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동백의 눈물, 푸른 섬의 노래, 낭만적인 밤바다
▲ 섬섬여수 포토존
팔영대교를 건너자마자 만난 적금리 휴게소에서. 뒤로 보이는 다리가 팔영대교, 그 뒤가 여자만이다.
ⓒ 김재근
2월 마지막 토요일, 팔영대교를 건넜다. 고흥군에서 여수시로 한달음에 건너뛰었다. 여수 섬섬백리길, 섬의 느긋한 시간이 시작되었다. 여수가 품은 365개 섬의 비경을 세상 밖으로 끄집어낸 길이다. 적금도와 낭도와 둔병도와 조발도를 징검다리 삼아 화양면으로 연결된다. 백야도에서 돌산도를 잇는 구간까지 완성되면 여수 앞 바다인 가막만을 한 바퀴 온전히 감싸는 해상 일주도로가 탄생하게 된다. 내후년쯤이라 한다.
팔영대교를 건너자마자 만난 적금리 휴게소에서 잠시 걸음을 멈췄다. 카페 창가에 앉아 따스한 차 한 잔 앞에 두고, 건너온 다리와 건너갈 다리를 둘러본다. 북쪽으로는 여자만이 호수처럼 잔잔하고, 동남쪽 멀리 고흥나로우주센터가 가물거린다. 하늘은 시리도록 푸르고 바닷바람은 부드럽게 뺨을 스친다. 매화는 팝콘처럼 하얗게 터져 있다. 남도의 봄은 이미 다리를 건넜다.
시작된 남도의 봄
▲ 여수시내 전경
남산공원에서 바라본 풍경. 가운데 장군도 뒤로 보이는 것이 거북선대교. 좌측이 여수시내 우측이 돌산도이다. 진남관에 들어서기 전 여수시 모습을 제일 잘 볼 수 있다고 하여 들렀다.
ⓒ 김재근
시작부터 함께했던 77번 국도는 화양조발대교를 건너자 화양면 해안을 따라 우측으로 바다를 두고 서쪽으로 달리다가, 세포 삼거리에서 남쪽 해안으로 내려선다. 부산시 중구에서 파주시 문산읍 자유 나들목까지 이어지는 엘(L)자형 대규모 해안국도로, 섬섬백리길이 완성되면 이 구간은 아마도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아름다운 길이 되지 않을까 싶다. 바다 위를 달리는 것이 아니라 바다와 함께 흐르는 기분, 그 여유로울 모습을 마음에 담아 두고 여수의 원도심을 향해 22번 지방도를 타고 북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 진남관
국보 제304호. 70개의 거대한 기둥이 떠받친 지붕이 웅장하다. 국보로 현존하는 지방관아 중 가장 규모가 크다. 보수공사 중 2개의 기둥 흔적이 발견되어 보수공사 후 68개에서 70개로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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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신광장 거북선
내부 관람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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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원도심의 중심이자 역사의 자랑인 진남관(鎭南館)에 도착했다. 남쪽의 왜적을 진압하여 나라를 평안하게 한다는 비원(悲願)을 담은 건물이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전라좌수영의 본영으로 사용했던 진해루가 있던 자리에 세워진 객사다. 이순신 장군 사후에 지어졌다. 현존하는 지방관아 건물 중 가장 규모가 크다. 70개의 거대한 기둥이 떠받치고 있는, 웅장한 목조 건물이 주는 압도적인 무게감은 이곳이 단순한 유적지가 아니라 여수의 정신적 지주임을 말해주는 듯하다.
진남관 바로 앞이 이순신 광장이다. 광장 로터리에 장군의 동상이 바다를 굽어보고, 해안에는 거북선이 위용을 자랑했다. 전라좌수영 백성의 고난과 여순사건의 함성이 일어난 곳이 평화로운 광장이 되었다. 해변을 겉옷처럼 두르고 화사한 바다 내음을 품에 안고서, 찾는 이 모두를 분별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광장이 다정스럽게 다가왔다. 연을 날리고,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산책을 한다.
