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의 마지막은 어디인가... 영화 <왕과 사는 남자>와 관풍헌, 자규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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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왕과 사는 남자> 스틸컷
ⓒ ㈜쇼박스
영화를 거의 보지 않는 사람이 극장을 찾았습니다.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가족과 함께였습니다. 선택의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왕과 사는 남자>라는 제목이 단종이라는 이름을 다시 불러냈기 때문입니다.
상영관이 어두워집니다. 스크린에 문장이 뜹니다. 역사적 사실에 상상을 더했다는 안내입니다. 관객의 태도가 정해집니다. 영화는 영화로 보고 역사는 역사로 봐야합니다.
영화 속 엄흥도는 인간적인 인물로 그려집니다. 웃음이 나옵니다. 단종의 얼굴이 화면을 채우는 순간, 분위기는 달라집니다. 말수가 줄어듭니다. CG로 재현된 호랑이 장면에서는 현실과 거리가 느껴집니다. 연출의 영역으로 받아들이는 편이 맞겠습니다. 관람 뒤 가족과 대화를 나눴습니다. 감동은 남았습니다. 그대로 믿기에는 조심스러웠습니다. 기록을 다시 펼쳤습니다. 영화가 아니라 사료 속 단종을 따라가 보기로 했습니다.
단종, 정통성과 권력 공백
단종은 조선 최초의 적장자 계승 군주였습니다. 세종에서 문종, 단종으로 이어지는 왕통에는 흠결이 없었습니다. 즉위 당시 나이가 문제였습니다. 수렴청정을 맡을 대비가 없었습니다. 왕실 어른도 없었습니다. 정치적 보호막이 사라진 상태였습니다.
국정의 무게는 대신들에게 쏠렸습니다. 인사권도 그들의 손에 들어갔습니다. 이때 등장하는 관행이 황표정사입니다. 대신들이 인사 대상자의 이름 옆에 노란 쪽지를 붙여 올리던 방식이었습니다. 형식상 재가는 임금이 했습니다. 실제 선택지는 미리 정해져 있었습니다. 어린 임금 아래에서 신권이 강화됐음을 보여 주는 장면이었습니다.
1453년 계유정난이 일어납니다. 명분은 김종서의 전횡이었습니다. 결과는 분명했습니다. 단종은 왕위에서 내려왔습니다. 수양대군은 곧 세조로 즉위합니다. 이 과정을 단순히 선악 구도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조선 초기 권력 구조가 빚은 비극에 가깝습니다.
관풍헌과 자규루, 그리고 영월의 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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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사는 남자> 포스터
ⓒ 쇼박스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등됩니다. 유배지는 영월입니다. 청령포가 먼저 떠오릅니다.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인 공간입니다. 물리적 고립이 분명한 장소입니다.
1457년 여름, 홍수가 이어집니다. 청령포가 위태로워집니다. 단종은 영월 관아에 딸린 객사 관풍헌으로 옮겨집니다. 자연에 갇힌 공간에서 읍내 중심으로 이동합니다. 유배의 성격이 달라집니다.
관풍헌 곁에는 자규루가 있습니다. 단종은 이 누각에 올랐다고 전해집니다. 한양을 바라보며 시를 남겼다고 기록됩니다. 청령포가 몸을 가두는 자리였다면, 자규루는 마음이 드러난 자리였습니다.
자규루에는 여러 후대 문헌과 지리지에는 단종이 유배 중 두견새를 노래한 시가 전해진다고 적고 있습니다. "자규성단효잠잔월백(子規聲斷曉岑殘月白)." 두견새 소리가 끊기고 새벽 봉우리에는 기울어진 달빛만 남았다는 뜻입니다. 이 시가 정확히 언제, 어디에서 지어졌는지를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이러한 시적 전승이 자규루라는 공간과 결합하며, 단종의 고독과 유배의 밤을 상징하는 장소로 기억됐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단종의 죽음에 대한 기록은 일치하지 않습니다. 조선왕조실록 <세조실록>은 관풍헌에서 자결했다고 기록했습니다. 이후 편찬된 <선조실록>에는 사약을 내렸다는 기록이 등장합니다. <숙종실록>에는 현장의 혼란이 더 구체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실록 밖 기록인 <연려실기술>에는 교살에 가까운 전승도 전해집니다. 죽음 관련 기록이 다르지만 1457년 10월, 단종은 관풍헌에서 열일곱의 생을 마쳤습니다.
그 뒤에 한 인물이 등장합니다. 엄흥도입니다. 여기서 짚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엄흥도는 영화 속 촌장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영월 고을의 호장이었습니다. 관아에 소속된 아전이었습니다. 행정과 치안을 맡은 실무 책임자였습니다. 중앙에서 파견된 수령을 보좌하던 공식 직책이었습니다. 지역 대표가 아니라 국가 행정 체계 안에 있던 인물이었습니다.
엄흥도의 시신 수습은 개인적 의리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국가 권력의 감시 아래 있던 관리가 정치적 위험을 감수한 선택이었습니다. 그의 행동은 충의를 실천한 미담을 넘은 결단입니다.
시간이 흐릅니다. 숙종 대에 단종은 복권됩니다. 무덤은 장릉으로 격상됩니다. 정조는 엄흥도에게 관직을 추증합니다.
영화는 아쉬움 속에 슬픈 눈망울의 단종과 엄홍도를 떠올리게 막을 내리지만 영화와 역사는 다릅니다. 단종의 유배는 청령포에서 시작해 관풍헌에서 끝납니다. 자규루는 단종의 마음이 언어로 남은 자리입니다. 단종을 기억하기에는 청령포보다 관풍헌과 자규루가 더 제격입니다.
가족과 함께 본 영화는 대화로 이어졌습니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역할을 다했습니다. 남은 몫은 관객의 태도입니다. 영화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우리는 영화를 매개로 질문에 답할 차례입니다.
▣ 주요 정보
- 관풍헌·자규루: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영월읍 중앙로 61 / 관람료 무료 / 상시 개방
- 청령포: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영월읍 청령포로 133 / 관람료 어른 3,000원(도선료 포함) / 09:00~18:00
- 장릉: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영월읍 단종로 190 / 관람료 어른 2,000원 / 09:00~18:00
- 주차: 세 곳 모두 인근 또는 전용 무료 주차 가능
- 관람 포인트: 단종 최후의 중심은 관풍헌·자규루, 청령포는 유배의 시작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에나 이야기꾼 해찬솔 개인블로그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