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의 글쓰기] 출중한 협력자를 잘 쓰는 법, 결국은 '내 기준'이 필요하다
'AI시대의 글쓰기'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본질은 무엇일까요. 다양한 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는 시민기자들의 경험을 통해 나의 성장을 돕는 인공지능 활용 기준을 모색해 봅니다. <편집자말>
글을 잘 쓰고 싶다. 가능하면 글로 돈도 벌고 싶다. 그런 마음으로 습작한 지 꽤 오래 되었다. 처음 습작을 시작할 때, 아마도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국이 있었던 때(2016년) 정도 됐겠다. 그때만 해도 문학계까지 AI의 영향이 미칠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잘 쓰기 위해서는 그저 '다독 다작 다상량'이면 된다고 생각했다. 문학이라는 링 위에 올라가기 위해 여러 수업도 들었고, 썼다가 삭제한 글만 해도 수십 편이다. 그렇게 10년이 흘러 나는 아직도 링 위에 올라가지 못했는데, 글쓰기 판에 로봇 선수가 등장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럴 수가.
글을 쓸 때 도움 받은 인공지능
▲
시중에 나온 소설책들과 글쓰기.
ⓒ 오마이뉴스
내가 쓴 단편 소설의 주인공은 대개 출판사 편집자이거나 교사다. 작가는 소설의 상황을 장악할 수 있어야 하는데 주인공이 내가 경험하지 않은 직업군일 경우, 그게 잘 되지 않는다. 2년 전, 소설 합평 수업의 강사님이 자료 수집할 때 AI의 도움을 받아보라고 했다. 내 소설 속 주인공의 직업을 광고대행사 직원으로 바꿔보았다.
"광고대행사 신입사원을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을 쓰려고 해. 어떤 업무를 하는지 알려줘."
"광고대행사 신입사원이 실수하는 내용을 소설 속에 넣으려고 해. 자연스러운 상황 몇 개만 알려줘."
그즈음엔 어떤 프로그램에서 가수 윤종신이 나와 AI에게 연인과 헤어진 사람의 감정을 알려달라고 물어본 후, 그 내용을 토대로 가사를 쓴 적 있다는 말을 들었다. 나도 습작할 때, 20대 등장인물의 감정묘사가 쉽지 않은 경험이 있어 내친김에 AI에게 물어보았다.
"소설을 쓰고 있어. 20대 후반 여자가 남자 친구가 바람을 피운 걸 목격했을 때 감정이 어떨지 알려줘. 겉으로 보이는 신체 변화도 알려주면 묘사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
자료 수집과 감정 표현 묘사에 AI의 도움을 받게 되니 쓸 수 있는 폭이 넓어졌다(그러나 이게 결과는 아니다, 본론은 조금 이따 말하겠다).
얼마전엔 유튜브에서 본 이낙준 작가(넷플릭스 <중증외상센터>의 작가)의 세바시 강연, 'AI시대에 창작자가 가져야 할 태도 및 핵심 역량'에도 비슷한 내용이 나왔다. AI는 자료조사나 특정 장면의 묘사, 전문 용어 확인 등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을 대신해줘서 창작의 효율성을 극대화해준다고. 그러면서 이낙준 작가는 기술적으로 '어떻게(How)' 구현할 것인가는 AI의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무엇을(What), 왜(Why)' 만들 것인가는 여전히 인간의 고유한 영역이라고 했다.
유튜브 알고리즘때문인지 비슷한 내용의 유튜브들이 올라왔다. 문지혁 작가도 글을 쓸 때 AI의 도움을 받곤 하는데, AI에게 시놉시스를 주고 "이걸로 줄거리를 써 볼래?" 하고 요청한다고 했다. 재밌는 건, 그렇게 해서 나오는 스토리는 '피해서' 글을 쓴다는 것이다.
AI가 쓰는 스토리는 익숙하고 무난하게 재미있는, 10점 만점이라고 할 때 5~7점 정도 되는 내용을 구성하므로, 그걸 피하는 전략을 쓴다는 설명이었다. 문지혁 작가는 지금 AI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는 이야기는 오히려 개인적이고 인간이 직접 경험한 고유한 이야기라고 했다. 이 시대 작가에게 주어진 의무는 자기의 이야기를 발견하고 그것을 고유하게 말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라고도 했다.
