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선교’ 로제타 셔우드 홀
로제타 셔우드 홀(1865~1951). 국가기록원 제공
“우리가 이곳에 머무는 동안 어느 날 왕이 성벽 밖으로 나가 중국 대사를 맞이했습니다. 이런 행사는 서울에서 큰 구경거리가 되어 많은 사람들이 보러 몰려듭니다. (중략) 우리는 중국 대사를 보았고, 한국 국왕 ‘이히(Li Hi·고종의 본명)’를 얼핏 볼 수 있었습니다.”
1890년 의료 선교를 위해 조선에 온 로제타 셔우드 홀(사진)의 ‘기행 편지’가 7일 공개된다. 홀은 국내 최초의 여의사 교육 기관인 조선여자의학강습소를 설립한 인물이다. 또 국내 최초로 한글 점자 교재를 만드는 등 한국 현대 의학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그의 편지는 1890년 미국을 떠날 때부터 조선에 도착한 직후까지의 활동(1890년 9월~1891년 1월)을 고향 가족에게 전하기 위해 쓴 것이다. 정갈한 영문 필기체로 쓴 낱장 편지 94장을 이어 붙여 가로 16.4㎝, 세로 길이가 무려 31.8m에 달하는 방대한 두루마리 형태(총 2건)를 띠고 있다.
로제타 셔우드 홀이 1890년 11월8일 기록으로 남긴 신정왕후 국장 관련 청나라 조문 칙사 행렬 사진과 편지 내용. 양화진기록관 제공
조선에 도착하기까지 40일간의 태평양 횡단 노정 기록과 조선 도착 후 1891년 1월 초까지 외국인 선교사의 시선으로 본 당시 척박했던 조선의 의료 환경과 주민들의 일상을 적었다.
홀은 국내 최초 근대식 여성 병원인 ‘보구녀관’의 사진과 진료 내용도 편지에 담았다. 그는 편지에 “제가 진료소에서 첫날 본 환자는 4명이었고, 다음날은 9명이었다. 지금까지 거의 3개월 동안 270명의 초진 환자와 279명의 재진 환자를 포함해 총 549건을 치료했다”고 적었다.
홀의 기행 편지는 발견 당시 부착된 비닐테이프의 변색과 접착제 경화, 잉크의 부식으로 글자 부분이 갈색으로 변하고 종이가 바스러지는 등 훼손이 심각한 상태였다. 국가기록원은 약 18개월에 걸쳐 오염 물질을 제거하고, 탈락된 글자의 결실부를 복원용 한지로 보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