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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렁이는 마음…흑산의 ‘일곱 낙원’으로 떠나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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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끝, 길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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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 | 글·사진 김민수 여행작가

서남해 섬 군락은 개성 뚜렷한 섬들이 모여 각기 다른 자연과 이야기를 펼친다. 사진은 낚시와 백패킹의 성지 하태도.

전남 신안군 흑산면은 100여개의 섬으로 이뤄져 있다. 이 중 11개가 유인도인데 면면이 자못 화려하다. 서남해 끝 섬 가거도, TV 프로그램 <삼시세끼>로 잘 알려진 만재도, 천연기념물 ‘천연보호구역’ 홍도가 모두 흑산의 품에 안겨 있다. 이들은 하나의 이름 아래 있으면서도 각기 다른 빛깔의 서사를 써내려왔다. 결결이 개성 넘치는 섬들을 짚어가는 여정은, 먼바다가 감춰둔 가장 내밀하고도 눈부신 기록을 들추는 일이다.

꾸밈없는 자연과 삶의 이야기 만재도

만재도

만재도를 지도에서 보면 크게 동서로 누운 T자 모양이다. 가로 능선이 북서풍을 막아주는 방벽이라면, 세로 능선은 섬의 풍광을 오롯이 담당한다. 오랜 풍파로 조각된 해안 절벽은 짙푸른 바다와 어우러져 절경을 드러낸다.

만재도의 해안선은 단순히 거친 풍경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조율된 균열을 보여준다. 특히 남동쪽 해안은 2024년 천연기념물로 인정받았다. 바다를 향해 기둥처럼 솟은 이 지형은 1억년 전의 검은 유문암이 빚어낸 주상절리 군락이다. 여기에 해식애와 해식동, 해식아치 등 침식 지형이 겹겹이 어우러지니, 이름 그대로 만 가지 재물을 품은 섬이다.

만재도에는 마을이 하나뿐이다. 해발 177m의 마두산을 배경으로 아이처럼 안겨 있다. 그러다 보니 정취는 소박하다 못해 애틋하기까지 하다. 바닷바람에 해어진 낡은 가옥 사이로 좁다란 돌담길이 이어지고 간간이 조막밭도 억척스레 자리를 지키고 있다. 꾸밈없는 자연과 삶의 이야기는 섬 여행의 소중한 테마 중 하나다.

‘어촌 뉴딜 300’ 사업으로 목포와 만재도 사이에는 2시간30분 만에 갈 수 있는 직항로가 생겼다. 그런데 오후에 입도해, 아침에 떠나야 하는 배편 시간대라 1박이라면 섬을 누릴 여유가 없다. 그 때문에 가거도와 연계하거나 아니면 2박 이상의 일정을 계획하는 것이 좋다.

검은 숲, 짙은 향 홍어의 고향 흑산도

흑산도

흑산도는 흑산면 100여개 섬의 모섬이자 대한민국 대표 해양 관광지다. 섬 면적의 95%를 차지하는 울창한 상록수림이 푸르름을 넘어 검게 보인다고 해서 ‘흑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여행의 백미는 상라산(229m) 정상으로 이어지는 ‘열두굽이길’이다. 구불구불한 길 끝 전망대에 서면 예리항과 대장도·소장도가 손에 잡힐 듯 펼쳐진다. 흑산도 최고의 포토존으로 바다와 섬, 하늘이 수묵화처럼 어우러진다.

흑산도는 과거 130여명의 죄인이 머물던 고립의 땅으로, 정약전이 7년간 머물며 <자산어보>를 집필한 곳이기도 하다. 사리마을의 ‘유배문화공원’은 유배를 성찰의 테마로 치환한 공간이다. 숙박시설을 갖추고 있어 여행자들에게 ‘자발적 유배’라는 재해석된 휴식을 제안한다.

흑산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홍어다. 예리항 주변 식당과 상점에서는 숙성 정도를 취향대로 선택할 수 있고, 삭히지 않은 신선한 홍어도 맛볼 수 있다.

