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순 <절망 뒤에 오는 것>
1968년의 전병순 작가. 경향신문 자료사진
전병순(1929~2005)은 1960~1970년대에 <또 하나의 고독>, <독신녀> 등으로 상당한 인기를 끌었던 대중소설 작가다. 이러한 까닭에 그가 1961년 한국일보 장편 현상 공모에 <절망 뒤에 오는 것>이라는 묵직한 작품으로 데뷔했다는 사실은 종종 잊힌다. <절망 뒤에 오는 것>은 문학사상 최초로 ‘여수·순천 10·19사건’(이하 여순사건)을 반공 국가의 공식 기억과 달리 “반란군”이 주도한 양민학살이 아닌 정부가 양민을 대상으로 자행한 국가폭력으로 초점화한 급진적인 작품이다. <절망 뒤에 오는 것>은 1950년대와 달리 문단이 정치권력으로부터 자율성을 획득하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전병순은 4·19 혁명으로 불어온 자유의 물결 속에서 강요된 침묵을 깨고 여순사건의 반인륜성을 폭로했다.
전병순은 독자가 자신을 강서경과 동일시한다며 반감 혹은 두려움을 표했지만, 이 작품은 작가의 체험을 바탕으로 허구가 덧붙여진 ‘오토픽션(Autofiction)’이라고 할 수 있다. 1929년 당시 전라남도 광주에서 출생한 작가는 1945년 전남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숙명여자대학교 국문학과에 진학했다. 여대생 전병순은 1948년 8월 남한 단독정부 수립 후 이승만 정권의 권위주의적 통치에 대한 불만과 부정선거 의혹이 반정부 시위로 이어지면서 대학이 휴교하자 여수로 향했다. 1948년 9월부터 1949년 2월까지 겨우 6개월간의 짧은 체류였지만, 여수여자중학교 국어 교사로서 전병순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인 양 여순사건의 증인이자 당사자가 됐다. “나는 그때 갓 스물의 나이로 ‘우연한 운명의 장난’ 같은 표현으로 돌려버리기에는 너무나도 놀랍고 전율스러운 현장을 두 눈으로 직접 보고 망막 안에 새겨넣게 돼버렸다”는 고백은 이때의 체험이 작가에게 영구적인 트라우마를 남겼음을 암시한다.
여순사건 증인이자 당사자로의 회고록
6·25전쟁으로 피란을 다니던 중 여순사건을 기록한 노트를 분실했지만 ‘망막 안에 새겨진 사건이었다’는 회고처럼 작가는 소설 속에서 여순사건의 전개 과정을 상세하게 기록했다. 반공이 국시가 됨으로써 전체적이고 종합적인 관심을 제시할 역사가가 존재하지 않은 시절에 참혹한 사건을 목격하고, 또 참여했던 개인의 경험과 기억을 통해 부재한 역사 서술을 대신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회고록의 성격을 갖는다. 그러나 이 작품은 남녀 관계의 얽히고설킨 이야기에 치중해 “전체 소설의 약 20% 분량으로만 10·19를 다”룬 ‘20%’ 여순소설로 평가받는다. 해방과 6·25전쟁 그리고 분단으로 이어지는 현대사 속에서 여성의 성장에 대한 기대가 좌절되며 냉전 가부장제가 여성의 인간화를 가로막고 있음을 일깨운다는 점은 간과된다.
서경의 이야기는 8·15 해방이 일제에 나라를 빼앗김으로써 좌절된 여성해방의 기획이 재가동된 시간이었음을 일깨운다. 청순가련과는 거리가 먼 지적이고 당찬 ‘여주’인 서경은 스스로를 ‘호모 에로티쿠스’로 정의하며 “체격과 지성이 기준에서 합격”인 원동휘와 오동도의 대밭길 데이트를 하며 ‘날개 달린 에로스’의 주인이 되고자 한다. Y시를 점령한 진압군인들에 의해 원동휘는 좌익 교사로 몰려 쫓기고, 서경 역시 감시 대상이 되면서 여자로서의 성장 기획은 좌절된다. 여수에 주둔 중이던 국군 제14대 연대의 일부 군인들이 제주도 항쟁을 진압하라는 정부의 명령에 불복종해 봉기하고, 이에 지역 주민들이 가세하자 정권의 명령을 받고 ‘진압군’이 전남 동부 수개군으로 투입된 것이다. 서경은 처형과 겁탈의 위기를 뚫고 끝내 Y시를 탈출해 목숨을 구하지만, 연달아 터진 6·25전쟁으로 갖은 수난에 노출되며 치유 불가능한 상처를 짊어지게 된다. 서경은 원동휘에 대한 감정적 애착을 끊어내지 못한 채 한때 자신이 격렬히 증오해 마지않았던 ‘진압군’ 임형규 대위와 결혼하게 된다.
