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수 작가 <민달팽이분투기> 북토크에서 짚어본 한국 사회의 주거권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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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서울 관악구 '밝은책방'에서 주거권 활동가이자 전 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인 지수(본명 김솔아) 작가의 책 <민달팽이분투기> 출간을 기념하는 북토크가 열렸다. <민달팽이분투기>의 모습.
ⓒ 공익저널 차종관
누군가에게 집은 든든한 자산이자 노후를 위한 투자처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매일 내쫓길까 불안에 떨어야 하는 위태로운 공간이다. 지난 4일 서울 관악구 '밝은책방'에서는 주거권의 진정한 의미를 묻는 북토크가 열렸다. 주거권 활동가이자 전 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인 지수 작가의 책 <민달팽이분투기> 출간을 기념하는 자리였다.
이날 행사는 저자인 지수 작가가 직접 사회를 보며 대화를 이끄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야기 손님으로는 서동규 현 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 이철빈 전국전세사기깡통전세피해자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 최시현 연세대 국학연구원 학술연구교수가 참석했다. 패널들은 전세사기라는 사회적 재난부터 청년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임장(부동산 현장 답사)' 문화, 주거 정책의 기만과 대안적 주거 공동체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가 직면한 '집'의 민낯을 가감 없이 파헤쳤다.
기만으로 얼룩진 전세사기
지수 작가는 2022년부터 전국을 강타한 전세사기 사태를 떠올리며 발언을 시작했다. 그는 책에 미처 담지 못한 한 전세사기 피해 청년의 이야기를 꺼냈다. 종일 열악한 집만 보러 다니던 청년은 중개사의 제안으로 서울 강서구에 있는, 모델하우스처럼 모든 것이 완벽하게 꾸며진 신축 빌라를 보게 됐다. 중개사는 커피를 사주고 계약서를 꼼꼼히 설명해 주며 계약을 성사시켰다. 중개사는 "당신은 좋은 집을 구하고, 나는 집에 가서 아내에게 제육볶음을 해달라고 할 수 있다"고 말하며 청년에게 티라미수 케이크까지 선물했다.
하지만 그 친절은 완벽한 기만이었다. 지수 작가는 "제육볶음을 사준다는 건 '땡 잡았다, 건수 잡았다'는 뜻이었고, 티라미수는 그저 가림막에 불과했다"고 전했다. 사기 피해를 인지한 후, 피해자는 냉장고 안의 티라미수를 버리지도 못한 채 몇 달을 방치했다고 한다. 지수 작가는 "냉장고에서 티라미수가 썩어가고 곰팡이 냄새가 나는 그 시간들이, 마치 피해자의 마음이 썩어가는 시간과 같았다"며 보증금 액수로는 환산할 수 없는 일상의 파괴를 전했다.
4년째 경매를 이어오고 있는 전세사기 피해자인 이철빈 위원장은 대책위 활동의 동력을 '절박함'과 '연대'에서 찾았다. 그는 2023년 봄, 경매로 쫓겨날 위기에 처한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연이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비극적인 상황을 회고했다. 이 위원장은 "일주일 전까지 옆에서 피켓을 들던 동료가 세상을 떠나는 것을 보며, 나도 저렇게 비참한 상황에서 죽음을 선택할 수 있겠다는 절박함이 모두를 뛰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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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서울 관악구 '밝은책방'에서 주거권 활동가이자 전 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인 지수 작가의 책 <민달팽이분투기> 출간을 기념하는 북토크가 열렸다. 좌측부터 최시현 연세대 국학연구원 학술연구교수, 서동규 현 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 이철빈 전국전세사기깡통전세피해자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 지수 작가의 모습.
ⓒ 공익저널 차종관
피해자들은 서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대했고, 그 힘으로 전례 없던 경매 유예와 특별법 제정이라는 변화를 이끌어냈다. 하지만 국가를 향한 투쟁은 순탄치 않았다. 지수 작가는 수만 명의 서명을 모아 종이 박스에 담아 국회로 전달하러 갔을 때, 경찰에 의해 스크럼이 뚫리고 피해자들이 한 명씩 '무 뽑히듯' 강제로 들려 나갔던 순간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전세사기의 참상을 목도한 일부 청년들은 각자도생을 위해 이른바 '임장(부동산 현장 답사)'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청년 부동산 임장 실천을 직접 현장 연구한 최시현 교수는 청년들이 임장에 나서는 이유를 '안도감의 획득'으로 분석했다.
최 교수는 "전세사기라는 큰 사건을 겪으며 전세는 위험한 것이 되었고, 내 것을 소유하지 않으면 덫에 걸릴 수 있다는 상상이 청년들을 임장으로 이끌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동규 위원장은 최시현 교수의 논문에 등장하는 개념을 인용하며, 이러한 청년들의 임장 실천이 결국 '잔인한 낙관'에 불과하다고 봤다.
