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등록문화유산으로 최종 등록된 신암양조장 김윤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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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예산군 신암면 종경리. 내포신도시의 화려한 불빛에서 조금 떨어진 이곳에, 시간이 퇴적된 듯한 공간이 있다. 나지막한 지붕 아래로 구수하고 알싸한 누룩 향이 배어 나오는 곳, 바로 '신암양조장'이다.
1930년대 건립돼 한 세기 가까운 세월 동안 예산 사람들의 고단함을 달래주던 이곳이 최근 충청남도 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며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스무살 청년 시절부터 55년 동안 오로지 술 빚는 일에 인생을 바친 김윤도(75) 대표의 발자취를 따라, 신암양조장이 품은 백 년의 세월과 그 속에 담긴 민중의 삶을 기록한다.
신암양조장은 건축학적으로나 역사적으로 매우 귀중한 자산이다. 기록에 따르면 신암양조장의 전신인 예산양조주식회사가 이 부지를 취득한 것이 1933년쯤이다. 일제강점기 행정구역 개편과 장항선 신례원역의 개통으로 교통의 요지가 된 종경리는 면사무소와 학교, 경찰지서가 들어선 번화가였고, 양조장은 그 중심에서 지역 경제의 한 축을 담당했다.
현재 남아있는 양조장 건물은 한일절충식 목조구조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일본식 건축 양식에 한국적 쓰임새가 더해진 독특한 구조는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한다. 1958년 중수된 사실을 알리는 상량문은 이 건물이 단순한 작업장이 아니라, 전란과 가난을 버텨온 생생한 증거임을 증명한다.
양조장 내부에는 소화(昭和) 연호가 새겨진 거대한 술항아리 7개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백 년 전 누군가의 손길이 닿았을 그 항아리들은 지금도 여전히 술이 익어가는 서늘한 기운을 품고 있다.
스무살 청년, 양조장과 운명적 만남을 갖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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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도 대표가 신암막걸리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그 웃음 속에는 고단했던 노동의 흔적보다, 자신이 만든 술 한 잔에 행복해했을 사람들을 떠올리는 장인의 자부심이 가득했다.
ⓒ <무한정보> 황동환
신암양조장의 현대사는 김윤도 대표의 인생 그 자체다. 1970년대 초, 군 입대 전 스무 살의 나이로 이곳에 발을 들인 그는 55년째 양조장을 떠나지 않았다. 그는 "군대 가기 전인 70년대 초반부터 여기서 일했다. 1973년도에 군대에 갔는데, 제대하고 나서도 다시 이리로 왔다"며 "그때부터 지금까지 55년이다. 내 청춘과 인생이 이 항아리 속에 다 들어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술회했다.
김 대표가 처음 일을 시작했을 당시, 신암양조장은 면 단위에서 가장 부유한 곳 중 하나였다. 당시에는 탁주(막걸리)뿐만 아니라 병약주와 소주까지 생산하는 규모 있는 양조장이었다. 충남 전체에서도 세 종류의 술을 모두 만드는 곳은 드물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만든 약주는 서울 영등포 시장까지 팔려 나갔고, 증류식 소주는 예산군 전체와 대전까지 보급될 정도로 명성이 높았다.
김 대표는 과거의 생산 방식을 생생히 기억한다. 지금은 사라진 풍경이지만, 1960~1970년대만 해도 소주를 내리기 위해 옹기로 된 '다루술' 장비를 사용했다. 쌀이 귀하던 시절에도 이곳에선 쌀로 증류식 소주를 빚었다.
옹기솥과 미루나무 상자 원형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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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조장의 역사를 고스란히 품은 100년 된 술항아리들. 항아리 마다 술을 담은 일자를 적어 발효 기간을 관리했다.
ⓒ <무한정보> 황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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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은 족히 넘은 나무 상자. 이 나무 상자는 농축 효모를 담는 용도로 쓰였다.
ⓒ <무한정보> 황동환
김 대표는 "옛날에는 소주를 담을 때 기계가 어디 있었겠나"라며 "다들 쭉 앉아 가지고 큰 단지에 담긴 술을 깔때기로 병에다 일일이 부었다. 상표도 밀가루 풀을 쑤어서 직접 붙였고, 병이 깨질까 봐 미루나무로 만든 상자에 짚을 깔고 소주병을 40병씩 넣어서 포장했다. 가을이면 그 포장용 짚을 사다가 양조장 앞에 산더미처럼 쌓아놓곤 했다"고 당시 고단했던 작업 환경을 전했다.
양조장 한편에는 100년이 넘은 '입국 상자'들이 세월의 먼지를 뒤집어쓴 채 보관돼 있다. 나무로 정교하게 짜인 이 상자들은 고두밥을 쪄서 누룩균을 번식시키던 도구다. 비록 지금은 현대적인 장비에 자리를 내주었지만, 김 대표는 이 낡은 상자들을 차마 버리지 못한다. 그 안에는 기계가 대신할 수 없는 '손맛'과 '정성'의 기억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막걸리는 흔히 '기다림의 미학'이라 불린다. 신암양조장의 하루는 새벽 일찍 쌀을 씻고 고두밥을 찌는 것에서 시작된다. 김 대표에게 술 빚는 일은 단순히 생계를 위한 노동이 아니었다. 발효실의 온도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술이 익어가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과정은 마치 아이를 돌보는 정성과 같았다.