일신서적출판사 제공
이 소설의 가장 난해한 지점은, 서사가 전개되며 강서경의 임 대위에 대한 공포와 적대의 감정이 점차 의존과 감사로 변모한다는 점이다. Y시의 목격자인 그가 “빨갱이” 토벌의 공을 인정받아 훈장까지 받은 임 대위를 사랑한다는 것은 가해자와 공모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강서경의 임 대위에 대한 감정은 인질이 인질범에게 동질감을 느끼고 감정적 유대감을 형성하는 모순적 현상인 스톡홀름증후군과 흡사하다. 이 소설의 도입부는 충격적인데, 좌익으로 몰려 즉결처형당할 뻔한 서경이 운 좋게 살아남아 수용소로 전락한 학교로 돌아오지만, 겁탈이라는 또 다른 위험에 처한다는 것이다. 거대한 체구로 인해 “고릴라”로 불리는 임 대위는 서경을 몰래 따라와 그를 능욕하려고 한다. 서경의 거센 저항으로 강간은 실패로 돌아가지만, 이후에도 성적 위협과 강간 실패가 거듭되고 공포가 안도의 감정으로 변하면서 서경은 임 대위를 인정미 있는 따스한 인간으로 여기고 그의 사랑 고백에 은밀한 자부심조차 느낀다.
여성이 가부장제 복속되는 ‘냉전의 젠더’ 탐문
이처럼 부조리한 반응은 여성이 심리적으로 사디스트에게 끌리는 매저키스트임을 보여주는 증거로 간주되기 쉽다. 그러나 디 그레이엄에 의하면, 남성 폭력이 만연한 사회에서 여성은 강간을 당할지 모른다는 공포, 남성을 화나게 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서 벗어날 수 없기에 여성 인질범의 부조리한 반응처럼 공격적인 남자에게 유대감조차 느낀다. 심지어 폭력적인 남성에게 성적으로 이끌린다. 여성 인질이 인질범에게 연애 감정을 품는 것은 인질범이 여성 인질에 대한 공격과 위협을 성애화하는 위험한 상황에 대처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폭력적 상황을 벗어나기 어려운 상황에서 헛되이 구원자를 기다리기보다는 인질범과의 감정적 협상을 통해 생존의 활로를 찾고자 하는 것이다. 실질적으로 높은 지위의 군인인 그는 서경이 Y시에서 떠날 수 있도록 하고, 서울의 주인이 수시로 바뀌며 불안정한 전쟁의 시간 속에서 좌익 활동을 하는 남동생을 우익 토벌대로부터 방어해줄 서경의 유일한 권력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반란도배들의 땅”으로 낙인찍힌 Y시의 교사이자 여성이라는 중첩된 타자성을 지닌 강서경의 수난을 쫓아감으로써 해방과 6·25전쟁 그리고 분단으로 이어지는 한국사를 냉전 가부장제가 탄생하는 시간으로 포착한다. 강서경은 Y시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폭격으로 불에 타고 원한 깊은 시신이 나뒹구는 도시에서 시민의 권리와 자유가 박탈된 ‘호모 사케르(homo sacer)’로 전락한다. “빨갱이 새끼는 모조리 죽어야 돼. 반란을 일으킨 이런 도시 하나쯤 대한민국 지도에서 지워버려도 상관없어”라는 임 대위의 말은 여순사건이 좌익화된 지역의 절멸 기획, 즉 ‘제노사이드(genocide)’였음을 뜻한다. 다른 한편으로 젊은 여자로서 그의 아름다움은 공작새의 화려한 날개처럼 생존을 어렵게 만드는 위험 요인이다. 임 대위는 “반란군”을 성공적으로 제압한 토벌대의 대장으로서 패배한 적지의 여자로 분류된 서경을 강간해 정복자의 쾌락을 향유하고자 한다. 그는 강간에는 실패하지만 결혼을 통해 Y시의 전리품인 서경을 소유하게 된다.
<절망 뒤에 오는 것>은 여순사건과 6·25전쟁에 대한 여성의 기억과 증언을 통해 해방과 전쟁을 자유를 향한 여성의 꿈이 좌절되고, 여성이 냉전 가부장제에 복속되는 과정으로 그린 여성 서사다. 전쟁과 냉전체제는 단순히 남성의 희생으로만 설명될 수 없는 것으로, 남성에게 사병의 지위를 부여하고, 여성에 대한 지배와 성적 쾌락이라는 특권을 준다. 강서경과 임형규의 결혼은 마치 여성에 대한 보호를 제공한다고 자처하는 남성이 그 대가로 여성을 착취하는 ‘보호세 갈취’의 성격을 띤다. 휴전을 앞두고 임형규는 전투에서 다리를 잃으며 제대한다. 이야기는 서경이 자신의 고문관, 인질범이었던 남자와 그의 가족들을 돌보며 살아갈 것임을 암시한다. 서경은 가혹한 현실 앞에서 자신이 겪은 수난의 의미를 찾고, 자신의 고통을 사소한 것으로 만들어줄 민족주의 같은 이념에 매달린다. 그러나 이 소설은 제목처럼 서경이 영원히 애도 받을 수도 없는 ‘절망’을 안고 살아가게 될 것임을 암시하는 것으로 냉전의 젠더를 탐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