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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년 만에 맞닿은 비석 조각, 신라 ‘수탉 사냥’ 암호문 비밀 풀어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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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형석의 시사문화재

지난 2월11일 국립경주박물관의 전문가 포럼 현장에서 참석자들 앞에 처음 공개된 2개의 월성 출토 비석 조각. 노형석 기자

“집에서 키우는 수탉들을 모두 잡거라!”

1500여년 전인 464년 음력 2월 신라왕 눌지 마립간은 왕도 서라벌(경주)의 아랫사람들에게 암호문 같은 명령을 내렸다. 당시 속국을 지켜준다는 명분으로 신라에 주둔한 고구려 정예 병사 100명을 ‘잡아야 할 수탉’으로 지칭했던 것. 속뜻을 간파한 신하들은 바로 군사를 일으켜 방심하던 고구려 정병들을 몰살시켜버린다. 앞서 한 고구려 병사가 고국으로 휴가차 돌아가는 길에, 동행한 신라인 마부한테 “신라가 머지않아 고구려에 망할 것”이라고 털어놓은 것이 화근이 됐다. 마부는 곧장 되돌아와 신라 조정에 일러바쳤고, 눌지는 작심하고 눈엣가시 같던 고구려군 제거 작전을 밀어붙였다. 이 와중에 병사 1명이 고구려로 도망쳐 몰살 사실을 전하자 분노한 장수왕은 고구려군을 진격시켜 복수를 꾀했다. 하지만 강원도 실직곡(삼척) 등에 방어선을 친 신라군에 막혀 공략은 실패한다. 이후 신라는 고구려 간섭에서 벗어나 고대왕국으로 발돋움하게 된다.

8세기 초 편찬된 일본 역사책 ‘일본서기’의 유랴쿠(웅략) 천황 8년(464년)조에 기록된 신라 비사의 한 토막이다. ‘삼국사기’ 등 국내 사서에는 전혀 없는 눌지의 ‘수탉 사냥’ 명령은 고구려 광개토왕비에만 기록된 신라 남정 기록을 함께 봐야 맥락을 좀 더 뚜렷하게 알게 된다. 신라는 눌지 마립간의 치세보다 훨씬 이전인 400년께 백제·가야·왜 연합군 공격을 받아 왕도 경주까지 무너질 위기에 놓였다. 당시 신라왕 내물 마립간은 고구려에 사신을 보내 구원을 간청한다. 이에 광개토왕이 구원병 5만 대군을 보내 가야·왜 군대를 격퇴한 덕분에 신라는 나라를 보전했다. 하지만 60년 넘게 고구려군이 경주 땅을 점유한 채 왕위 계승까지 간섭하는 속국의 설움을 견뎌야 했다. ‘일본서기’ 기록대로라면 눌지는 주권이 흔들리는 속국의 굴레를 고구려군 제거 작전으로 일거에 풀어낸 셈이다.

2020년 12월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 조사단이 경주 월성 북서쪽 해자 배수로에서 발견한 비석 조각(왼쪽)과 1937년 6월 월성 서쪽에서 최씨 성을 가진 인물(지역사학자 최남주로 추정)이 찾아냈다고 기록된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비석 조각(오른쪽)을 맞붙이고 근접 촬영한 모습.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 제공

월성 인근에서 83년의 시차를 두고 발견된 두 비석 조각을 맞붙인 상태에서 3디(D) 스캔으로 재현한 명문 한자들.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 제공

‘눌지의 수탉 사냥’이 최근 국내 학계에서 부쩍 주목받고 있다. 1937년과 2020년, 83년 시차를 두고 신라 왕성터 월성의 서쪽과 북서쪽 진입로 인근에서 발견돼 국립경주박물관과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에서 따로 보관해온 미지의 비석 조각 2점의 실체가 최근 일부 드러나면서다. 지난해 8월 전문가 판독회의에서 貢(공), 白(백), 稱(칭), 天(천) 등 16자에 달하는 두 조각의 글자들이 대부분 5세기 초 고구려 광개토왕비에 나온 글자들이고, 예서풍 글자체도 닮았다는 결론이 나온 데 이어, 두 비석 조각을 맞춰보니 아귀가 딱 맞아 원래 한 몸체였음이 기적적으로 확인됐다. 지난 2월 이런 내용이 연구소 보고서를 통해 학계에 알려지면서 두 비편은 5세기 신라사를 파헤치는 ‘태풍의 눈’으로 떠올랐다. 광개토왕비 기록 말고는 실체를 찾을 수 없던 5세기 초 고구려의 신라 남정과 이후의 신라 속국화, 그리고 5세기 중반 신라의 고구려군 축출을 둘러싼 역사 담론이 두 비편 덕분에 새롭게 꿈틀거리게 됐다.

경주 월성에서 83년의 시차를 두고 발견된 두 비석 조각의 정체를 둘러싸고 지난 2월11일 오후 국립경주박물관 수묵당에서 열린 전문가포럼 토론 현장. 신라사 권위자인 주보돈 경북대 명예교수를 좌장으로 하일식(연세대), 여호규(한국외대), 이수훈(부산대), 김창석(강원대), 정현숙(원광대), 기경량(가톨릭대) 교수와 동북아역사재단의 고광의·김현숙 연구위원이 참석해 의견을 나눴다. 노형석 기자

이에 대한 한겨레 단독 보도(2월3일치 19면) 직후인 2월11일 국립경주박물관에서 두 비편 실체 검토를 위한 전문가 포럼이 열렸다. 고구려사·신라사·금석문·서예사 전문가들이 처음 한자리에 모여 논쟁을 벌인 자리였다. 종합 토론에는 신라사 권위자인 주보돈 경북대 명예교수를 좌장으로 하일식(연세대), 여호규(한국외대), 이수훈(부산대), 김창석(강원대), 정현숙(원광대), 기경량(가톨릭대) 교수와 동북아역사재단의 고광의·김현숙 연구위원이 참여했다.

