 아라비아 사막에서 상인 무함마드가 ‘신(알라)’의 계시를 받아 구술로 전한 첫 마디는 “이크라(Iqrah)!”, 즉 “암송하라”였다. 이슬람교 경전 ‘쿠란(Quran)’ 자체가 아랍어 ‘카라(qara'a, 읽다·낭송하다)’에서 나온 파생명사다. 중국 고대의 경전과 고전도 입으로 소리 내어 읽으며 익히고 전승됐다. 경전이 전하는 ‘신화(미토스, Mythos)’는 우리의 믿음을 확인하거나 생활 방식을 승인받기 위한 게 아니라, 우리의 정신과 마음의 변화를 요구하는 행동 강령에 가까웠다.

2022년 8월8일 ‘제62회 해인사 고려 팔만대장경의 날(정대불사)\'을 기념해 경남 합천군 해인사에서 팔만대장경을 옮기는 이운 행렬이 진행되고 있다. 이 행사는 국보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 유산인 팔만대장경을 수호하고 부처 가르침을 널리 알리기 위한 해인사의 전통 의례다. 연합뉴스

그러나 현대 사회는 ‘이성(로고스, Logos)’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근대 이후 인쇄술과 과학혁명, 계몽주의를 거치며, 경전이라는 텍스트는 점점 ‘사실을 전달하는 매체’로 재발견됐다. 근대 초기, 르네상스 인문주의자와 프로테스탄트(개신교) 개혁가들은 ‘기독교의 원천으로(아드 폰테스, ad fontes)’ 돌아가는 방편으로 “솔라 스크립투라(Sola Scriptura, 오직 경전!)”를 외치며 모든 이의 성경 읽기를 권장했다. 서구인은 성경 서사를 마치 로고스인 것처럼 읽었다. 그러나 성경을 포함한 모든 경전의 서사들은 세계 창조나 종의 진화를 규명하고 설명하기 위해 쓰인 게 전혀 아니다. 정확한 역사적 기록은 고고학적 방법론과 고대 언어에 대한 지식의 향상에 힘입은 근대의 산물이다.

종교적 전통과 경전 해석의 차이를 두고 가톨릭(구교)과 프로테스탄트(신교)의 갈등이 핏빛 폭력과 전쟁으로까지 번지자, 당대인들은 종교와 관계없는 진리에서 공통의 기반을 찾으려 했다. 르네 데카르트의 ‘회의하는 정신’, ‘생각하는 자아’는 근대의 주체적 개인을 낳았고, ‘솔라 스크립투라’는 점차 ‘솔라 라티오(Sola Ratio, 오직 이성)’에 자리를 내주었다. 자유사상가와 무신론자들이 전면에 등장했고, 니체는 ‘신의 죽음’을 선언했다.

문제는 경전을 로고스의 관점에서 접근한 현대적 독해가 형식적 명제를 얻는 대신 지혜와 통찰력을 잃은 결과를 낳았다는 것. 미토스와 로고스 모두 인간에게 필수적이며 둘 다 한계가 있다. 어느 한쪽만으론 세상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그러나 현대 과학기술 문명과 도구적 지식의 발달은 로고스를 추앙하며 미토스는 전근대적이고 비과학적인 것으로 치부한다. 그렇게 ‘잃어버린 경전의 예술’이 오늘날 인류가 존재론적으로 부닥친 문제의 원인이라는 게 암스트롱의 진단이다.

경전은 사라지지 않았다. 사라진 것은 그것을 다루는 방식이다. 암스트롱은 ‘늙어가는 세계’를 되살리기 위해 ‘경전의 잃어버린 예술’을 복원하자고 제안한다. 그것은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라, 텍스트와 인간의 관계를 다시 사유하고 우리 자신의 변화를 실천하는 것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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