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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앓이'는 영월로, '흥도앓이'는 여기로 가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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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왕과 사는 남자> 엄흥도 후손이 사는 경북 문경 '우마이 마을'에 가다

▲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스틸컷

ⓒ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스틸컷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주인공 '엄흥도'. 그의 후손의 집성촌이 경북 문경에 있다는 남편 말에 길을 나섰다. 예천에서 근무하게 된 남편이 문경에 숙소를 정한 터라 30분 정도면 갈 수 있는 거리다.

문경시 산양면 위만 1리, 문경과 예천 경계에 있는 '우마이 마을(옛 이름)'이 그곳이다. 삼족을 멸하겠다는 어명에도 굴하지 않고 단종의 시신을 수습한 영월 호장 엄흥도 후손들의 마을로, 466년의 시간을 이어 현재 70여 가구가 사는 곳이다. 엄흥도를 기리는 사당 '충절사'와 향사가 진행되는 '상의재'에 가보기 위해 지난 1일, 우마이 마을로 출발했다.

지금 한국은 '단종앓이' 중이다. <왕과 사는 남자>가 인기를 끌며 덩달아 단종의 유배지 영월 청령포가 관광객들로 북적인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10년 전 다녀온 청령포는 잘 벼린 칼빛처럼 시렸다. 찬란한 햇빛 아래 거뭇한 줄기를 그어댄 소나무 그림자가 마치 단종의 볼에 흐르는 억울한 눈물 같아 애잔했다. 단종의 복위를 바라며 소나무마저 어소와 한양을 향해 굽어 자랐다는 해설사의 설명도 어렴풋이 떠오른다. 그에 비해 우마이 마을은 북적임 없이 고요했다.

시계탑에 노루를 조각한 이유

문경시 산양면 우마이 마을 '엄흥도테마소공원'에 설치된 시계탑. 단종의 비극과 엄흥도의 의리가 담긴 조형물

ⓒ 오순미

마을 초입에 이르자 '엄흥도테마소공원'이 조성돼 있었다. 충의공(시호) 엄흥도의 동상과 시계탑, 쉴 만한 정자, 사육신과 생육신의 업적을 기린 목판을 세워 방문객이 그들의 행적과 결의를 살필 수 있도록 구성한 소공원이었다.

정자엔 후손들이 따뜻한 차를 준비해 두었다. 감사한 마음으로 차를 마시며 사육신·생육신의 기록을 훑어보다 시계탑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단종의 비극과 엄흥도의 충의가 고스란히 담긴 상징물이어서 한참 들여다보았다.

이 시계탑은 6각의 기단(승하 시각 6시)과 원형탑 24단(24단은 승하한 날을 뜻함), 벽돌 개수(1457개)로 1457년 10월 24일 유시(오후 5~7시)에 승하한 단종의 최후를 상징하는 조형물이다. 시계탑 상부엔 엄흥도가 단종 시신을 수습한 후 장사를 치르기 위해 동을지산(영월엄씨 선산)을 헤맬 때 놀라 달아난 노루를 조각해 놓았다. 엄흥도가 단종의 시신을 수습할 당시는 언 땅이어서 장사 지내기 어려웠으나 마침 노루가 앉았던 자리는 온기가 돌아 단종의 장례를 무사히 치렀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원형의 하늘을 하단에, 모가 난 땅을 상단에 배치해 천륜을 어긴 세조의 참극을 신랄하게 비꼰다는 점도 시계탑이 가진 의미 중 하나다. 시계의 숫자에도 뚜렷한 의미를 담았다. 단종의 시신을 거둘 때 대다수가 만류했으나, 엄흥도는 '위선피화(僞善被禍), 오소감심(吾所甘心) : 의로운 일을 하다 당한 화는 달게 받겠다' 말하며 망설임 없이 단종의 시신을 건졌다고 한다. 그 8자에 충심과 도리를 내세운 '엄충의공'(嚴忠毅公)'까지 더한 12자가 시각을 가리키는 바늘 끝에 숫자를 품은 채 새겨졌다.

