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로 맛보는 역사, 역사로 배우는 커피] 네스카페 탄생에서 배우는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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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이 23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한국-브라질 비즈니스 포럼에서 폐회사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브라질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대통령이 우리나라를 찾았다. 브라질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누구는 축구를 떠올릴 것이다. 월드컵 최다인 5회 우승국이 브라질이고, 4년 전 타계한 브라질 선수 펠레는 월드컵 3회 우승을 달성한 세계 축구 역사에서 유일한 선수다. 그야말로 축구의 전설이다. 브라질은 또한 세계 최대 규모의 거리 축제인 리우 카니발과 삼바로 상징되는 정열의 나라이기도 하다.
여기에 하나를 덧붙이자면 세계인이 마시는 커피의 삼분의 일 이상을 생산하는 커피의 나라, 그리고 이런 커피 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열대 우림 아마존을 품고 있는 나라가 브라질이다. 물론 최근에는 커피 농장 증가, 이로 인한 열대 우림 훼손에 대한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가 브라질의 이미지에 적지 않은 흠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런데 브라질과 관련하여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적 사실 하나가 있다. 브라질이 키운 유럽 국가 이야기다. 과연 브라질이 키운 유럽 국가는 어디일까? 바로 스위스다. 현재 스위스의 국민 기업인 네슬레는 브라질의 선택을 받는 순간 세계적인 기업으로의 급속한 성장을 시작하였다.
브라질이 손 내민 스위스 식품회사 네슬레
1930년대 초 브라질의 커피 수출 항구 산토스에는 팔리지 않은 커피 자루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대공황 이후 세계 시장은 얼어붙었고, 세계 커피 소비량의 6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고 있던 최대 커피 생산국 브라질은 아이러니하게도 '커피 때문에' 위기를 맞았다. 가격을 지키기 위해 커피를 바다에 버리고, 심지어 불태우기까지 했던 시절이다. 세계 1년 커피 소비량의 1/2 정도를 소각하였다.
브라질 커피 생산자들은 뭔가 돌파구가 필요했다. 커피를 더 오래 보관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쉽게 마실 수 있는 제품을 개발하는 일이었다. 브라질 정부 산하의 '커피연구소'가 손을 내민 곳은 의외로 강대국 기업도, 커피 기업도 아니었다. 분유로 시작한 스위스의 식품회사 네슬레였다. 1866년 창업하여 분유, 농축 식품, 유아식 등을 개발하며 식품 '보존'과 '가공'의 기술을 축적해 온 기업이었다.
네슬레 연구진은 커피 추출액을 분말로 만드는 기술 개발에 착수했고, 8년에 걸친 실험 끝에 1938년 '네스카페'가 세상에 나왔다. 뜨거운 물만 부으면 완성되는 커피, 보관이 쉽고, 휴대가 간편하며, 대량 공급이 가능한 새로운 형태의 음료였다. 물론 그 이전에도 유사한 제품이 개발된 적은 있으나 물에 완벽하게 녹는 커피는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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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식품회사 네슬레에서 개발한 네스카페(Nescafe)
ⓒ Nestle S.A.
그러나 이 커피를 빠른 속도로 세계에 퍼뜨린 것은 브라질도, 스위스도 아니었다. 제2차세계대전이었다. 전쟁에 참여한 미군과 연합군은 간편하고 안정적인 각성 음료 커피를 필요로 했다. 네스카페는 군용 식량에 포함되었고, 수백만 병사들이 전장에서 이 커피를 마셨다. 전쟁이 끝난 뒤, 그들은 고향으로 돌아가서도 그 맛을 찾았다. 네스카페는 전쟁의 기억과 함께 미국인과 유럽인의 일상으로 스며들었고, 곧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미국의 커피 기업 맥스웰하우스는 아직 인스턴트커피 생산을 못 하고 있던 시절이다.
브라질은 잉여 커피를 해결하여 국가 재정난을 극복하려 했을 뿐이었고, 네슬레는 기술적 도전을 받아들여 사업 확장을 모색하였을 뿐이었다. 그러나 전쟁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소용돌이가 이 조합을 세계적 산업으로 키워냈다. 한 나라의 농업 위기가 한 기업의 기술 혁신을 낳았고, 전쟁은 그것을 글로벌 브랜드로 만들었다.
네슬레는 현재 전 세계 180여 국가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글로벌 기업이다. 우리가 아는 브랜드는 네스카페(Nescafé), 네스프레소(Nespresso), 킷캣(KitKat), 퓨리나(Purina), 거버(Gerber), 세레락(Cerelac) 등이다. 스위스에서는 커피콩을 단 한 톨도 생산하지 않지만, 네슬레는 세계 1위 커피 기업이 되었다.
네슬레의 연간 매출 규모는 미국 달러 기준으로 1000억 달러를 조금 상회하는 수준이다. 스위스 국내총생산(GDP) 1조 달러의 10%를 차지하는 것이 단일 기업 네슬레다. 스위스 중앙정부 1년 지출 예산과 네슬레의 1년 매출은 거의 같은 수준이다.
