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동결건조 시키고 싶다"는 '사랑한다'는 말의 다른 표현들을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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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글이 술술 써지고 있었다. 초집중상태였다. 고속도로를 달리듯 문장들이 쭉쭉 이어졌고 감정선이 가지를 뻗으며 얽혀 들어갔다. 타이핑 속도가 점점 올라갔다. 그 때였다.
"엄마!"
'끼익-' 브레이크를 밟았다. 근데 아차, 한 박자 밀렸다. 계기판에 ABS경고등이 켜진 느낌이었다. 문장들이 공중에서 흩어졌다.
"...응?"
▲ 동결건조
캘리그라피 요즘 인터넷상에서 유행하는 동결건조밈을 귀엽게 그린 캘리그라피. 사용 허락을 받았다.
ⓒ 인스타그램 calli._.jang
대답은 했는데 딸이 무슨 말을 하고 있었는지 기억이 안 났다. 아니, 기억은 나는데 아직 뇌가 로딩중이었다. 그걸 귀신같이 눈치 챈 딸이 내 무릎에 엎드려 오열하는 척을 한다. 왜 이제 멀티태스킹이 안 되냐며, 한쪽 발로 동생 요람을 흔들면서 동시에 떡볶이도 만들어주던 엄마는 어디로 간 거냐며, 22살이나 된 다 큰딸이 투정을 부렸다.
"엄마, 늙지 마! 나랑 오래오래 살아. 엄마 동결건조 시키고 싶어!"
동결건조라니. 며칠 사이 두 번째다. 딸로부터 동결건조 시켜버리겠다는 협박 아닌 협박을 들었다. '동결'은 그렇다 치자. 나이 드니 피부가 건조해져 콜라겐 팩 얹어놓고 빨래 개는 사람한테 '건조'를 시키다니! 이게 무슨 유수분 밸런스 깨지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인가!
알고 보니 요즘 유행하는 밈이란다. 예전 같지 않은 엄마가 속상해서 더 이상 늙지 말고 그대로 있어달라는 뜻이라고 한다. 요즘은 애정 표현도 SNS를 통해 배운다. 댓글창엔 '수분 있는 엄마로 살고 싶다', 혹은 '아빠와 함께 동결건조는 안 된다' 등 유머가 가득 찼다. 그땐 피식 웃고 넘겼다.
캐리어에 반찬 가득 싣고 온 엄마
▲ 엄마의 반찬들
엄마의 반찬은 양이 적은 적이 없다. 언제나 큰 통에 꽉꽉 채운다.
ⓒ 손미희
다음 날 친정엄마가 오랜만에 서울에 올라왔다. 엄마는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기차에서 내렸다. 나는 그 안에 엄마 옷이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무거웠다. 엄마가 뿌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여기 시래깃국 얼린 거랑 밑반찬 가득 들어있대이."
79세의 엄마가 고속열차 선반에 이 가방을 혼자 올렸을 리가 없다. 꽝꽝 언 국 때문에 가방은 돌덩이처럼 무거웠다. 엄마는 지나가는 젊은이에게 부탁을 했단다. 분명 내 입에서 "고마워"가 나가야 할 타이밍인데 잔소리가 먼저 튀어나왔다.
"내가 밥 못 해 먹을까 봐 이렇게 싸왔나? 내 나이가 얼만데. 뭐 하러 이라노. 무릎 또 아프면 우짤라고."
내 감정은 분명 감사였는데, 말은 타박부터 나왔다. 나는 늘 엄마를 공경하고 싶은데 공격을 먼저 한다. 가만 보니 아파서인지 살짝 절고 있는 다리도 그렇고, 시래깃국을 싸느라 바빴는지 예쁜 옷도 못 챙겨 입고 빨간 줄무늬 티셔츠를 입고 온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가방 속에 갈아입을 옷을 넣을 공간도 안 남았다며 엄마는 웃었다.
작년에 아빠를 보내고 혼자가 된 엄마에게 시간은 더 많아졌을 텐데, 딸에게 올 준비 하느라 스스로를 챙길 시간은 없었나보다. 딸은 나를 동결건조하겠다는데, 나는 엄마의 어떤 모습을 얼려야 하나. 착잡했다.
하긴. 엄마는 늘 그랬다. 자연쌍꺼풀이 짙게 얹어진 커다란 눈에 백옥 같은 피부, 큰 키에 예쁜 미소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외모를 전혀 꾸미지 않았다. 시장에서 장사하고, 아이들을 키우고, 집안 살림까지 살려면 얼굴에 분을 바르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금반지나 목걸이는 관심도 없었다. 출근하면 가게에 파는 아무 옷이나 걸쳐 입었다. 그래도 모델이 좋아서인지, 엄마가 입고 있는 옷은 늘 손님들이 예쁘다며 사가곤 했다. 밤이 되면 엄마는 앉은뱅이 상을 펴 놓고 장부를 정리하다가 꾸벅꾸벅 졸다 잠이 들었다.
