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라이프

허리 부러진 엄마에게 AI가 내놓은 정 없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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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만나면 "걔"를 찾던 엄마에게 정말 필요한 건 마음을 붙잡아줄 말 한 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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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전날 밤 10시쯤, 여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침울한 목소리였다.

"언니, 일이 생겼어."

"무슨 일?"

"엄마가 음식 준비하다 넘어져서 119구급차 타고 병원 왔어. 엑스레이 찍었는데 허리가 골절이래."

올겨울 폭설에 꺾여버린 호두나무 가지가 내 심장을 덮쳐오는 느낌이었다. 명절 차례상 준비를 마치고 남편과 술 한 잔을 나누던 시간이었다. 지친 아내를 위한 위로주였는데, 순식간에 폭탄주가 되었다. 가슴이 '쿵쿵쿵' 뛰었다. 온 가족의 재난 경보가 울렸다. 급한 대로 택시를 불러야 하나 싶었는데, 여동생이 오늘 밤은 자신이 엄마를 지킬 테니 명절 차례가 끝나면 병원으로 오라고 했다.

나는 종손 외며느리였다. 시어머니도 돌아가신 집안에서 차례상의 유일한 안주인이었다. 일단 병원으로 모셨으니, 의료진을 믿고 이성적으로 생각하려 했지만 마음을 다잡기란 쉽지 않았다. 얼마나 심한 골절인지 상태를 알 수 없으니 답답하기만 했다.

설 명절이라 의료진이 부족해 MRI를 바로 찍을 수 없다고 했다. 통증은 진통제에 의지한 채 그대로 견뎌야 하는 상황이었다. 더 큰 병원으로 옮겨야 하는 건 아닐까. 불 조절에 실패한 꼬치 전처럼, 가슴이 거뭇하게 타들어 갔다. 이럴 때 조언을 구할 의사나 간호사가 주변에 없다는 게 뼈아프게 다가왔다.

결국 내 손이 향한 곳은, 스마트폰 속 AI였다.

답답한 마음에 찾은 AI

▲ 명절 전날 입원

움직일 때마다 고통을 호소하는 엄마

ⓒ 이인자

"엄마가 허리가 부러졌어. 병원인데 명절이라 MRI도 못 찍는데, 어떻게 해야 하지?"

AI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곧바로 답을 내놓았다. 우선 침상 안정을 지키고, 발가락을 움직일 수 있는지 살펴보라고 했다. 다리에 저림이 있는지도 확인해 보라고 했다.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질문들이었다.

곧장 여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는 일어나지는 못해도 누운 채 무릎을 구부릴 수 있고, 발가락도 움직인다고 했다. 물론 이런 내용은 응급실 의사도 이미 확인했을 테지만, 현장에 없었던 나에게 AI의 설명은 불안을 가라앉히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되었다.

다음 날 아침, 병실 밖의 세상은 무심할 정도로 명절의 활기로 가득했다. 나는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몸을 단정히 추스르고, 탕국을 끓이고 굴비를 구웠다. 윤기 나게 익어가는 갈비찜, 진한 고깃국 속에서 만두와 떡이 요란하게 끓어올랐다.

열일곱 식구가 모인 거실에는 온기와 웃음이 번졌다. 사람 마음이 참 간사했다. 나도 모르게 그들과 함께 명절을 즐기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곧 마주하게 될 엄마의 고통을 잠시 모르는 척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손님들이 모두 돌아가고, 점심때가 되어서야 병원으로 향했다.

"엄마 나 왔어요."

엄마의 손부터 덥석 잡는데, 말문이 막혔다. 어젯밤 AI는 급한 상황은 아니라고 했지만, 눈앞의 엄마는 예상보다 훨씬 힘들어 보였다. 몸에 매달려 있는 투명한 링거와 노란 소변줄은 바람 부는 날의 전깃줄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밤새 통증과 싸운 엄마의 얼굴은 퉁퉁 부어 있었다. 조금만 몸을 움직여도 얼굴이 일그러졌고, 숨소리마다 고통이 묻어나왔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 내가 있던 집은 웃음과 음식 냄새로 가득했다. 하지만 이곳 2인실 병실 안은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옆 침대에는 명절 전날 고관절이 골절된 또 다른 누군가의 엄마가 신음하고 있었다.

