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서 사업하다 출가한 현안스님 “명상 통해 삶의 방향 찾는 데 도움 되고 싶어”
독특한 이력을 소유한 현안스님이 출가하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하며 활짝 웃고 있다. 박경은기자
출가를 결심했다. 그래도 미련은 남았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건지, 아니면 현실도피인지. 일단 3개월만 더 자유와 쾌락을 누려보자. 고급스러운 음식을 마음껏 먹었고 그렇게 즐기던 살사 댄스를 원없이 추러 다녔다. 시한부 자유가 주는 즐거움은 강렬하고 자극적이었다. 누려도 채워지지 않는 욕구와 일시적 만족의 한계는 뚜렷했다. “결론은 수행이 낫겠다는 거였어요. 지속적이고 깊은 안락은 세속적이고 일시적 즐거움과 비교할 수 없다는 것. 진짜 많이 놀아본 저같은 사람은 확실히 알겠더군요.”
시원한 미소와 거침없는 입담. 지난 13일 서울 종로구 불교의례연구소에서 만난 현안스님과의 대화 내내 쉴새없이 웃음이 터졌다. 전형적인 스님과는 사뭇 다른 삶의 궤적 역시 범상치 않다. 2019년 미국에서 출가한 스님은 베트남계 미국인 선사를 만나 중국 위앙종 법맥을 잇고 있다.
대학에서 미생물학을 전공한 뒤 바이오기업에서 해외영업을 담당하다 20대 후반에 미국으로 떠났다. 소모적이고 뻔한 일에 대한 회의. 새로운 기회와 가능성을 찾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한동안의 시행착오 끝에 전공을 살려 화장품 사업에 뛰어들었고 예상보다 잘 풀렸다. 3년만에 매출이 15배나 올랐다. 사업이 커지고 부는 늘었지만 불면증과 번뇌는 심해졌다. “제가 머리는 좋은 편인데 성격이 안좋아서 문제를 자꾸 일으키더라고요. 우연히 ‘미트업’이라는 플랫폼을 통해 명상을 배울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LA근교 노산사를 찾아갔어요. 거기서 만난 영화스님의 가르침에 빠져들었지요. 스님이 시키는대로 하는데 마음이 편해지면서 삶이 달라지더라고요. 주변 사람들이 먼저 그런 변화를 알아봤어요.”
내면의 문제가 나아지면서 사업은 더 번창했다. 세속적 즐거움도 아쉬움없이 누렸다. 잔디가 깔린 대저택에 살며 고용인을 두었고 독일제 스포츠카를 굴렸다. 틈나는대로 비즈니스 클래스를 타고 쿠바나 콜롬비아까지 살사를 추러 다녔을 정도다. 한없이 이어질 것 같던 절정의 시간들. 출가라는 화두는 어느날 갑자기 찾아왔다.
“출가하기 얼마전 영화스님을 모시고 한국에 다녀갔던 적이 있었어요. 제가 살았던 곳의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지요. 돌아가서 스님이 한국에도 위앙종 절이 있으면 좋겠다고 하시기에 제가 ‘그럴려면 한국 스님이 있어야 한다’고 하자 스님이 불쑥 말씀하시더라고요. ‘네가 하면 되겠다’고요. 저 그때 먹고 있던 밥알이 다 튀어나올 정도로 놀랐다니까요.”
미국스님 한국 표류기
3일간 잠도 못자고 고민했다. 갈피를 못잡던 상태에서 스님에게 물었다. “스님 말 듣고 가는데 잘못된 길이면 다음 생에 스님이 이자까지 쳐서 갚아 주시는거죠?” 그러자 스님은 “그렇지, 갚아야지”하고 답했다. “그럼 따를게요. 어차피 제가 생각한 답보다 스님 답이 항상 더 나았고, 잘못되더라도 이자까지 갚아주신다니 저로서는 손해볼 게 없네요” 전격적으로 결심한 뒤에도 앞서 설명한 3개월간의 ‘마음 점검’ 과정을 거치고 머리를 깎았다. 그가 출가하던 날 함께 춤추고 놀던 벗들이 “도저히 믿을 수 없다”며 인증샷을 찍으러 찾아온 바람에 엄숙하기 마련인 출가식은 웃음과 활기로 가득했다.
출가 후 한국으로 돌아온 스님은 위앙종과 선명상을 알리는 일에 힘쓰고 있다. 지난 6년간 청주 보산사, 분당 보라선원, 종로 보화선원 등 3곳의 위앙종 도량이 생겼고 17명이 출가했다. 현재 스님은 보화선원에서 명상을 지도한다. 찾아오는 젊은이들에게 왜 왔는지, 무엇을 얻고자 하는지 물어보며 맞춤형 소통을 하고 실질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지도방식 덕분에 요즘 2030 사이에 보화선원은 ‘명상맛집’으로도 입소문났다.
“불교는 현실과 동떨어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해요. 돈 버는 것도 중요하고, 모든 욕망도 한번에 내려놓을 수 없지요. 그것을 들여다보면서 괴로움을 줄이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제가 도움받았던 것처럼 저 역시 그렇게 도울 수 있으면 좋겠어요.”
스님은 최근 <미국스님 한국 표류기>(모과나무)라는 책을 냈다. 출가 후 충분한 교육을 받지 못한 채 한국으로 와서 지금껏 이리저리 부딪힌 수행자로서의 삶은 좌충우돌 표류기에 가깝다.
“명상과 수행이 삶의 방향을 어떻게 바꾸는지, 그 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저처럼 세속적이고 이기적인 사람도 없거든요. 그런 제가 조금씩 달라졌으니 누구든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서울 종로 보화선원에서 명상을 지도하고 있는 현안스님. 현안스님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