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6일 GS아트센터 ‘베자르 발레 로잔 with 김기민’
한국 단원 이민경 “‘햄릿’서 나만의 오필리아 보여줄 것”
‘베자르 발레 로잔’ 내한공연을 앞둔 김기민(왼쪽부터) 무용수, 줄리앙 파브로 예술감독, 이민경 무용수. 인아츠프로덕션 제공
“줄리앙과 같이 리허설하기 전까지는 그 동작 연습을 혼자 아무리 해도 안 됐다. 어제는 어머니가 리허설을 봤는데 ‘줄리앙은 저렇게 잘하는데 왜 너는 못하느냐’라고 말씀하셨다.”
“줄리앙 단장은 30년 넘게 ‘볼레로’를 췄기에 그분 영상을 보고 제 영상 보면 민망하다. 열심히 보고, 열심히 연습했을 뿐이다. 내가 하는 건 단지 따라 할 뿐, 모든 걸 비비엘(BBL·베자르 발레 로잔)에 집중했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우러나는 마음으로 영광스럽다는 말밖에 생각 안 난다.”
너무 솔직한 김기민의 답변은 뜻밖에 웃음을 불러왔다.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의 간판 무용수 김기민은 실제 공연을 하루 앞둔 22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자신의 꿈이었던 베자르 발레 로잔(BBL)의 ‘볼레로’ 공연 주역으로 서는 것에 대한 기쁨과 부담감을 솔직하게 드러냈다. 자신의 이번 공연을 기다리는 국내 관객에게 김기민은 “비비엘에 집중하라”며 되레 발레단 단장이자 예술감독인 줄리앙 파브로의 교습법과 열정, 다른 단원들을 상찬했다.
김기민은 23~26일 서울 강남구 지에스(GS)아트센터에서 열리는 ‘베자르 발레 로잔 with 김기민’ 내한공연 무대에 선다. 23일과 25일 두차례 무대에 오르는 김기민은 비비엘의 대표 작품 ‘볼레로’의 주역 ‘라 멜로디’를 맡아 붉은색 테이블 위에서 춤추며 테이블 아래 38명 단원의 군무를 이끈다. 그는 이번 공연을 앞두고 줄리앙 파브로의 지도를 받으며 스위스 로잔에서 리허설을 계속해왔다. 발레단 설립자인 모리스 베자르가 작곡가 라벨의 음악에 역동적인 안무를 붙인 ‘볼레로’는 1961년 초연된 이래 비비엘의 대표 레퍼토리로 자리 잡았다.
22일 기자간담회에서 김기민(오른쪽)의 칭찬에 웃음짓는 줄리앙 파브로 예술감독. 인아츠프로덕션 제공
김기민은 “‘볼레로’는 제 꿈이기도 하고, 비비엘과 게스트 무용수로 춤춘다는 게 저에겐 큰 영광이어서 많이 긴장된다”며 “로잔에서 하루 3시간씩 연습을 했다. 마린스키에서도 15분, 20분을 연습했다. 한 발레로 3시간씩 연습한 적 없다. 화장실도 안 가고 물도 안 먹고 연습했다. 비비엘의 명성에 누가 안 가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그는 “리허설을 하면서 줄리앙이 ‘아 유 오케이?’라고 물어본 적이 많다. ‘볼레로’는 제가 꿈꾸던 무대인데, 비비엘이 외부인인 저에게 기회를 주고, 단장과 단원들은 저를 30년 일한 단원처럼, 가족처럼 맞아줬다. 제가 발레를 하면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며 이번 공연에서 최고의 무대를 보여주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베자르 발레 로잔’ 내한공연을 앞둔 김기민(왼쪽부터) 무용수, 줄리앙 파브로 예술감독, 이민경 무용수. 인아츠프로덕션 제공
줄리앙 파브로는 이날 간담회에서 “1년 전쯤 (이번 공연 기획사) 인아츠와 일본 도쿄 공연에서 처음 만나 김기민을 게스트로 한 협업 공연을 제안받았고, 서울에서 2회 공연을 하기로 했다”며 “김기민은 매우 스마트하고, 우리가 하는 말을 열린 마음으로 경청했다. 로잔에서 김기민과 너무 행복하게 리허설을 할 수 있었다. 저도 ‘볼레로’를 여러해 췄는데, 그 노하우를 전수하는 게 개인적으로도 도전이었다. 우리 모두 윈윈하는 경험이었다”고 했다. 그는 지난 2011년 한국에서 공연했던 경험을 떠올리며 “과거 비비엘의 대구 공연 때는 무용수로 섰는데, 이번엔 발레단 대표인 예술감독으로 찾아왔다. 한국에 다시 온 건 감동적”이라며 “그때도 지금도 한국 관객들이 저희를 기쁘게 환영해주고 환대해줘 감사하다”고 감회를 밝혔다.
그는 주역 ‘라 멜로디’를 김기민과 다른 여자 주인공이 각각의 무대에서 맡는 이번 공연에 대해 “베자르가 ‘볼레로’를 구상했을 때 유니섹스 작품으로 만들었다. 이걸 한국 관객에게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서 “주역이 여성 무용수일 땐 에로틱하게 느껴질 수 있고, 남성일 땐 무대 아래 38명 남성 무용수의 에너지가 느껴질 것”이라고 했다. 그는 “(주역이 독무를 추는) 테이블은 일종의 재단이다. 재단에서 곧 죽음을 맞을 것이라는 걸 알면서 (아래 군무를 추는 무용수들이) 자기를 잡아먹을 야수라고 생각하고 춤을 추는 것”이라고 작품을 설명했다.
이번 공연에선 발레단의 유일한 한국인 단원 이민경의 공연을 볼 수 있다. 17개 국적의 무용수 40여명으로 구성된 발레단에서 그는 ‘햄릿’의 주역 오필리아 역을 맡아 처음 한국 무대에 선다. 셰익스피어의 고전을 재해석한 작품이다. 이민경은 김기민의 예원학교 1년 선배다.
‘햄릿’의 주역 오필리아 역을 맡아 한국 무대에 처음 서는 이민경 무용수. 그는 로잔 발레단의 유일한 한국인 단원이다. 인아츠프로덕션 제공
이민경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2020년 입단한 뒤 일본에서 투어 공연을 두번 했다. 한국엔 한번도 오지 못했다. 한국에서 첫 공연을 올리게 돼 감격스럽고 영광이다. 발레단에서 유일한 한국인이라 자부심이 크고 뜻깊은 자리”라고 했다. 그는 자신의 역할과 관련해 “입단 6년 만에 ‘햄릿’을 통해 제 인생이 바뀌었다. 주목받지 못하다 주요 역할을 맡게 됐다. 작품은 오필리아에 굉장히 비중을 뒀다”며 “저는 좀 더 현대적으로 해석하려 한다. ‘내가 오필리아였다면 이민경은 어떻게 사랑하고, 어떻게 가족과 관계를 맺었을까’ 고민을 많이 했다. (다른 공연) 영상도 책도 많이 봤다. 한국 관객들이 이민경의 오필리아를 좀 더 눈여겨봐주기 바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