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민 국가유산청장이 16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세운4구역 내 불법행위 및 사업시행 인가 중단’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가유산청이 세계유산 종묘 앞 세운4구역 개발 사업 시행자인 서울주택도시개발공사(SH)를 경찰에 고발했다. 세운4구역이 법적으로 매장유산 발굴조사가 끝나지 않았는데도 시추를 해 법을 위반했다는 게 이유다.
국가유산청은 16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브리핑을 열고 SH가 ‘매장유산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매장유산법)을 위반한 것으로 판단해 서울 헤화경찰서에 고발했다고 밝혔다.
세운4구역에서는 2022년 5월부터 매장유산 발굴조사가 진행됐다. 건물지 약 592동과 우물 199기, 도로와 동서배수로 등의 유구가 발견됐다. SH는 이런 매장유산의 보존 방안을 2024년 1월 마련했으나 국가유산청 문화유산위원회 심의에서 보류됐다. 국가유산청은 “이후 SH는 보완된 보존방안을 내지 않았고, 법적으로 세운4구역의 발굴조사는 끝나지 않은 상태”라고 설명했다.
국가유산청은 지난 11일 SH가 국가유산청장의 허가 없이 세운4구역 내 지금 80㎜, 깊이 약 38m의 구멍 11개를 시추했다는 사실을 적발했고, 지난 13일 현지조사 후 고발에 착수했다고 설명했다. 이종훈 국가유산청 역사유적정책관은 “발굴조사가 완료되지 않았으므로 국가유산청과 협의하고, 적어도 발굴조사 기관 입회·참관하는 상황에서 (시추가) 이뤄져야 했다”고 말했다. 매장유산법 31조 2항은 “허가 없이 발굴 중인 매장유산 유존지역(매장유산이 존재하는 것으로 인정되는 지역)의 현상을 변경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이나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돼 있다.
세운4구역 매장유산 발굴현장 시추 모습. 국가유산청 제공
국가유산청은 지난 14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로부터 “서울시가 세운4구역 개발 인허가 절차에 앞서 세계유산영향평가를 받겠다는 입장 서한을 3월 안에 회신하지 않을 경우 오는 7월 부산에서 열리는 제48차 세계유산위원회 ‘보존 의제’로 종묘를 상정할 수 있다”는 서한을 받았다고도 밝혔다. 세계유산위원회에서는 세계유산의 등재 및 보존·보호에 관한 사항을 결정하기 위해 매년 열리는 회의다. 세계유산 등에 대한 ‘등재 의제’와 함께 위험에 처한 유산의 보존 상태 및 등재 취소 여부 등에 대한 ‘보존 의제’도 함께 논의된다.
세계유산센터는 지난해 3월과 11월, 올해 1월에 걸쳐 종묘 앞 재정비구역에 대한 세계유산영향평가 실시를 요구한 바 있다. 서울시는 세계유산센터의 지난 1월 요구에 대해 답했으나 세계유산영향평가 이행 여부는 밝히지 않고 “(세계유산영향평가를) 포함한 다양한 방법을 논의하고 싶다”고 답했다고 국가유산청은 전했다. 이에 세계유산센터는 국내에서 열릴 세계유산위원회 논의 주제 중 하나로 종묘를 올릴 수도 있다고 한 것이다.
16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세운4구역 내 사업시행인가 중단 및 대응 관련 언론설명회’에서 허민 국가유산청장(왼쪽에서 네번째)과 참석자들이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길배 국가유산청 유산정책국장은 “한국은 세계유산 협약 이행 모범국으로 평가받아왔다”며 “종묘가 보존 관리 대상으로 의제에 오른다면, 국제사회가 한국의 세계유산 보존 관리에 우려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허민 국가유산청장은 “(세계유산위원회) 개최국의 세계유산이 보호받지 못하는 부끄러운 모습을 전 세계에 보여주게 될까 심히 걱정스럽다”며 “서울시가 19일에 정비사업통합심의위원회를 거쳐 4월 안에 사업시행인가를 완료한다고 안다. 정비통합심의위를 보류한다는 전제하에, 서울시장과 종로구청장, 국가유산청장이 함께 하는 논의 테이블을 제안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