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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에서 열린 문학과 평화의 만남…알렉시예비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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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오전 경기도 파주 비무장지대(DMZ) 내 캠프 그리브스에서 열린 ‘DMZ 세계문학페스타 2026’ 현장에 평화를 염원하는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DMZ세계문학페스타 조직위원회 제공

“완전히 다른 세상에 온 것 같다. 굉장히 흥미로운 경험이다. (이곳에 와보니)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너무 슬프다. 체르노빌 사고가 있었을 때는 모두가 핵을 두려워했지만, 지금은 모두가 포탄을 원하고 있다.”

2015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한반도 분단의 상징인 비무장지대(DMZ)를 찾았다. 지난 27일 오전 캠프 그리브스에서 개막한 ‘DMZ세계문학페스타 2026’ 참석을 위해서였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등의 작품으로 전쟁의 비극을 고발해온 작가는 이곳에서 남북의 분단과 팔레스타인과 우크라이나, 이란 등 지구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폭력의 현장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이번 행사는 경기도와 한국작가회의 등의 주최로 29일까지 DMZ 캠프 그리브스와 파주 출판단지 일대에서 열렸다. 알렉시예비치 등 해외 작가 10여명과 황석영, 정지아, 정보라 등 국내 작가들이 참여해 전쟁과 폭력의 시대 문학을 통한 평화의 모색을 시도했다.

개막식이 열린 캠프 그리브스는 1953년부터 2004년까지 미군이 주둔했던 공간으로 DMZ 남방한계선에서 2㎞ 떨어진 곳에 있다. 민간인통제구역 안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작가들을 포함해 이날 개막식에 참여한 시민 등 300여명은 모두 파주 통일대교 입구 검문소에서 신분 확인을 하고 이동해야 했다. 주최측은 “전쟁과 분단의 상흔을 간직한 공간인 동시에, 인간의 개입이 중단돼 자리에서 생명이 스스로를 회복해 온 역설적인 장소”라는 점에서 DMZ 일대를 행사의 장소로 선정했다고 말했다.

27일 경기도 파주시 캠프 그리브스에서 열린 2026 DMZ 세계문학페스타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발언하고 있다. 벨라루스 출신 작가 알렉시예비치는 구술 채록을 통한 문학 작업으로 2015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경기도북부청 제공. 연합뉴스

27일 오전 경기도 파주 비무장지대(DMZ) 내 캠프 그리브스에서 열린 ‘DMZ 세계문학페스타 2026’에 참여한 작가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고희진 기자

알렉시예비치는 개막 기조강연을 맡았다. 그는 ‘유럽의 마지막 독재자’라 불리는 알렉산더 루카셴코가 여전히 대통령직을 수행하고 있는 벨라루스가 처한 암울한 현실과 그럼에도 목소리 내는 것을 멈추지 않아야 하는 이유를 강연했다. 1948년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난 그는 벨라루스에서 자랐다. 알렉시예비치는 “현재까지 약 2000명이 벨라루스에서 정치적 이유로 체포돼 수감생활을 하고 있다. 체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며 “나는 목소리를 찾고 있다. 목소리를 내는 것은 두려운 일이나 침묵 역시 나를 두려움에 떨게 하는 무서운 존재”라고 말했다.

이번에 네 번째 방한이라는 그는 2024년 벌어진 ‘12·3 불법계엄’ 이후 한국을 방문한 소감도 밝혔다. 그는 “‘만약 대한민국 국민들이 거리로 나서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완전히 다른 나라에 왔을 수 있다’는 얘기를 DMZ로 오는 차 안에서 비서에게 했다”며 “(계엄에 대항하는 시민들의 모습으로) 국민들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았다”라고 말했다.

기조강연에는 소설가 황석영도 참여할 예정이었으나 건강 문제로 참여하지 못했다. 행사 상임운영위원장인 송경동 시인이 분단의 비극적 현실을 이야기한 황석영의 강연문을 대독했다.