엄마는 무엇보다 불안해했다. 아픈 것도 아픈 거지만, 영영 못 일어날까 봐 무섭다고 했다. 그때마다 내가 수시로 찾은 건 AI였다. 엄마의 현재 상태와 향후 치료 방법에 관한 이야기를 주로 나눴다. AI는 어르신들의 경우 오래 누워 있으면 다른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시멘트 시술'을 고려할 수도 있다고 했다.

AI가 헤아리지 못한 것

언젠가부터 믿기 시작한 AI.

ⓒ gilleslambert on Unsplash

언제부턴가 엄마도 AI를 믿기 시작했다. 용한 무당을 찾듯 무슨 일만 생기면 '걔한테 좀 물어봐'라고 했다. 여기서 '걔'는 AI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다섯 달 전, 엄마의 두통이 '삼차 신경통'일 수 있다는 것도 AI가 짚어냈다. 그때부터였다. 약이 궁금해도, 배가 아파도, 심지어 꿈자리가 뒤숭숭해도 엄마는 먼저 '걔'를 찾았다. 팔순을 앞둔 엄마에게 AI는 어느새 친절한 주치의이자, 때로는 영험한 상담사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이번 사고에 대한 AI와의 대화 내용도 엄마에게 그대로 전달되었다. 고통 속에서도 내가 전하는 말을 한 마디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귀를 기울이셨다. 명절 다음 날, 드디어 MRI 결과가 나왔고 우리는 의사를 만났다. AI는 시멘트 시술 가능성이 높다고 했지만, 의사는 뼈가 붙을 때까지 기다리는 '보존 치료'를 해야한다고 했다. 골절 부위 위아래의 뼈가 이미 많이 약해져 있어 시멘트를 넣으면 오히려 다른 부위가 무너질 수 있다는 이유였다.

AI는 엄마의 다른 뼈들까지 헤아리지 못했다. 어쩌면 다행이었다. 만약 여기까지 AI의 말이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면, 우리는 AI를 훨씬 더 쉽게 믿어버렸을지도 모를 일이니까. 골밀도 검사 결과는 마이너스 2.9였다. 아주 안 좋은 수치라는 말만 들었을 뿐, 그 숫자가 뜻하는 몸의 상태는 선뜻 그려지지 않았다. AI의 설명은 구체적이었다. 이 정도 수치는 물건을 들다가, 앉았다가 일어나다가, 살짝 미끄러지는 일만으로도 골절로 이어질 수 있는 상태라고 했다.

문득 몇 해 전, 믿기 힘들었던 1월 1일 아침 장면이 떠올랐다. 새해 첫날, 아버지는 엄마에게 특별한 인사를 건네고 싶으셨던 모양이다.

"여보, 올해도 우리 행복하게, 재미있게 삽시다."

덕담만으로 끝났다면 좋았을 텐데, 아버지는 엄마를 꼭 안아주셨다. 그 순간, 엄마의 비명이 날카롭게 터졌다. 결과는 갈비뼈 골절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포옹조차 견디지 못할 만큼, 이미 엄마의 뼈는 마른 겨울나무의 잔가지처럼 약해져 있었다.

결국 엄마에게 필요한 건

설 연휴가 끝나고, 다시 주말이 되었다. 아픈 사람에게 시간은 너무 더디게 흘렀다. 고통의 시간은 백일도 더 된 거 같은데 겨우 일주일이 지났다. 엄마는 척추 보조기를 차고 하루에 한 번, 죽을 힘을 다해 몸을 일으켜 화장실에 간다. 몇 걸음 떼는 일조차 큰 결심을 해야 가능한 일이 되어 버렸다.

AI는 뼈가 붙으려면 최소 6주에서 12주는 걸린다고 했다. 12주면 3달이 아닌가. 순간, 그 말이 너무 정이 없게 느껴졌다. AI에게 그 시간은 회복을 설명하는 숫자에 불과하겠지만 엄마에게는 고통을 버텨내야 하는 생의 한 토막이었다. 조금 더 걸을 수 있고, 조금 더 웃을 수 있고, 조금 더 밖을 걷고 싶었던 금쪽 같은 시간이었다.

아무래도 AI에게 그만 물어봐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이제 엄마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정보가 아니라, 마음을 붙잡아 줄 말 한 마디일 것이다. 그 말은 AI보다 엄마의 뱃속에서 나온 내가 더 잘할 수 있을 테니까. 누워있는 엄마를 바라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아직 겨울이라서 참 다행이라고, 봄이 천천히 왔으면 좋겠다고, 봄이 엄마를 기다려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이는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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