글 쓰는 사람들끼리 만나면 글을 쓸 때 AI를 어떻게 활용하는지 얘기를 나누기도 한다. 그 자리에 있던 지인 한 명이 83세의 황석영 작가가 최근 발표한 소설 <할매>를 AI를 활용해서 썼다는 말을 해주었다. 문학계의 거장조차 AI를 사용한다는 것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 지인이 보내준 황석영 작가의 인터뷰를 보았다. 작가는 5가지 정도의 구성 안을 놓고 AI와 토론하며 최종안을 결정했고, 방대한 자료 조사는 AI를 통해 정리할 수 있었다고 했다. 작가는 AI도 하나의 새로운 집필 도구일 뿐이라며 사용자가 이미 충분히 내용을 장악하고 있어야 AI와 깊이 있는 대화(토론)를 할 수 있으며 복잡한 상상력이 필요한 본격 문학은 인간만이 가능하다고 했다.
이 많은 유튜브들을 보고 깨달았다. 문학계라는 링 위에 올라온 로봇 선수가 경쟁자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나의 협력자라는 사실을. 그 협력자는 능력이 아주 출중한데, 링 위에 못 오르고 있는 것은 알고보면 내 문제였다.
그때 AI가 알려준 광고대행사 신입사원에 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이 주인공인 습작을 완성했느냐, 하면 아니다. 그때 AI가 알려준 남자친구가 바람 피우는 걸 목격한 20대 여자가 주인공인 소설을 완성했느냐, 하면 아니다. 그저 AI가 제시한 내용을 보고 '대단하군' 하고 조금 끄적이다 말았다.
나는 더 나아가야 했다. 그 자료로 내가 무슨 말을 할 것인가, 어떻게 그 장면을 활용할 것인가를 고민했어야 했다. 어디까지 AI의 도움을 받을 것인가에 대한 스스로의 기준을 세웠어야 했다.
내 글은 나여야 한다
▲
어디까지 도움을 받아야 이 글의 주인이 '내'가 되고 'AI'가 되지 않을 것인가. AI생성 이미지
ⓒ 오마이뉴스
대부분의 AI는 인간과의 대화에서 이런 제안을 하며 마무리 하려 든다. '제가 관련 에피소드를 더 알려드릴까요?', '캐릭터를 더 섬세하게 다듬어 드릴까요?', '주인공이 더 처절하게 무너졌다 회복하도록 집필하는 걸 도와드릴까요?' 난 그런 질문 앞에서 항상 머뭇거린다. 어디까지 도움을 받아야 이 글의 주인이 '내'가 되고 'AI'가 되지 않을 것인가, 고민되어서.
문지혁 작가는 AI와 달리 인간은 고유한 존재라고 했다. 그 말을 듣는데 가수 이승윤의 '폐허가 된다 해도'의 가사 중 일부분이 생각났다.
'난 나라는 시대의 처음과 끝이야. 난 나라는 인류의 기원과 종말이야.'
나라는 사람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고, 지금 존재하는 나, 한 사람뿐이다. 고유한 나는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 내 사유에서 흘러나오지 않은 내용이 덕지덕지 붙은 글은 내가 장악할 수 없는 글, 힘 없는 글이 되고 만다. 그저 스르륵 읽히는 매끄러운 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설 연휴 때, 예전에 쓴 일기 중 찾고 싶은 내용이 있어 뒤적거리다가 2024년 여름, 공모전 응모 후 낙담한 내용을 발견했다.
'공모전 마감에 맞춰 글을 제출하고 다시 그 글을 보다 조금 슬퍼졌다. 내 글이 너무 나다. 내 글은 나를 넘어설 수 없었다. 나는 어쩌다가 나를 드러내야 하는 이런 일을 하게 되었을까.'
글을 쓸 때, 가끔은 생각지도 못했던 사유가 펼쳐진다. '오, 내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무릎을 치기도 한다. 그러고는 내가 쓴 글처럼 살고 싶어진다. 글은 족쇄처럼 나를 붙잡고 조금 더 나은 나로 살게 해 준다. 이런 경험은 AI를 주인이 아닌 비서로 둘 때만 가능하다. 나는 내 글이 AI를 통해 나의 사유나 생각을 넘어서기를 원치 않는다. 이 시대에도 내 글은 나여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