영화 밖 현실에서 만난 엄흥도의 삶

문경시 엄흥도 후손이 사는 '우마이 마을'의 '상의재'. 배움의 공간이자 제향이 진행되는 서원.

ⓒ 오순미

단종의 시간에서 벗어나 엄흥도의 동상으로 눈을 돌리자 선한 얼굴의 유해진(엄흥도 역) 배우가 겹치며 특유의 유머감이 어렸다. <왕과 사는 남자>는 엄흥도와 고을 주민의 익살스러움으로 시작해 갈수록 무게감을 더하는 영화다. 웃음기를 돌다 어느 순간 눈물을 찍게 만든다. 아는 내용, 아는 결말이라 휴지 한 장 들고 가지 않아 만만한 소맷자락이 눈물을 받아냈다. 소년 군주의 그 깊은 고뇌에 동참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단종 앓이로 이어지게 했다.

엄흥도의 순수한 애정이 그나마 단종 최후의 삶에 원동력으로 작동할 수 있었던 건 얼마나 다행인지.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평범한 소시민 엄흥도의 솔직한 인간미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지점이다. <왕과 사는 남자>는 비운의 군주와 시대를 간결하면서도 따뜻하게 담아냈다. 군주의 역량을 끌어낸 백성과, 백성의 도리에 마음을 다잡은 군주가 일으킨 시너지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본보기가 될 만한 상징적 요소라 할 수 있겠다.

엄흥도 소공원을 나와 좁은 골목 따라 마을 안으로 들어가면 위패를 모신 '충절사'가 나온다. 일요일 아침이어서 단출하고 고요했다. 솟을삼문을 들어서면 손질한 흔적이 역력하다. 맞배지붕에 풍판을 댄 단아한 사당은 옅은 빛을 머금었다. 권력의 감시 따위 두렵지 않았던 엄흥도의 의연한 자세가 충절사 낮은 담장 위에 얹힌 듯한 모습이다. 사당문이 굳게 닫혀 구멍 난 창호지에 바짝 눈을 대니 엄흥도 영정과 촛대, 위패함이 보였다.

엄흥도의 위패를 모신 사당 '충절사'. 문경시 우마이 마을 안쪽에 위치.

ⓒ 오순미

'의를 숭상한다'는 '상의재'는 충절사와 떨어져 마을 건너 옛 의산초교 뒤편에 자리했다. 초입에는 엄흥도를 기리는 신도비가 세워져 있었다. 고직사(서원 부속 건물로 원생의 식사와 빨래를 하던 부속 건물)와 연결된 상의재는 후손들의 강학 공간이자 제향을 지내는 서원으로 경북 문화재자료 302호(충절사와 공동지정)로 지정된 곳이다. 충의공의 숨결이 상의재에 복원·정비되어 향사가 이어지도록 애쓴 후손들의 노력에 영화 속 엄흥도의 선택과 갈등이 겹쳐 보였다.

엄흥도의 굳은 신념이 서린 충절사와 상의재는 우마이 마을의 정신적 지주로 꼿꼿하게 우리를 맞았다. 단종에겐 인간적 도리를, 이웃에겐 촌장의 책임을 저버리지 않은 사람 엄흥도. 그의 유훈을 잇는 마을이 <왕과 사는 남자>를 계기로 세상에 회자되어 충절의 의미를 되새기는 시작점이 되기를 바란다.

왕권을 찬탈 당한 채 유배된 어린 군주와 청령포 마을 촌장의 우정을 풀어낸 <왕과 사는 남자> 덕분에 문경 우마이 마을까지 가게 되었다. 단종의 시신을 수습한 유일한 백성 엄흥도의 삶을 영화와 현실에서 공유하는 순간, 우리는 절의를 지킨 충신 한 사람을 가슴에 품게 될 것이다.

엄흥도 후손이 이룬 우마이 마을 테마소공원 전경

ⓒ 오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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