흑산도는 산세가 험하고 면적이 넓어 도보로 이동하기에는 다소 버겁다. 다행히 25㎞의 순환도로가 이어져 있어 패키지 상품, 버스 투어, 택시 등을 이용해 편하게 여행할 수 있다. 또한 체력에 자신이 있다면 칠락산을 올라 상라산으로 내려오는 트레킹이나 자전거를 타고 해안도로를 누비는 액티비티를 즐겨봐도 좋다.

여행의 가치, 힐링의 섬 영산도

영산도

흑산도 동쪽 4㎞, 다도해해상국립공원과 유네스코 생물권보존지역에 속한 영산도는 기후에너지환경부 생태 우수마을로도 선정된 조용한 힐링 섬이다. 영산도는 주민 참여가 두드러진 섬 재생 모델의 표본으로 꼽힌다. 공유 숙소, 펜션, 카라반, 캠핑장 등을 갖추고 ‘나만의 열두 가지 휴식’ 같은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영산도는 환경 보전을 위해 하루 입도 인원을 40~55명 정도로 엄격히 제한하고, 체류 기간도 3박4일 이하로 관리한다. 물론 입도·숙박·프로그램 모두 사전 예약제가 필수다. 그 덕에 성수기에도 전혀 붐비지 않고 쾌적함이 늘 높은 수준을 유지한다.

영산도에서는 반드시 ‘해상관광’을 경험해야 한다. 고래바위, 큰 바위 얼굴, 낙타상 등 자연이 만들어낸 최고의 비경들 외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아름답다는 해식아치 ‘석주대문’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부뚜막’은 섬의 유일한 식당으로, 주민들이 직접 키운 채소와 갯바위 해산물로 차려내는 섬 밥상이 인상적이다.

섬은 꽃 만발한 봄부터 바다색이 짙게 드리워지는 가을까지 계절마다 다른 매력을 선사한다. 그 속에서 여행자는 섬살이와 생태체험이 어우러진 진정한 휴양의 정수를 경험할 수 있다. 영산도로 가는 도선은 흑산도 예리항에서 하루 1~2회 운행된다.

붉은 섬의 환상, 바다에서 만난 천연기념물 홍도

홍도

흑산도에서 서쪽으로 22㎞ 떨어진 홍도는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 속하며,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 천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신비로운 섬이다. 홍도에는 두 개의 마을이 있다. 여객선이 드나드는 1구는 숙소와 식당, 탐방지원센터를 포함한 편의시설들이 모여 있어 여행의 베이스캠프 역할을 한다. 섬 반대편의 2구는 고유한 어촌의 정취를 간직한 마을로 한국의 아름다운 등대 16경에 꼽히는 홍도 등대가 이곳에 있다.

깃대봉은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 중 하나로, 정상에 서면 흑산도를 포함해 가거도, 태도 등의 아득한 실루엣이 층층이 포개진다. “이 산을 오르면 일 년 내내 건강하고 행복하다”는 속설이 전해질 만큼 기운이 좋다.

그러나 섬의 진면목을 보려면 역시 바다로 나서야 한다. 유람선 투어는 홍도 여행의 백미로 통한다. 붉은 절벽과 쪽빛 바다가 만들어내는 극적인 대비, 소금강을 방불케 하는 33곳의 해안 절경은 평생 잊히지 않는 장면으로 각인된다.

고깃배가 유람선에 다가와 열리는 선상횟집에서는 갓 잡은 생선을 즐길 수 있다. 밤이 되면 선착장의 포차들이 불을 밝힌다. 해녀들이 직접 채취했다는 자연산 해산물(전복, 해삼, 소라 등)을 투박하지만 정성을 담아 푸짐하게 내놓는다.

위기 속 신비, 보전의 시간 대장도

대장도

대장도(소장도와 합쳐 ‘장도’라 불림)는 투박한 어촌의 원형을 간직한 섬이다. 주민들은 자연이 허락한 만큼의 식량을 거두며 대대로 삶의 터전을 일궈왔다.

