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들의 문법
에드워드 윌슨-리 지음 | 김수진 옮김
까치 | 336쪽 | 2만2000원
청중의 혼을 쏙 빼놓는 연설, 극한 감동을 자아내는 노래, 몸과 마음을 뒤흔드는 주문.
이것들이 보유한 공통 요소는 무엇일까. 현대인은 동의하기 어렵겠지만 15세기 유럽의 어느 지식인은 실재하는 무언가가 있다고 여겼다. 그에 따르면 그것은 ‘황홀경의 운율’이며, 더 나아가 개별 언어에 내재한 통합적인 문법이다.
그 지식인은 이탈리아 태생의 피코 델라 미란돌라이다. 어릴 때부터 신동으로 불렸고, 그리스어·라틴어·아랍어 등 여러 언어에 통달한 천재였다. 그는 언어의 보편 문법은 물론 만물의 기본 원리가 존재한다고 믿었으며, 그것의 실체를 좇았다. 노엄 촘스키가 변형생성문법 이론을 창안하면서 언어의 보편 구조 혹은 문법을 제시한 것보다 수백년 앞선 시도였다. 피코라는 인물의 전기 형식을 띠는 <천사들의 문법>은 르네상스의 열기가 달아오르던 시기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인문학자의 지적 모험을 담고 있다.
피코가 보편 지식을 향해 나아가다 얻은 결과물이 ‘900 논제’이다. 900가지 논제란 만물의 이치를 모두 설명해준다는 야심찬 리스트인데, 현대인이 보기에는 무모한 시도이다. 특히 피코의 논제들은 신비주의 색채가 강했다. 그래서 로마 교황청은 900 논제를 금지하고, 피코를 처벌했다. 피코는 31세에 요절했는데,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독극물 중독사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구약성경 중에 ‘바벨탑의 언어’ 이야기가 있다. 원래 인간의 언어는 하나였는데, 인간들이 하느님에게 가까이 가기 위해 바벨탑을 쌓아올리자, 이를 노여워한 하느님이 인간끼리 소통하지 못하도록 여러 언어를 만들어 뿔뿔이 흩어놓았다는 내용이다. 그러고 보면, 피코는 하느님의 뜻과 달리 보편 언어·보편 진리라는 바벨탑 쌓기에 도전한 인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