2월 8일 한국거래소(KRX) 정보데이터시스템에 따르면 2월 6일 종가 기준 코스피, 코스닥, 코넥스 등 우리나라 3대 주식시장의 시가 총액은 4799조 3000여억 원으로 독일과 대만, 그리고 스위스를 넘어 세계 8위에 올랐다. 네슬레의 나라 스위스의 2026년 시가 총액은 4000조 원 수준이고, 이를 이끄는 것은 커피 기업 네슬레다. 네슬레는 스위스 1위 기업일 뿐 아니라, 커피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가치를 지닌 기업, 나아가 식품 분야 세계 1위 기업이다.
스위스 기업 네슬레의 성장이 주는 교훈
1930년대에 브라질은 왜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당시 강대국의 수많은 커피 기업을 제치고 굳이 유럽의 작은 나라 스위스의 일반 식품 기업을 파트너로 선택하였을까? 물론 가장 중요한 요소는 기술력이었을 것이다. 당시 네슬레는 분유, 초콜릿, 유아식 개발을 통해서 식품 농축, 분말화, 식품 장기 보존 등에서 높은 수준의 기술을 지니고 있었다. 가루로 만들어 장기 보존이 가능하고, 쉽게 음료로 전환할 수 있는 커피 제품의 개발을 의뢰하기에 적합한 기술들이었다.
그렇다면 브라질의 네슬레 선택이 오직 기술력 하나 때문이었을까? 아니다. 네슬레의 기술력과 함께 또 하나 눈여겨봐야 할 요소가 있다. 브라질의 선택에는 스위스가 갖고 있던 중립국이라는 신뢰의 이미지가 작용했다. 요즘과 매우 유사한 격렬한 국제 정치의 한복판에서 특정 강대국에 기울지 않는 선택은 어쩌면 조심스러운 외교적 판단이었을지도 모른다.
당시 브라질이 특정 강대국의 기업에 이 프로젝트를 맡겼을 경우 감당해야 할 외교적 부담, 정치적 편향 시비, 경제적 종속 등의 우려가 적지 않았다. 중립국이며 강소국인 스위스의 이미지는 이런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는 장점이었다. 스위스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중립을 지켰고, 이로 인해 전쟁 후에 국제연맹 본부를 유치하였다. 이런 덕분에 금융과 식품 등 여러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안정적인 국가 이미지를 얻을 수 있었다.
네스카페 탄생의 역사를 되새겨 보면 국제 경쟁에서 국가 이미지가 갖는 중요성을 짐작할 수 있다. 국가 간, 진영 간 경쟁과 갈등이 심할수록 국가 이미지 관리가 중요한 이유이다. 20세기 중반 커피 소비문화를 바꾼 네스카페의 탄생, 그리고 스위스 기업 네슬레의 성장이 주는 교훈이다.
네스카페 한 잔에는 브라질의 커피 과잉 생산, 스위스의 높은 기술력, 그리고 전쟁의 그림자가 겹쳐 있다. 커피는 농산물이지만, 동시에 국제 정치의 산물이다. 우리가 가볍게 타 마시는 인스턴트커피 한 잔 속에도 세계사의 우연과 필연이 녹아 있다.
브라질 대통령 룰라의 방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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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이 23일 청와대에서 열린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과의 확대 정상회담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최근 우리나라를 찾은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은 지금 한국이 "전 세계의 기술 핵심 국가로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한국의 불고기에 브라질의 소고기가 올려지길 희망하였다. 룰라 대통령은 이외에도 닭고기, 옥수수, 콩, 그리고 커피 등 농축산물 분야의 교류 확대, 브라질의 풍부한 광물 자원 개발에 대한 한국의 관심과 협력을 희망하였다. 90여 년 전 브라질이 네슬레를 성장시킨 그 시절이 떠올랐다.
1930년대와 비슷한 수준으로 국제 정세가 불안하고 예측 불가능한 시절이다. 그때 브라질과 스위스가 그랬듯이 오늘날 브라질의 풍부한 자원과 대한민국의 높은 기술이 합해져서 네스카페에 버금가는 세계적인 상품이 이 땅에서 만들어지고 세계인이 소비하는 미래를 그려보게 된다. 브라질의 자원, 우리의 기술, 그리고 여기에 더해져야 할 것이 대한민국의 안정적이고 긍정적인 국가 이미지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마침 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BTS로 상징되는 K-문화, 그리고 내란을 평화적으로 극복한 시민 정신 등은 국제협력에서 중요하게 작용하는 긍정적인 국가 이미지를 만들고 있다. 때마침 이루어진 브라질 대통령 룰라의 방한은 우리나라의 밝은 미래를 예고하는 듯하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커피 한잔에 담긴 문화사, 끽다점에서 카페까지>의 저자)
덧붙이는 글 |
참고문헌
이길상(2025). 커피 한잔에 담긴 문화사, 끽다점에서 카페까지. 싱긋.
이길상(2023), 커피가 묻고 역사가 답하다. 역사비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