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질 페스토’만 즐겼다면 요즘 인기 ‘봄동’ 페스토는 어때?
파스타 외에 샐러드 드레싱, 스프레드로도 활용 만점
페스토는 봄나물을 색다른 맛으로 건강하게 즐길 수 방법이다. 샘표 우리맛연구원 제공
초록이 가장 맛있는 계절이 왔다. 봄동과 시금치, 달래와 냉이까지 시장바구니가 연둣빛으로 차오를 때면 늘 비슷한 조리법이 떠오른다. 무치고, 데치고, 국을 끓인다. 익숙하지만 어딘가 아쉬운 순간, 봄나물을 전혀 다른 얼굴로 즐길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바로 페스토다. 페스토는 이탈리아 북서부 리구리아주 제노바에서 시작된 소스다. 어원은 ‘빻다’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페스타레(pestare). 바질 잎과 마늘, 잣, 치즈를 절구에 넣고 찧어 올리브유로 풀어낸 것이 원형이다. 불을 쓰지 않고 재료를 으깨 향과 질감을 살리는 방식은 신선한 허브가 풍부한 지중해 지역의 생활방식과 맞닿아 있다.
페스토가 세계적으로 대중화된 것은 20세기 중반 이후다. 파스타 산업이 커지고 식품 보존·병입 기술이 발달하면서 ‘초록색 소스’는 이탈리아 가정식을 넘어 글로벌 식탁으로 확산됐다. 하지만 페스토의 본질은 바질에 있지 않다. 중요한 것은 ‘잎채소의 향과 기름의 조화’다. 이 지점에서 향과 맛의 축복이 응축된 나물은 페스토의 훌륭한 재료가 된다.
봄동 페스토는 쌉싸래한 단맛이 매력이다. 생으로 사용해도 되고, 잎이 두꺼우면 팬에 한 번 숨만 죽여도 좋다. 삼겹살이나 구운 닭요리의 곁들임 소스로 제격이다. 살짝 데쳐 물기를 짠 시금치로 만든 페스토는 크림 파스타나 오믈렛에 잘 어울린다. 입안을 개운하게 해주는 참나물, 아삭아삭 식감 좋은 세발나물과 돌나물은 생으로 만들 수 있다. 취나물, 냉이처럼 조금 억세거나 특유의 풋내가 거슬리는 나물은 데친 뒤 만드는 것이 좋다. 미나리나 달래, 명이나물을 활용하면 향이 한층 선명해진다. 생선이나 두부요리, 비빔국수에 어울린다. 쑥이 제철일 때 페스토를 만들었다가 빵이나 떡에 곁들이기도 한다.
브로콜리 페스토를 이용해 만든 파스타. 샘표 우리맛연구원 제공
‘페스토 초보’에게 샘표 우리맛연구원의 최영수 연구원은 “짙은 녹색 꽃봉오리와 단단한 줄기를 함께 먹는” 브로콜리 페스토를 추천한다. 최 연구원은 “브로콜리는 살짝 가열했을 때 풋내는 줄어들고 달큰한 채소의 향이 더욱 살아난다”며 “연두가 부족한 감칠맛을, 캐슈너트가 묵직한 보디감과 고소한 풍미를 줘 소스를 한층 부드럽고 깊이 있게 만들 수 있다”고 조언했다. 브로콜리 페스토는 파스타뿐만 아니라 구운 채소, 닭고기, 생선요리에 활용할 수 있다.
한국인이라면 밥과 잘 어울리는 ‘김 페스토’로도 응용할 수 있다. 레시피 개발에 참여한 최 연구원은 “재래 김을 향이 강하지 않은 오일에 부드럽게 풀어내면 김 본연의 바다 향미가 한층 또렷해진다”고 전했다. 마늘의 알싸한 풍미가 김의 비린 향을 자연스럽게 눌러주는 것이 ‘킥’이다. 밥과 비벼 쌈 채소에 돌돌 말아내면 별미 쌈밥이 된다.
김 페스토를 활용한 카프레제. 샘표 우리맛연구원 제공
페스토를 맛있게 만드는 핵심은 세 가지다. 첫째, 잎채소의 수분 관리. 물기가 남아 있으면 맛이 탁해진다. 둘째, 기름의 선택.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가 기본이지만, 향이 강한 봄나물에는 포도씨유나 카놀라유를 섞어도 좋다. 셋째, 견과류의 역할이다. 잣이 정석이지만 호두, 아몬드, 캐슈너트도 괜찮다.
믹서나 블렌더에 넣는 순서도 중요하다. 먼저 마늘을 넣어 잘게 간 뒤 견과류를 넣는다. 견과류는 생으로 써도 되지만 마른 팬에 살짝 볶으면 고소함이 배가된다. 그다음 손질한 채소를 넣고, 마지막에 기름을 천천히 부어가며 갈아준다. 한 번에 많이 붓기보다 질감을 보며 나눠 넣는 것이 좋다. 생으로 만드는 페스토의 경우 기호에 따라 레몬즙을 추가하면 상큼함을 더할 수 있다.
페스토는 파스타 외에도 다양한 용도로 활용할 수 있다. 샘표 우리맛연구원 제공
치즈는 선택 사항이다.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가 가장 흔하지만, 한국식 페스토라면 꼭 고집할 필요는 없다. 된장을 소량 넣으면 감칠맛이 살아나고, 치즈 없이도 완성도가 높아진다.
보관법도 중요하다. 페스토는 공기와 빛에 약하다. 밀폐 용기에 담아 표면을 올리브유로 덮은 뒤 냉장 보관하면 일주일 정도 유지된다. 얼음 트레이에 소분해 냉동하면 한 달 이상도 두고 먹을 수 있고, 필요한 만큼 꺼내 쓰기 좋다.
페스토의 대중적인 활용법은 크림 파스타나 리소토, 콜드 파스타를 만들 때 마지막에 넣는 것이다. 하지만 파스타에만 쓰기는 아깝다. 구운 채소, 삶은 감자나 달걀에 곁들여도 좋다. 각종 재료를 얹어 변주하는 타파스나 카프레제 샐러드에도 넣어보자. 입맛 도는 허브 비빔밥을 만들 수도 있고, 마요네즈와 섞어 샌드위치나 베이글의 스프레드로도 쓰기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