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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이 없는 계약서를 아이들에게 읽어주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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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과외 교사가 불안하고 예민한 어린이 다루는 법

초등학생 대상으로 1인 과외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아이들을 관찰하고 가르치며 생기는 소회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기자말>

3월. 새 학기가 시작되면 마음 쓰이는 아이들 몇이 있다. 얼마나 낯설고 불안해할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 녀석들, 내가 낳은 아들도 아닌데 말이다.

"지금 우는 거 안 보여요???!!!"

엄마가 본인에게 허락을 받지 않고 이 수업을 신청했다는 이유로 눈물까지 뚝뚝 흘리는 열 살 남자 아이. 뭐 얼마나 하기가 싫으면 덩치도 큰 애가 이러나 싶어 웃기면서도 한편 "허락"이라는 단어가 귀에 박혔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설마 진짜 우는 거냐고 묻는다는 것이 그만 한쪽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걸 들켰나 보다. 스마트폰을 쥐고 있는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는 것을 보자 아차 싶었다. 순간 지금 이 아이의 세상에서 "갑"은 이 방으로 얘를 밀어 넣은 엄마가 아니라는 사실과 아이의 감정을 내 기준으로 단정 지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본인에게 일어나는 일들은 무조건 엄마와 사전에 협의해야 하는 이 아이에게 이 일은 진짜 "울 일"이었던 것이다. 녀석은 바로 "예민한" 남자아이이다.

내가 본 열 살 남자의 예민함은 이렇다. 이들은 새로운 자극 앞에서 호기심보다는 방어가 우선이다. 이들이 어떤 일을 "알고 보니 별것 아닌 일"로 받아들이려면 특별한 방법이 필요하다. 이들에게 낯선 선생님은 싫고 좋고의 문제가 아닌, 본인들에게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불안한 존재'인 것이다.

감정의 디폴트가 일단 '불안'이니 수업 태도가 좋을 리 만무하다. 버릇 없는 말투는 기본이고 공격적이거나 오히려 반대로 무반응으로 일관하기도 하며, 때로는 폭력적인 행동까지 서슴지 않는다. 이럴 때 내 과제는 이 아이가 수업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도록 만들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다. 꽉 쥔 주먹에 들어간 힘을 풀고 몸을 흐물흐물하게 만들어 주는 것. 그것이 내 첫 번째 목표이다.

내가 도입한 것은 상벌제도이다. 시시한가? 하지만 이 아이들이 열 살 남자라는 것을 잊지 말자. 이들을 움직이게 하는 것에는 '보상'과 '페널티' 만한 것도 없다. 하지만 칭찬 스티커 붙이기 정도로는 안 된다는 소리이기도 하다. 스티커 판보다는 좀 더 본격적이고 강력해 보이는 것을 준비해야 한다. 바로 계약서다(물론 아이를 맡겨 주시는 학부모님들도 아는 계약서다).

'을'이 없는 계약서

ⓒ 김은혜

나는 '을'이 없는 계약서를 천천히 읽기 시작한다. 한 자 한 자 짚어가며 용어 설명도 곁들여 준다. 혹시라도 내키지 않는 조항이 있다면 서로 합의도 한다. 아이들은 A4 용지 한 장을 다 읽도록 입을 꾹 다물고 눈으로 글을 따라가며 간혹 명확하지 않은 부분에서는 질문도 한다. 이 종이 한 장으로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계약서의 구체성은 아이들마다 조금 차이가 있다. 폭력적인 행동을 하는 아이의 계약서에는 절대 해서는 안 되는 행동에 대해서 가능한 상세히 기술하고, 페널티도 강하다. 대신 규칙을 잘 지켰을 때 받을 수 있는 보상 시스템은 체계적인 편이 좋다. 물론 페널티와 보상을 아이와 함께 의논하여 정하면 효과는 더 좋지만 이것 역시 아이의 성향마다 조금 다를 것 같다.

상호 간에 최종적으로 합의가 되면 각자 날인을 하고 정식으로 악수를 하면 된다. 눈을 마주치고 잘해보자는 말도 꼭 곁들인다.

이제 남은 것은 계약의 '이행'. 나는 계약서에 명시된 대로만 수업을 하고, '갑1'이 계약 당사자로서의 의무를 다하면 권리를 행사하도록 협조하는 것이다. 체결된 계약서 하 몇 회의 수업을 진행하다 보면 계약서 상에 명기된 로블록스 '한 판'을 하는데 십 분을 모두 쓰지 않아도 알아서 게임을 종료하고, 어떤 날은 이런 말로 나를 놀라게까지 한다.

"오늘 게임 안 해도 괜찮아요~"

주의사항은 약속한 보상은 반드시 이행하고, 페널티도 예외 없이 가해야 하는 것이다. 아이에게 규칙 준수에 대한 혼동을 줘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수업을 너무 잘 했을 때는 보너스 상품을 준비하느라 허리가 휜다. 또 진심으로 나쁜 의도를 가지고 한 행동이 아니라 정말 실수인 것이 느껴지면 못 본 척하기도 한다.

사슴벌레 피규어

ⓒ 김은혜

사실 '갑2'의 의무에 대하여 숨은 조항이 하나 있다. 수업 시작 전 반드시 오늘은 무엇을 배울지 몇 가지 보기를 제시하고, 그중에서 아이가 직접 선택하게 하는 것이다. 생각 외로 아이들은 스스로 선택한 것, 스스로 내뱉은 말에 대하여 책임을 다하고 번복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수업은 본인이 허락한 대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학습은 타인의 의지로 될 일이 절대 아니다. 이런 계약서를 하나하나 쓰고 있을 때면 이게 맞나 싶기도 하다. 나야말로 지금 억지로 시키는 꼴과 다름없는 것 아닌가 하는 자기검열에 빠진다. 하지만 나로부터 무언가를 배우기 이전에 아이가 안정감을 느껴야 하고, 우리 사이가 원만해야 한다는 것은 단연코 우선시 되어야 하는 점이다.

예민한 아이들과 신뢰를 쌓는 방법이 다른 아이들과는 조금 별난 것뿐이다. 불안으로 가득 찬 애를 옆에 앉혀 놔봤자 모래 위의 성과 다르지 않다. 지나치더라도 골조 공사를 하는 데에 시간을 좀 더 투자하는 편이 낫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보면 선물 받기 위해 읽은 책이 나의 최애 도서가 되고, 소중한 것을 빼앗기기 싫어서 지키던 조항으로 나쁜 버릇이 어느새 감쪽같이 사라져 있기도 하는데 그깟 계약서 하나쯤이야 뭐 대수겠냐는 것이다.

녀석들의 예민함 수치가 다시 치솟고 있는 것은 아닌가 모르겠다. 그렇지 않아도 교우관계가 썩 원만하지 않은 '갑1' 중 하나는 하필 학교까지 바뀌었다. 한동안 잠잠한가 싶더니 지난 시간에는 수업을 하네 마네 한바탕 푸닥거리를 늘어놓았다. 불안이 조금씩 싹트면 내 수업에도 고스란히 가지고 들어온다. 그럼 나는 또 모르는 척 "갑1님~ 왜 오늘 무슨 일 있었어? 기분 안 좋아 보이네?" 하며 먼지 앉은 계약서를 슬그머니 꺼내 들이밀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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