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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쫀쿠
동생이 사랑으로 가져온 두쫀쿠는 작아도 너무 작았다
ⓒ 윤태정
신문 한구석에 올라온 기사 하나가 눈에 띄었다. 최근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두쫀쿠'에 관한 내용이었다.
"두바이 쫀득 쿠키(두쫀쿠) 등 디저트를 판매하는 배달 음식점과 카페 등이 식품위생법 위반으로 적발됐다."
누군가에게는 이 기사가 그저 비싼 유행템의 위생 문제로 보일지 모르지만, 내게는 유난히 거대한 이슈처럼 다가왔다. 엄마 집 거실을 환하게 밝혀주던 남동생의 '부지런한 사랑'과 겹쳐 보였기 때문이었다.
얼마 전에 남동생이 으로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요즘 세상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는 본 적도 먹어본 적도 없는 '두쫀쿠'였다. 한 집에 한 개씩 주려고 줄까지 서서 샀다는 말에 대뜸 얼마냐고 물었더니 6900원이라고 했다. 나는 한 집에 하나씩이라는 말에 적잖이 당황했다. 다섯 개의 가격인 줄만 알고 쩨쩨하다고 느꼈으니.
며칠 후 엄마 생신날이 되어 오남매가 한자리에 모였다. 식사를 마치고 나자 남동생은 의기양양하게 작은 상자를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누나들, 두쫀쿠 맛 좀 보셔."
드디어 유행의 맛을 보게 되는 감격의 순간이었다. 상자가 열린 틈으로 조심스레 고개를 내민 쿠키는 작아도 너무 작아 보였다. 아무리 부풀려 말한다 해도 갓난아이 주먹 만큼도 안 되는 크기였다.
"애걔걔, 요까짓 게 뭐라고!"
알고 보니 쿠키 한 알에 6900원이었던 거다. 동생의 이어지는 말에 우리 자매는 엄마와 누나들을 위해 시간과 돈으로 맞바꾼 동생의 마음씨에 크게 감동했다.
회사 근처 점포에서 한 사람당 10개 한정으로 파는 이 쿠키를 사기 위해, 남동생은 퇴근길에 한 시간을 넘게 줄 서는 데 꼬박 바쳤다. 그토록 귀한 쿠키를 직장 상사에게도 선물하고, 엄마와 누나들을 위해 챙겨온 것이었다. 상사의 반응이 놀라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자네, 이 귀한 것을 어찌 구했어? 오늘 집에 가서 점수 좀 따겠는데?"
두쫀쿠가 대세이긴 한 모양이었다. 동생은 시대의 흐름에 발 빠르게 적응하고 실천으로 바로 옮기는 기자라는 직업에 어쩜 그리 딱 어울리는지.
시류에 무감각한 누나들을 위해 세상의 핫한 눈을 전해주는 자상한 동생의 모습이 그려졌다. 길게 줄을 늘어선 젊은이들 틈에 당당한 얼굴로 서 있던 오십 대 중반 남성의 모습을. 그것은 소중한 누군가를 기쁘게 해주고 싶은 '사랑'이 '체면'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표였다.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세상과 호흡하겠다는 자신감의 발로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남동생이 없었더라면 시대가 기록하고 있는 '두쫀쿠'가 뭔지도 모르고 무심히 살았을 거다.
문득 남동생의 지난 기록들도 한꺼번에 같이 딸려 나왔다. 2014년인가 허니버터칩 열풍 때는 예약까지 해가며 과자를 공수해오지 않았나. 2022년 포켓몬빵 대란 때는 자녀들을 위해 다른 동네까지 원정을 다니며 아빠의 존재감을 증명해 보였다. 남동생이 허니버터와 포켓몬빵 맛보라며 꺼내놓지 않았더라면 시대가 말해주는 유행 맛을 알지도 못한 채 지나쳐버렸을 것이다. 유행에 둔감한 누나들을 위해 마음을 써주는 동생을 두었다는 게 얼마나 든든한지 자랑하고 싶어졌다.
남동생의 시선이 갑자기 옆에 앉아 있던 내 아들한테 옮겨갔다.
"아직 엄마한테 안 사드렸어?"
아들의 가슴에 못을 박는 소리처럼 들렸다. 아들은 멋쩍은 표정으로 변명을 늘어놓았다.
"삼촌, 사무실에서 먹어 봤는데 맛이 좀 이상해서 엄마는 싫어하실 것 같아서요."
내 입맛이 까다로운 건 인정하지만 아들의 멋쩍은 변명 뒤로,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줄을 설 수 있는 마음은 좋은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들의 어깨를 다독이면서 무언의 눈빛을 교환했다. 유행을 좇으라는 게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시간을 할애할 수 있는 게 얼마나 멋진 일이냐고. 무언가 소중한 걸 기다리며 설렘을 느껴보는 '연습'도 때에 따라서는 꼭 필요한 일이라고. 아마 여자 친구가 있었다면 두쫀쿠를 사려고 길게 늘어선 사람들 틈에 우리 아들도 서 있었을 거라고 믿는다.
동생의 아름다운 수고로움 뒤에 들려온 위생 불량 적발 소식이라니. 찬물을 끼얹은 듯 씁쓸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물론 모든 두쫀쿠 업체가 적발당한 것은 아니다. 다만, 식품 판매자는 단순히 '유행하는 디저트'를 판매하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가 추운 거리에서 보낸 한 시간, 사랑하는 이의 웃음을 기대하며 품었던 그 귀한 설렘을 사고파는 것이다. 내 동생이 그 추위에 한 시간 넘게 서서 기다린 그 마음이, 혹시 위생 불량이라는 부주의함에 훼손당하는 것은 아닐까 좀 불편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이제 유행은 지나가고 두쫀쿠의 열풍도 언젠가는 사그라들기 마련이다. 하지만 사랑하는 이를 위해 줄을 섰던 그 뜨거운 열정은 오래도록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서로에게 건넨 진실한 마음이 제대로 빛을 낼 수 있도록 먹거리가 안전했으면 좋겠다.
음식을 다루는 사람이라면 기본적으로 타인을 향한 사랑이 녹아 있을 텐데 일부 기본을 지키지 않고, 욕심을 부리는 판매자들이 물을 흐린다. 유행을 틈타 불법으로 이득을 취하려는 행위를 멈추고, 진심이 담긴 먹거리를 유통함으로써 불안에 떨지 않는 세상이 되었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나는 잠시 회상했다. 두쫀쿠 하나를 접시에 올려놓고 조각 내어 맛보던 그 날의 달콤했던 풍경을.
▲ 네 조각 낸 두쫀쿠
한 집에 하나 받은 두쫀쿠를 다시 조각 내어 맛을 봤는데 달콤하면서도 맛이 있었다. 너무 적어서 더 맛이 있었나 보다.
ⓒ 윤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