섬의 진가는 2005년 국내 세 번째로 등록된 람사르 습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과거 농경지와 방목지로 쓰였던 장도습지는 수자원 저장과 정화 능력을 바탕으로 다양한 식물과 어류, 조류 등이 공존하는 생명의 보고가 됐다.

해발 약 200m 분지에 자리한 습지에 오르면 마치 다른 세상에 온 듯한 느낌에 빠져든다. 고요 속에서 햇살을 한껏 머금은 초지는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최근 상황이 심상치 않다. 2025년 국립공원공단 조사(2026년 3월 공개)에 따르면 장도습지가 건조화 ‘위기’ 단계에 진입했다. 육상식물이 급격히 침입하면서 습지성 초본식물이 줄고, 버드나무 등 목본식물로의 천이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기후변화와 수문 체계 왜곡 등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제 장도습지의 아름다움은 보전의 시급성 앞에 놓였다. 그 변화하는 모습을 관찰하며 습지의 가치를 다시금 되새기는 역할의 선봉에 여행자가 서 있다.

최서단의 압도적 일몰, 불편함이 주는 특권 가거도

가거도

가거도는 목포에서 직선거리로 136㎞, 뱃길로는 약 230㎞를 달려야 닿는 국토 서남해의 끝 섬이다. 선착장과 행정·편의 시설이 밀집한 1구 대리를 중심으로, 서쪽과 동쪽 해안에 2구 항리, 3구 대풍리가 자리하고 있다.

가거도의 랜드마크는 뭐니 뭐니 해도 섬등반도다. 이곳은 백령도 두무진과 더불어 한국 최서단의 지형적 자부심을 드러낸다. 100m 높이의 해안 절벽이 1㎞ 넘게 뻗어 있는 모습은 흡사 거대 공룡의 등줄기를 연상케 한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가장 늦은 일몰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상징성과 풍경 모두에서 압도적이다.

가거도는 주민용 승합차 한 대 외에는 대중교통이 전무하다. 여행객은 숙소 차량에 의존해야 하는데, 이마저도 비용 부담이 있다. 게다가 섬 중앙에는 신안에서 가장 높다는 해발 639m의 독실산이 우뚝 솟아 있다. 그럼에도 가거도의 불편함은 곧 매력으로 바뀐다. 도보 여행자라면 최소 2박3일은 머물며 독실산과 각 마을을 분절해 돌아보기를 권한다. 그만큼 가거도의 풍광은 태고의 거칠고도 숭고한 미학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립된 낙원, 먼 섬의 힘찬 풍광 태도

흑산도와 만재도 사이에는 태도라 불리는 세 섬이 있다. 이름하여 상태, 중태, 하태다. 일반인에게는 생소하지만, 전문 낚시꾼들 사이에서는 꽤 알려진 출조지다.

이 중 하태도는 객선이 기항할 수 있는 선착장을 가진 섬이다. 나머지 섬들은 종선을 내보내 바다 한가운데서 사람과 물건을 맞이하는 특별한 광경을 연출한다.

과거 흑산 홍어의 명성에는 태도 부근의 바다와 주민들도 한몫했다. 하지만 그 맥은 1990년대에 끊겼다. 지금은 다른 섬들과 같이 전복 양식에 주력하며 부근의 무인도에서 홍합 등을 채취해 팔기도 한다.

하태도는 대부분 산지로 이뤄져 있지만, 풍광이 매우 수려해 산행·백패킹을 즐기는 이들도 제법 찾는 섬이다. 특히 북릉은 길이 1.9㎞로, 조망터에서 보면 양 바다 사이로 섬의 등줄기가 뻗어난 형세가 한눈에 들어온다. 능선을 따라 걷는 길에는 수평선과 이웃 섬, 구릉과 절벽이 교차하며 입체적인 풍경을 선사한다. 게다가 해 질 녘 붉게 물드는 낙타 능선은 백패커들이 이곳을 고립된 낙원이라 부르는 이유를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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