참여 작가들과 시민들은 점심시간을 이용해 캠프 그리브스 일대를 돌아봤다. 내부엔 미군이 사용하던 탄약고, 작전실, 통신실 등이 보존돼 있었다. 차가운 분단의 현실을 보여주는 장소였으나 캠프 그리브스 곳곳에도 새싹이 돋아나며 봄의 기운을 알렸다. 평화를 주제로 한 오후 세션에 참여한 아흘람 브샤라트는 “캠프 그리브스를 돌아보니 이곳이 회복의 일부이지 않나 생각 했다”며 “팔레스타인은 아직 이 (회복의) 시간까지 도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아흘람 브샤라트는 1975년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북부에 위치한 마을 타모운에서 태어났다. 지금도 서안지구에 머물며 가자지구의 아이들을 통해 전쟁의 참상을 알리는 글을 쓰고 있다. 그는 지난해 광주 아시아문학포럼에도 초청됐으나 입국하지 못했다. 이번 행사 참석도 쉽지 않았다고 전했다.

27일 경기도 파주시 캠프 그리브스에서 열린 2026 DMZ 세계문학페스타에 팔레스타인 아동 문학가 아흘람 브샤라트가 발언하고 있다. DMZ세계문학페스타 조직위원회 제공

“며칠 전 라마단이 끝난 걸 기념해 옷을 사러 갔던 한 가족이 이스라엘 점령군의 총에 죽었다. 그들은 나와 함께 아이들을 가르치는 동료였다. 아빠의 이름은 알리, 죽은 아이는 무하마드였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건 ‘모든 팔레스타인인은 어떤 이유도 없이 죽는다’는 것이다. (내가) 어떻게 거기서 나올 수 있었겠나. 서안지구의 우리는 팔레스타인 밖으로 나가려 할 때마다 벽에 부딪힌다. 이스라엘의 봉쇄 벽 앞에서 여권을 대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들은 더 많은 인증을 요구한다. (점령군은) 여전히 우리를 체포하고 죽이고 벽을 만든다. 이것은 상상이 아니라 현실이다.”

지옥과 같은 현실 앞에서도 그는 문학과 함께 희망을 만들어 간다고 했다. 브샤라트는 “그럼에도 우리는 전쟁을 뛰어넘고자 한다. 내가 (뛰어넘는 것이) 가능했던 것은 내가 작가이기 때문”이라며 “이것이 책이 주는 힘”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쟁 속 아이들의 이야기를 쓰는 것에 대해 “아이들의 마음을 지키기 위해 쓴다”며 “이것은 일종의 임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28일 경기도 파주출판도시에서 열린 ‘DMZ 세계문학페스타 2026’에 참석한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운데)와 문재인 전 대통령(오른쪽에서 세 번째)의 모습. DMZ세계문학페스타 조직위원회 제공

이튿날인 28일은 파주출판도시에서 행사가 이어졌다. 알렉시예비치와 정지아, 정보라 등이 참여한 평화 대담과 일본 호시노 도모유키, 아르헨티나의 마리아 로사 로호 등의 작가가 참여해 민주주의, 디아스포라, 마이너리티 등을 주제로 한 세션을 진행했다. 이들과 별개로 아시아출판정보문화센터 지혜의숲 다목적홀에서 전국 동네책방 및 출판사 등 70여 곳이 참여한 북페어 ‘사이에서’도 열렸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평산책방’의 책방지기로 이번 행사에 참여했다. 문 전 대통령은 이날 행사 옆 공간 문발살롱에서 해외 초청 작가와 차담회를 열기도 했다.

이번 행사는 29일 DMZ 평화 투어 등의 행사로 마무리됐다. 폐막식에서 ‘생명·평화·공존 세계작가네트워크’의 발족도 알렸다. 행사 공동집행위원장인 고명철 문학평론가는 “(네트워크를 통해) 세계에서 유일하게 분단된 나라에서 민주주의와 평화를 둘러싼 세계적 문학 담론을 발전 시켜 전 세계의 갈등과 분쟁에 맞서 작가들이 연대하며 응답할 수 있는 계기를 적극 모색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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