주택 공공성 확보가 절실한 이유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투기적 부동산 시장의 논리에 편승하지만, 결국 주택 가격을 더 높여 자신과 또래 세대의 주거 현실을 더욱 위태롭게 만드는 모순에 빠진다는 것이다. 투기적 욕망은 비극의 현장에서도 잔인한 민낯을 드러냈다. 지수 작가는 "전세사기 피해 주택이 경매에 넘어가면, 투자 을 노리는 경매꾼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찾아와 문을 두드린다"고 전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소셜 미디어의 수많은 부동산 재테크 인플루언서들이 구독자들을 가르치는 태도다. 그들은 "명도를 잘 받는 법을 알려드립니다. 첫째, 젠틀하게 인사하세요"라며 세입자를 쫓아내는 행위를 마찰 없이 처리해야 할 매뉴얼로 포장한다. 누군가의 삶과 일상이 완전히 파괴된 공간을 그저 '을 남길 상품'으로 취급하며, 피해자를 치워버려야 할 방해물로 여기는 폭력성이 '젠틀함'이라는 이름으로 둔갑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난 10여 년간 쏟아져 나온 '청년 주거 정책'은 왜 이들을 보호하지 못했을까. 패널들은 기존 정책들이 청년이라는 '포장지'만 씌웠을 뿐, 빚을 권장하고 부동산 경기를 부양하는 체제를 유지했다고 입을 모았다.
이철빈 위원장은 "국가가 권장한 청년 전세대출을 받았고 돈은 임대인에게 바로 꽂혔는데, 사기를 당하자 그 빚은 고스란히 내 채무로 남았다"고 토로했다. 방만한 보증보험 운영과 임대사업자에 대한 맹목적인 세제 혜택이 청년들을 투기꾼들의 총알받이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한 현장 참여자의 질문은 정책의 기만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고시텔에 거주한다는 한 참여자는 "지옥고(반지하·옥탑방·고시원)라 불리던 고시원이 최근 리모델링을 거쳐 비싼 '고시텔'로 청년들에게 제공되고 있는데, 이런 공간이 과연 주거권에 부합하는가"라고 물었다. 지수 작가는 이에 공공임대 정책의 뼈아픈 퇴행을 꼬집으며 "'청년'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오는 주택들은 만들어지면서 면적이 14.1제곱미터로 확 줄어드는 퇴행이 발생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한 암스테르담이나 빈의 사례처럼 주택의 공공성을 확보하는 보편적인 매입 임대 주택의 확대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공동체의 안심을 복원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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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서울 관악구 '밝은책방'에서 주거권 활동가이자 전 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인 지수 작가의 책 <민달팽이분투기> 출간을 기념하는 북토크가 열렸다. 참가자들이 지수 작가가 직접 북토크를 위해 만든 미니북과 <민달팽이분투기>를 살펴보고 있는 모습.
ⓒ 공익저널 차종관
이 절망적인 주거 현실에서 우리는 어떤 대안을 상상할 수 있을까. 최시현 교수는 개별적인 자산 축적이 아닌 '공동체의 안심'을 복원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최 교수는 "주거 문제는 주거 하나로 풀리지 않으며, 노동, 소득, 복지와 전면적으로 연결되어야 한다"면서 "집에 대한 상상력을 투기적 부동산에서 '시간과 관계'로 옮겨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동네에 오래 머물며 단골 가게를 만들고 이웃과 인사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할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안심 체제가 구축된다는 것이다.
지수 작가는 이를 실천하기 위한 흥미로운 시도로 자신이 참여 중인 '예비 할머니 모임'을 소개했다. 정상 가족 체제 밖에서 늙어갈 비혼 여성, 프리랜서 등 다양한 정체성의 청년들이 모여, 투기적 부동산 시장 밖에서 어떻게 정주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모임이다. 이들은 20년 넘게 공공임대 아파트 단지 안에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비혼 여성 공동체를 탐방하며, 집의 소유를 넘어선 '마을 단위의 돌봄과 커뮤니티'라는 대안을 그려나가고 있다.
일상 속 작은 실천들도 공유됐다. 이철빈 위원장은 LH가 자신이 살던 피해 주택을 매입하여 당분간 쫓겨날 걱정이 사라지자, 그제야 따릉이(서울시 공유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돌아보며 지역에 정을 붙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서동규 위원장 역시 자신이 사는 다세대 주택에 매년 찾아오는 제비들의 집이 강제 철거 당하는 것을 보며 "세입자와 다를 바 없는 처지의 제비를 지키기 위해 동네 '제비 돌봄 모임'을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서동규 위원장은 또한 "각 자치구가 등록 임대주택과 공인중개사에 대한 철저한 관리·감독 권한을 행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광역단체 차원에서 조례를 통해 주택 임대료 인상률의 상한을 통제하는 방안도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민달팽이유니온과 전세사기 대책위는 다가오는 지방선거에서 전세사기 피해자 등 세입자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모아 후보들에게 전달할 계획이다.
지수 작가는 뉴욕시의 임대료 동결 사례를 언급하며 "세입자들이 한 동네에 오래 살며 정주 시간을 확보해야만 지역의 민주주의에 개입할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2년마다 이리저리 쫓겨 다녀야 하는 상황에서는 동네의 변화나 공동체를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가 가진 다양한 정체성 중 '세입자'이자 '주거권 옹호자'로서의 정체성을 일상에서 정치화할 때,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낼 힘이 생긴다"고 호소했다.
북토크 현장을 찾은 한 참가자는 "자산 증식의 수단으로 전락한 '집'의 의미를 돌아보고, 쫓겨나지 않을 권리 그리고 이웃과 연대할 수 있는 토대로서의 '주거권'을 어떻게 되찾을 것인가를 고민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참가자는 "모두가 부동산 임장과 투기에 몰두하지만,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건 나와 내 이웃이 쫓겨나지 않고 안전하게 나이 들 수 있는 '공동체의 안심'임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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