주제 발표부터 민감한 주장이 나왔다. 2020년 비편을 발견한 실무자였던 장기명 국립서울문화유산연구소 학예사는 비편 명문을 고구려 서체로 단정하고 5세기 초 고구려의 신라구원전쟁(남정) 기록으로 용도를 추정하면서, 244년 고구려 침공을 기념해 세웠다가 훗날 고구려인들이 깨부순 중국 무장 관구검의 비처럼 파손되는 운명을 밟았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현태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사는 인위적 파손설에 동감을 표하면서도 “경주 남산에서 화강석을 가져와 만들었다는 점에서 신라인들이 제작에 참여했을 것으로 보이나, 비편이 작아 내용을 바탕으로 건립 연대, 목적 등을 따지기는 어렵다”고 신중론을 폈다.

이어진 종합 토론에서 핵심 쟁점은 비석 조각의 국적이었다. 판독된 예서체 글자들을 고구려 사람이 새긴 것인지, 신라 사람들이 고구려 서체를 본떠 새긴 것인지 등을 놓고 논전을 펼쳤다. 여호규 교수는 광개토왕비의 영락 10년조 부분을 검토하다 최근 고구려군이 신라 왕성을 수리한 기록을 판독해 논고를 발표했다면서 고구려군 남정과 연관된 기록이었을 가능성에 초점을 맞췄다. 특히 그는 2020년 월성 출토 비석편 왼쪽 끝부분 상단에 井(정) 자로 추정되는 글자가 보인다는 점도 고구려 연관설을 입증하는 결정적 근거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해 눈길을 끌었다. 만주 지안의 광개토왕비와 경주 신라 무덤 호우총 출토 ‘광개토왕’ 명 고구려제 청동 그릇에 새긴 광개토왕(廣開土王) 명칭을 보면 왕의 명칭 가운데 開(개) 자를 ㄱ 자 안에 井 자가 들어간 특이한 모양새로 표기해놓았는데, 월성 출토 비편의 井 자 추정 글자도 광개토왕비와 호우총 그릇에만 보이는 고구려 서체 특유의 開 자 일부로 볼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고광의 연구위원은 여 교수의 開 자 명칭 해석은 비약이라며 동의하지 않았으나, 비편 글씨들이 광개토왕비 서체풍임은 분명하다고 강조하면서 고구려군 축출 과정에서 남정 기록을 새긴 비문이 조각나 흩어졌을 것으로 보았다. 반면 중견 신라사 연구자 하일식 교수는 “비석편이 출토된 신라 왕성 주변 공간을 우선 주목해 상상하고 추론해야 하는데 고구려 관련성만 치중하는 건 온당한 연구방법론이 아니다. 연대와 성격을 분석할 비편 내용이 빈약해 현재로선 판단 중지가 옳다”고 역설했다.

여 교수 등 고구려사 연구자들은 광개토왕비 계통의 고구려 비석 가능성에 무게를 둔 반면, 하 교수 등 신라사 연구자들은 추가 실물 자료 분석이 필요하다며 신중론을 피력한 셈이었다. 비편들이 비석의 극히 일부분이고 내용을 알 수 없는 한계가 뚜렷한 탓에 국적이나 부서진 세부 경위는 의견을 온전히 갈무리하지 못한 채 전문가 포럼은 마무리됐다.

2020년 12월 경주 월성 인근 배수로를 파낸 흙더미에서 발견됐을 당시 비석 조각의 모습.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 제공

이처럼 첨예한 논란이 빚어진 건 전공자 성향은 물론 지역사 자존심이 얽혀 있어서다. 비편 명문이 고구려 남정과 고구려군의 월성 주둔을 공인하는 결과를 낳을 경우 신라 터전인 경주 사람들은 치욕적인 역사적 사실을 새로 받아들여야 한다. 역사학자뿐 아니라 지역민의 자부심을 깎는 내용이어서 수긍하기가 어렵다. 고구려 전공자 입장에서는 사서에는 없는 고구려 대외활동 기록이 추가되면서 연구 지평이 넓어지는 실익을 얻게 된다. 양립이 쉽지 않은 현안인 셈이다.

문제의 두 비석 조각들은 지금 전시장에 나왔다. 지난 13일부터 국립경주박물관 신라천년보고에서 ‘83년 만에 만남, 경주 월성에서 찾은 비석 조각’이란 제목으로 열리고 있는 특별공개전(8월17일까지) 현장에서 볼 수 있다.

판도라의 상자는 열렸다. 5세기 신라 역사는 문헌 기록이 별로 없어 그동안 연구의 사각지대였다. 이제 기존 두 조각들의 수수께끼를 풀어줄 다른 비석 조각들의 명문 텍스트를 확실한 단서로 찾아내는 것이 한국 고대사학계에 긴요한 과제로 떠오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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