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연대 등 65개 단체 청와대 앞 기자회견
“우린 선거 때 캠프 쫓아다닌 사람들 아냐…
셀럽들, 문화의 사회적 역할 자리서 한번도 못봐”
파행인사 책임 규명·이 대통령 사과 요구
서승만 국립정동극장 대표이사와 황교익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원장. 문화체육관광부 제공
“문화예술은 사회적 가치와 방향을 만들어가는 영역이기에 인사는 곧 정책이며, 그 기준과 절차는 무엇보다 공정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 밀실·보은·셀럽 인사로 문화 현장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문화예술 생태계 전반에 깊은 불안을 야기하고 있다. 더는 침묵할 수 없어 이 자리에 모였다.”
문화예술인들이 다시 거리로 나왔다. 문화연대를 비롯한 문화예술계 대표 인사 20여명은 21일 서울 세종로 청와대 분수대 앞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재명 정부는 문화예술의 전문성과 신뢰를 훼손하는 일방적 인사조치를 즉각 중단하라”고 외쳤다. 이들은 파행 인사에 대한 책임 규명, 이재명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는 성명까지 발표했다. 성명엔 마을예술네트워크, 한국민족미술인협회, 극단 광장, 한국독립영화협회 등 전국 65개 문화예술 단체와 송경동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 등 794명의 예술인이 이름을 올렸다.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난 10일 코미디언 서승만씨를 국립정동극장 대표이사에, 17일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씨를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원장에 잇따라 임명한 게 도화선이 됐다. 이전부터 불거져온 문화예술기관장 인사에 대한 불만이 임계점을 넘어선 것이다. 이들은 일찌감치 이 대통령 지지 뜻을 밝힌 바 있다. 이원재 문화연대 집행위원장은 “불을 지른 건 서승만·황교익 임명인데, 이건 2명만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지난해 12월 이재명 대통령은 언론에 인사가 잘못됐다면 익명 문자라도 보내달라며 투명성과 개혁성을 강조했다. 그런데 지금 문화예술 현장은 초토화됐다. 대통령이 잘못된 인사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8월 아이티(IT) 전문가인 최휘영 문체부 장관 임명부터 지난 2월 배우 출신 장동직 국립정동극장 이사장, 이달 초 박혜진 국립오페라단 단장 임명까지 문화예술계가 거듭 우려를 표명했는데도 최근 서씨와 황씨까지 임명하자 결국 폭발했다는 것이다. 실제 황교익 원장 임명 직후인 지난 19일엔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전직 연구자, 한국문화예술경영학회 등 학계 연구자 400여명이 공동성명을 내어 ‘황 원장 임명 반대’ 뜻을 밝혔다. 같은 날 연출가 전윤환, 전인철 등 현장 예술인 400여명도 규탄 성명을 냈다. 이들은 21일 현재까지 서명을 이어가고 있다.
21일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문화연대 등 이재명 정부 문화예술 인사 정책을 규탄하는 문화예술계 관계자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싱어송라이터 이서영씨는 자신을 “한달째 예술활동 증명 심의위원회 검토 상태에 머물러 있는 예술인”이라고 소개하며 “개인 예술가가 예술인으로 인정받기까지는 이토록 까다로운 절차를 요구하면서 지금 문화예술 기관장들은 매우 쉬운 기준으로 임명되고 있다. 아무리 눈 씻고 봐도 정부·여당에 대한 지지와 무관하게 임명됐다고 보기 어렵다. 이분들 어떻게 검증하셨냐? 이건 우리 예술인에 대한 모욕이다”라고 목청을 높였다.
송경동 작가회의 사무총장도 “1년 전 문화예술인들이 광화문에 텐트를 치고 ‘윤석열 파면’을 외칠 때 15일간 단식농성을 했는데, 다시 청와대 앞에 서야 하는 현실에 만감이 교차한다”며 “우리는 선거 때에나 캠프에 쫓아다닌 사람들이 아니라 민주주의와 문화, 인권이 흔들릴 때 쉬지 않고 거리에 나와 지켰던 사람이다. 지금 기관장으로 오는 사람들을 셀럽이라 하는데, 지난 30~40년 문화가 사회적 역할을 해야 하는 자리에서 한번도 본 적 없는 인사들이다. 이게 말이 되느냐?”고 되물었다.
이날 청와대에 사회수석비서관과의 면담을 요청하는 공문을 전달한 이들은 “곧 이재명 정부의 문화예술 인사와 정책에 대한 현장 토론회를 열겠다”며 “인사가 바로잡힐 때까지 행동을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