장사가 잘 될수록 엄마는 더 바빠졌고 나는 심통이 났다. 나만 바라봐줬으면 했다. 그럴 때면 주판을 튕기며 장부 정리에 바쁜 엄마 옆에 앉아서 그날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미주알고주알 늘어놓았다. 엄마는 "응...응.." 하며 숫자를 맞추다가 헷갈려 다시 주판을 갈랐다. 그 옆에서 나는 시험하듯 문제를 냈다. "엄마. 방금 내가 누구 이야기했지?" "응? 주..연이?"
지연이였다. 나는 엄마의 멀티태스킹 실패를 사랑 부족으로 단정지었다. 이름 하나 틀렸다고 엄마를 쪼아댔다. 왜 나한테 관심이 없냐며 소란을 피웠다. 그럴 때면 엄마는 귀엽다는 듯 나를 보고 웃었다. 나는 엄마의 사랑을 시험하는 철없는 딸이었다.
이제는 반대가 됐다. 내 딸이 내게 왜 멀티를 못하냐며 아쉬워한다. 그날도 나는 저녁 한 끼를 차리면서 멀티가 안 돼서 냉장고를 몇 번이나 열고 정신없이 재료를 찾았고, 쿵쿵 소리를 내고 부산을 떨었다.
꽝꽝 얼리고 싶은 다정한 순간들
다음날 엄마를 두고 잠시 외출할 일이 생겼다. 엄마를 두고 나간다는 게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때 구원투수가 등장했다. 큰딸이 외할머니와 시간을 보내겠다고 나섰다. 외할머니랑 재미있게 놀고 올 테니 엄마는 다녀오란다.
딸은 외할머니와 인생네컷을 찍었다. 요즘 유행하는 하트 포즈도 가르쳐주고 리본 머리띠도 씌워줬다. 엄마의 빨간 줄무늬 옷은 리본 머리띠와 잘 어울렸다. 그 옷 안 입고 왔으면 큰일 날 뻔 했다. 때마침 따뜻한 날이어서 같이 석촌호수를 걷고, 롯데월드도 구경했다. 목이 말라 망고주스도 사마셨다. 외할머니는 손녀 운동화와 옷을 사줬고, 손녀는 아르바이트비로 사진 값을 계산했다.
▲ 외할머니와 손녀의 인생네컷
손녀를 따라하는 할머니가 귀엽다. 이날 엄마는 이제 더이상 소원이 없다며 행복해했다.
ⓒ 손미희
사진 속 엄마는 활짝 웃고 있었다. 장부 정리를 하며 나를 보던 그 졸린 웃음과 닮았지만, 어딘가 달랐다. 엄마는 처음으로 놀러 나온 소녀처럼 웃고 있었다. 나를 키우느라 숨겨두었던 엄마의 젊음이 되살아났다. 엄마는 나도 본 적 없는 젊음을 만끽하고 있었다. 속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와 내 코끝을 쳤다. 미안했다. 이제라도 엄마의 이 웃음을 오래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림을 하다보면 웬만한 건 다 얼릴 수 있다. 밥도, 국도, 떡도 냉동했다가 해동하면 원래의 맛 그대로 즐길 수 있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얼릴 수 없는 게 있다. 사람의 감정이나 마음, 시간 같은 것들이다. 우리는 그것들을 다른 방식으로 보관한다.
엄마는 반찬으로 나에 대한 사랑을 얼렸다. 엄마가 꽝꽝 얼려온 시래깃국은 그냥 반찬이 아니었다. 몸이 자주 아픈 딸이 어떻게든 쉽게 끼니를 때우게 하려는 마음이었다. 그 마음이 한 방울도 새지 않도록, 엄마는 비닐에 싸고 또 쌌다, 두툼한 손으로 입구를 돌돌 말고 여몄다. 그리고 몇 날 며칠을 얼렸다. 그 마음은 돌덩이가 되어 캐리어 제일 밑에 들어갔다. 그 위로 온갖 밑반찬들이 벽돌 쌓기 하듯 빈 공간 없이 가방 속을 채웠다.
사람이 어떻게 동결건조 될 수 있으랴. 하지만 가능한 순간들이 있다. 요며칠 내가 목격한 것들이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