그는 "여름에는 너무 뜨거우면 술이 넘치고, 겨울에는 너무 차가우면 술이 안 돼. 잠결에도 발효실 온도 걱정에 양조장으로 뛰어오던 시절이 있었다"라며 "술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내가 게으름을 피우면 술맛이 먼저 알고, 정성을 들이면 술맛이 깊어지는 법이다"라고 강조했다.
그의 손에는 55년 세월의 굳은살이 박혀 있다. 쌀 포대를 나르고 거대한 항아리를 닦으며 보낸 시간들이 그의 주름진 얼굴에 훈장처럼 남아 있다. 대규모 공장에서 생산되는 막걸리가 시장을 점령한 오늘날에도, 김 대표가 빚는 신암막걸리가 지역민들에게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는 그 투박한 정직함에 있을 것이다.
시대가 변하며 양조 환경도 달라졌다. 15~16년 전까지만 해도 양조장 인근의 지하수를 길어 술을 빚었으나, 수질 관리와 안전을 위해 현재는 광역상수도를 사용한다. 하지만 술을 빚는 원칙만큼은 변함이 없다. 좋은 쌀을 고르고, 적정 온도를 유지하며, 효모가 가장 건강하게 숨 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일은 김 대표의 철저한 관리하에 이뤄진다.
등록문화유산 지정 새로운 백 년을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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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암양조장 전경.
ⓒ <무한정보> 황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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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년을 버틴 한일절충식 목조구조 건물의 지붕 트러스 구조.
ⓒ <무한정보> 황동환
양조장 내부의 사무실 벽면에는 빛바랜 장부들과 옛 서류들이 가득하다. 디지털 시대라지만, 김 대표는 여전히 손때 묻은 기록들을 소중히 여긴다. 그 기록들은 신암양조장이 단순한 술 공장이 아니라, 지역 사회와 함께 호흡하며 성장해온 역사서이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술을 배달하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비포장도로를 달렸고, 나중에는 경운기와 트럭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수단은 변했어도 술통을 건네며 나누던 예산 사람들의 정은 변하지 않았다. 모내기철 새참으로, 잔칫날의 흥을 돋우는 음료로, 혹은 상갓집의 슬픔을 달래주는 위로로 신암양조장의 술은 예산 사람들의 소비와 물질에서 벗어나는 탈생산과 함께했다.
지난 2월 10일, 예산군은 신암양조장이 충청남도 등록문화유산으로 최종 등록됐다고 발표했다. 일제강점기 건물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으며, 당시의 주조 도구와 상량문 등 역사적 가치가 충분하다는 평가를 받은 결과다. 이번 문화유산 등록은 김 대표에게도 남다른 의미다. 평생을 바쳐 지켜온 일터가 국가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소중한 유산으로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막 걸러낸 술'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 '막걸리'다. 여기에 더해 신암양조장의 막걸리는 투박하지만 진하다.
"우리 술이 대도시의 유명한 술은 아닐지 몰라도, 예산 사람들에게는 고향의 맛이자 자부심이다. 문화유산이 됐다고 하니 감개무량하다. 내 몸이 허락하는 한, 이 오래된 항아리에서 술 익는 냄새가 끊이지 않게 하고 싶다."
55년 세월을 견딘 장인의 고집과 100년 세월을 견딘 건물의 무게가 실린 말이다.
이제 신암양조장은 단순히 술을 만드는 공간을 넘어, 예산의 근대사와 서민들의 삶을 잇는 문화적 가교로서 새로운 백 년을 준비하고 있다. 역사란 박물관의 유리창 너머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신암양조장처럼 여전히 땀 흘려 일하는 사람이 있고, 그곳에서 생산된 물건이 사람들의 일상에 녹아 있을 때 역사는 생명력을 얻는다.
충남도와 예산군은 이번 지정을 계기로 신암양조장의 보존과 활용 방안을 모색할 계획이다. 전통 양조 과정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거나, 근대 건축물의 가치를 조명하는 투어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 다양한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김 대표는 오늘도 양조장의 낡은 문을 연다. 100년 된 항아리 안에서는 오늘도 미생물들이 살아 움직이며 술을 빚고 있다. 그 소리는 과거로부터 전해오는 안부이자, 앞으로 올 백 년을 향한 약속이다. 예산의 들녘이 황금빛으로 물들 때쯤, 신암양조장의 술항아리에서는 다시금 생명력 넘치는 보글거리는 소리가 들려올 것이다. 그 소리가 멈추지 않는 한, 신암양조장의 전설은 계속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충남 예산군에서 발행되는 <무한정보>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