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 | 엄희삼 기자
치매, 뇌졸중과 함께 3대 노인성 뇌질환으로 꼽히는 파킨슨병은 노령 인구가 늘면서 환자 수도 함께 증가하고 있는 대표적 질환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국민관심질병통계를 보면 국내 파킨슨병 환자는 2020년 12만5927명에서 2024년 14만3441명으로 14% 증가했다. 환자는 늘고 있지만 현재까지 완치가 가능한 치료제는 나오지 않아, 가급적 일찍 발견해 체계적으로 치료·관리하는 것이 특히 중요하다.
파킨슨병의 초기 증상으로 잘 알려진 손떨림이나 구부정한 자세 등은 노화 때문에 나타나는 일반적인 변화와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다만 매우 다양한 증상 중에서도 일부는 이 질환의 특징을 잘 보여주므로 노년기에 접어들 무렵 해당 증상이 나타난다면 서둘러 의료기관을 찾는 것이 좋다.
먼저 파킨슨병 환자 중 70% 이상에서 나타나는 떨림 증상은 주로 힘을 빼고 있을 때 팔, 다리, 턱 등의 부위에 생기는 경우가 많고, 의식적으로 움직이면 줄어드는 특징이 있다. 이와 함께 몸의 움직임이 느려지는 서동, 근육이 굳어지는 경직, 다리를 끌면서 걷게 되는 보행장애, 자세가 구부정해지면서 쉽게 넘어지는 자세 불안정 등과 같은 운동 증상이 환자마다 여러 모습으로 조합돼 나타난다.
자면서 팔 휘두르고 고함
렘수면 행동장애 살펴야
손떨림·구부정한 자세 등
운동증상에 앞서 나타나
질병 초기 변화 반영 잣대
예방·완치약은 개발 안 돼
진행 억제 초점 맞춰 치료
운동, 활동 능력 개선 도와
몸을 움직이거나 자세를 잡을 때 보이는 증상 외에 비운동 증상도 여럿 있다. 경도인지장애나 치매 증상을 보여 인지기능이 크게 저하되는 모습이 발견되기도 하며, 불안·우울·환시 등을 겪기도 한다. 수면과 관련된 증상이 생기는 경우도 흔해 쉽게 잠을 이루기 어렵거나, 잠을 자면서 혼자 중얼거리거나 고함을 지르기도 하며 팔이나 다리를 휘두르는 등 잠꼬대를 매우 심하게 하는 렘수면 행동장애도 자주 나타난다. 꿈을 꾸는 수면 단계인 렘수면에 들어가면 보통은 팔다리의 움직임이 없어지지만 렘수면 행동장애가 있을 땐 꿈을 실제 동작으로 옮기는 모습을 보인다.
조성양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교수는 “렘수면 행동장애는 운동 증상이 나타나기 수년에서 수십년 전부터 선행할 수 있어 질병의 초기 변화를 반영하는 신호”라며 “렘수면 행동장애 환자들을 10년간 추적한 연구에서 약 40~60%가 파킨슨병을 포함한 신경퇴행성 질환으로 진행하는 것으로 보고되었는데, 이는 렘수면 행동장애가 중요한 전구 증상임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파킨슨병은 뇌에서 도파민 조절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단백질 ‘알파-시누클레인’이 비정상적으로 축적된 탓에 신경세포를 손상시켜 발생한다.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은 몸을 마음먹은 대로 부드럽고 정교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데, 파킨슨병 환자는 도파민 신경세포가 점차 감소해 동작을 원활히 통제하기가 어려워진다.
발병 원인은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발병 위험을 높이는 환경적 요인으로는 제초제·살충제 같은 농약 성분이나 이산화질소 같은 대기오염물질을 들 수 있다. 유전적 요인 역시 작용해 5% 내외의 환자들에게선 가족력이 있는 유전성 파킨슨병이 확인된다. 이들에게서 발견된 유전자 변이는 도파민 신경세포의 기능 이상과 퇴행 과정을 설명하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며, 명확한 가족력이 없는 환자에게도 이 유전자들이 발병 위험을 높이는 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연구가 나오고 있다. 대체로 유전적·환경적 요인이 함께 작용해 발병으로 이어지는 비율이 높은 편이다.
파킨슨병이 의심된다면 다양한 검사를 종합해 진단 여부를 가린다. 특히 비슷한 증상이 나타나는 다른 질환과의 감별도 중요하다. 조성양 교수는 “진행성 핵상 마비, 다발성 신경계 위축, 피질기저핵 변성, 루이소체 치매와 같은 비전형적 파킨슨증과의 구별이 필요하며, 약물, 뇌혈관질환, 정상압수두증, 뇌종양, 독성 물질 등에 의해 발생하는 이차성 파킨슨증도 감별해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 혈액검사와 뇌 자기공명영상 촬영 등을 시행해 다른 원인질환을 배제하는 과정을 거친다”고 말했다.
파킨슨병을 예방하거나 진행 속도를 늦춰주는 치료제는 아직 개발되지 않았다. 하지만 증상을 조절하고 삶의 질을 유지하는 치료는 가능하다. 약물치료와 운동·재활치료로 병을 관리하면서 경우에 따라 수술을 받을 수도 있다. 정문영 순천향대 부천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파킨슨병은 완치가 목표가 아니라 삶의 질 유지와 진행 억제가 핵심”이라며 “약물치료나 수술 후 ‘내 인생이 돌아왔다’고 표현할 정도로 큰 개선을 경험하는 환자도 많은 만큼 적절한 시기에 전문의와 상담해 맞춤 치료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약물치료에선 뇌에 부족한 도파민을 대신할 수 있게 레보도파, 도파민 효현제, 모노아민산화효소억제제, 아만타딘 등 항파킨슨 제제를 사용한다. 약물의 용량과 용법을 철저하게 지켜 복용할 경우 효과가 좋아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다만 장기간 약물치료를 받은 환자 중 뜻하지 않게 몸을 흔드는 이상운동증 등 합병증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뇌에 전기자극을 가해 이상운동 증상을 개선하는 뇌심부자극 수술을 시행할 수 있다. 이 수술은 파킨슨병 초기에 하는 것이 아니라 질병이 상당 기간 진행된 뒤 약물치료의 부작용이 나타나거나 약물에 반응하지 않는 심한 떨림이 있는 환자에게 주로 시행한다.
운동치료도 파킨슨병으로 저하된 활동 능력과 변형된 자세를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된다. 몸을 곧게 펴는 동작의 운동과 근육의 힘을 키우는 운동을 병행하면 몸이 느려지고 뻣뻣해지더라도 이동·보행 능력 저하를 늦출 수 있다. 걷기, 수영, 자전거, 요가, 에어로빅 같은 다양한 활동으로 몸을 자극하는 것도 환자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다. 정문영 교수는 “도파민은 긍정적인 감각 자극에 의해 활성화되기 때문에 여가 목적의 운동 활동은 뇌의 도파민 회로를 유지하게 하고 경직을 완화하며 병의 진행을 늦추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