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 저도 안 되는 일만 가득하지만 그래도 살아갈 수 있겠다는 희망을 붙들며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요즘 유튜브를 켜면 소띠 2026년 운세를 봐주겠다는 영상들이 난무하였다. 처음에는 깜짝 놀랐다. 내가 소띠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지? 지난날 내가 검색한 알고리즘에 의해 보여지는 영상들이라는 것을 모르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한때는 나도 점집 꽤나 다녔었는데... 총총 잘도 걸어 다니던 때를 회상하면서 소띠 무료운세를 클릭하였다.
울컥했던 소띠 2026년 운세
소띠 2026년 운세는 자다가도 떡이 생기고, 귀인을 만나고 부동산의 문서가 들어오고, 횡재수가 있는 대박의 한 해가 될 것이란다.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기분은 좋았다. 바깥에 나갈 일 없는 내가 어떻게 귀인을 만날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마음이 들떴다. 내친김에 이 영상 저 영상 클릭해서 소띠에게 들려주는 2026년 덕담들을 마음에 담았다.
소처럼 묵묵하고 우직하게 돈 벌어 부모위해 자식위해 가정위해 쓰느라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소띠들이 2026년부터는 그동안 베푼 것들을 거두어들이니, 지금부터는 자신을 위한 삶을 살아라, 하는 대목에서는 어쩐지 마음의 위로도 받았다. 울컥하여 울 뻔도 하였다.
▲
소띠 2026년 운세는 자다가도 떡이 생기고, 귀인을 만나고 부동산의 문서가 들어오고, 횡재수가 있는 대박의 한 해가 될 것이란다.
ⓒ rrodriguesim on Unsplash
'자신을 위한 삶을 살아라, 나로 살아라' 하는 대목에 욕심이 났다. 살아온 삶 전부를 통 털어 희생만 하고 산 것은 아니지만, 돌이켜보면 나 자신만을 돌보면서 살아온 기억은 별로 없다. 너무 어렸을 때 엄마가 집을 나가셨고, 스무 살이 갓 지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엄마가 집을 나간 날부터 나의 고단한 삶은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꾸준하게 한 길만 걸어왔지만 모든 면이 더뎠고 가난한 삶은 좀처럼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으로서 해야 할 노릇이라는 것은 언제나 존재했다. 사람노릇, 자식노릇, 아내노릇 그리고 부모노릇. 내 지갑의 무게와는 아랑곳없이 감당해야 하는 노릇들을 해내느라 때로는 지갑이 너덜거렸다. 때로는 시커먼 작업복을 입고 슬리퍼를 신은 채 점심시간에 돈을 마련하겠다고 회사 부근에 있는 은행들이나 보험회사들을 쫓아다닌 적도 있었다. 자식노릇이 필요할 때였다.
부모노릇을 하면서는 사실 없는 티를 그렇게 내지 않았다. 부모로서 가진 것이 많다 허세를 부리지는 않았지만, 빈털터리라는 말은 해주지 않았다. 차마 그렇게까지는 솔직해지고 싶지 않았다. 어떠한 경우에도, 내가 자식일 때도 아내일 때도 엄마일 때도 나 하나로서 솔직하게 그들 앞에 나를 내세우지 않았구나라는 것을 아프고 난 후 깨달았다. 마음의 병이 내 몸 하나를 망쳤구나 깨달았다.
남편과 나에겐 아직 독립하지 않은 자녀, 즉 캥거루가 둘 있다. 부모로서 어떻게든 힘을 보태줘야 하지 않을까 생각은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본인이 벌어서 시집 장가 가야지는 정말이지 옛말이 되었다. 자녀가 성장하여 결혼을 할 즈음에 부모로서 숨겨놓은 통장 하나쯤 내어주는 일은 비전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일까. 생각하면 마음이 더 답답하다. 지금까지 나는 뭘 했지 자연스레 자책도 든다.
집만을 지키고 싶었다
지금 살고 있는, 대출금 삼십년 상환 기간이 아직 끝나지 않은 집이라도 팔아, 결혼하겠다는 자녀에게 도움을 주고 남편과 나는 시골로 옮겨가는 것이 최상의 해결 방법이라 생각한다. 한창 아파 병원에 누워 있을 때 병치레 하느라 다 쓰고 겨우 남은 우리 집 지킬려고 조기퇴원을 했던 나였다. 하루하루 입원비와 매일매일 추가되는 고가의 치료비가 무서워서. 내가 죽어도 집만은 건들지 말아야 남편과 아이들이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암 수술 후 후유증과 쿠싱증후근, 2곳의 척추골절로 더 이상 회사원으로서의 운명이 다 했다. 출근할 수 없으니, 일어나 움직일 수 없으니 아쉽다는 말 한 마디 못 해보고 사직했었다. 아프지 않았다면 '김부장'처럼 열심히 일하고 차곡차곡 통장을 채웠을 것이다. 남부끄럽지 않게 아이들 결혼 앞에 통장 하나씩 마련하여 건네줄 수 있었을 것이다. 비록 통장 속 잔액이, 점심시간에 내가 뛰어다니며 만들어낸 대출금이라 하더라도 부모 노릇이니 기꺼이 하였을 것이다.
해결해야 할 문제가 생길 때마다, 나는 왜 나의 능력 이상을 발휘하였는가를 두고 생각했다. 단 한 번도 힘들다 말하지 않고 그들이 보기에 척척 문제를 해결하는 나의 행동 밑바탕에 바로 인정 욕구가 숨어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인정받고 칭찬받고 궁극적으로 외면 당하고 싶지 않아서.
엄마가 집을 떠난 날로부터 스무 살 성인이 될 때까지 눈치꾸러기로 살았던 나의 과거가, 훗날 남편을 만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부모가 된 후로도 계속 나의 정서를 지배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능력 밖의 일이라는 것을 말하지 못하고, 힘들다는 말을 하지 못하고 말문을 닫고 우직하게 살아낸 것 같다. 그렇게 살면 인정받을 수 있고 무엇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버려지는 일은 겪지 않아도 되니까. 그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근본적으로는 나를 위해 그토록 열심히 살아왔던 것 같다.
외로움이 질색인 나를 보면 단박에 알 수 있는 일이다.
버려지지 않았으니 살 수 있다
▲
남편이 사준 빗.
ⓒ 김민정
2026년 올해부터는 나만을 위해 살라는 운세의 점사는 틀린 말이다. 알고 봤더니 지금까지 누구보다도 나를 위해 살아온 나다. 오히려 이제는 나만을 위해 살아왔던 기운을 조금씩 내려놓아야 할 태세다.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일자리는 필요하여 이곳저곳 구직시장을 찾아보는 중이지만 쉽지 않다. 가계 수입이 전무하여 우선 급한 마음에 국민연금 조기수령도 알아보았다. 280개월을 납부하였으니, 우선 지금 내가 아프고 경제 활동을 할 수 없으니 조기수령을 해주실 수 없는지 문의 드렸으나 여의치 않았다.
나의 경우, 국민연금 조기수령은 60세가 넘어야 신청이 가능하고 1년씩 앞당길 때마다 연금액이 6%씩 감소하여 최대 5년을 앞당기면 30% 감액 된다고 했다. 선택지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렇듯 지금의 나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살아가기에 많은 부분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이도 저도 안 되는 일들만 가득하다.
그래도 버려지지는 않았으니 살 수 있겠다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림프부종과 쿠싱증후근으로 양쪽다리가 커다랗게 코끼리 다리가 되었었다. 치료방법으로 5겹의 붕대를 아침에는 감고 저녁에는 풀어야 했다. 당시 척추골절로 상체를 아래로 숙이는 일이 불가능하여 나 혼자서는 붕대 치료를 할 수 없었다. 남편이 아침저녁 수개월을 붕대를 감고 풀고 해주었다. 그때 버려지지 않았으니 앞으로도 살아갈 수 있겠다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머리도 없는 나에게 남편이 머리빗을 사주었다. 이번 쿠팡 개인정보유출사고에 대해 지급받은 보상쿠폰으로 엄청나게 비싼 머리빗을 남편이 사주었다. 나는 엉엉 울었다. 아주 오랜만에 펑펑 울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 개인블로그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