▲ 딸기찹쌀떡
가게마다 줄이 길게 늘어섰다. 이곳을 찾는 목적이 이것이 전부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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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등천 포장마차
연등천변 주변으로 밤에는 불야성을 이룬다. 연등천의 밤 분위기에 젖어보려고 하루를 더 할애했으나 인연이 되지 않았다.
ⓒ 김재근
눈길을 끈 건 딸기찹쌀떡이다. 가게마다 줄이 길게 늘어섰다. 이곳을 찾는 목적인 것처럼. 가볍지 않은 가격에 잠시 주춤했으나, 결국 기다림의 대열에 동참했다. 한입 베어 무는 순간 기다림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찰떡의 쫀득한 외피를 뚫고 들어가면 단팥의 부드러움이 감싸안은 싱싱한 딸기 과즙이 입안 가득 폭죽처럼 터진다. 쫀득함과 아삭함, 달콤함과 새콤함이 만드는 정교한 조화. 역사와 낭만이 교차하는 광장에서 만난 맛이 풍경처럼 여겨졌다.
광장을 중심으로 해안을 따라 우측으로는 음식문화거리를 지나 연안여객터미널과 수산시장과 연등천 포장마차로 이어지고, 좌측으로는 종포항 하멜등대까지 낭만 해안 길이 펼쳐졌다. 이곳만 다녀가도 여수를 다 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었다.
▲ 고소동 벽화마을
여수에서 가장 오래된 자연부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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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동 천사벽화마을은 진남관 동쪽 언덕에서 존재감을 뽐냈다. 여수에서 가장 오래된 자연부락으로 임진왜란 당시 전라좌수영의 통신용 신호 연을 날렸던 역사 현장이기도 하다. 벽화들은 가파른 골목길을 따라 여수의 옛이야기와 바다 사람들의 삶을 정겹게 들려주었다.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길은 불편함이 아니라, 잊고 지냈던 이웃의 온기를 담은 통로였다. 담벼락마다 새겨진 그림들을 이정표 삼아 오르다 보면, 어느새 발 아래로 여수 앞바다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마을 꼭대기 오포대에서 내려다보니, 고려 태조 왕건이 왜, 아름다운 바다를 뜻하는 여수(麗水)라고 불렀는지 실감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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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동 벽화마을. 이곳 정상인 오포대 오르는 도중. 포토존인 듯 대기 줄이 길었다.
ⓒ 김재근
고소동 골목을 내려오니 허기가 찾아왔다. 즐거움은 식탁 위에서도 이어졌다. 서대회무침과 장어탕. 서대회무침은 빛깔부터가 유혹적이었다. 혓바닥을 기분 좋게 자극하는 새콤달콤함 뒤로 서대 특유의 담백하고 쫄깃한 식감이 따라왔다. 날카로운 첫맛과 부드러운 끝맛, 뜨거운 밥 위에 서대회 듬뿍 얹고 슥슥 비벼내니, 여수의 햇살과 바닷바람이 입안에서 한데 어우러지는 기분이다.
여기에 뚝배기 가득 김을 내뿜는 장어탕은 여정의 노고를 단숨에 씻어내는 위로였다. 바닷장어의 보들보들한 속살은 녹아내릴 듯 연하고, 들깻가루를 아낌없이 넣어 걸쭉하고 구수한 국물이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뜨거운 국물 한 모금이 목을 타고 내려가니 순식간에 마음까지 훈훈해진다.
여수의 보석, 오동도
▲ 오동도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빽빽한 동백나무 터널을 만난다.
ⓒ 김재근
▲ 동백꽃
전설에 따르면 정조를 지키기 위해 바다에 몸을 던진 여인의 피가 꽃이 되었다고 한다. 그 전설 때문일까, 피어나는 붉은 꽃송이들이 말 못 하고 눈빛으로만 전하는 고백처럼 애처롭다.
ⓒ 김재근
오후 여정의 첫머리는 오동도다. 입구부터 나들이객으로 북적였다. 해상케이블카 탑승장이 있는 자산공원과 세계박람회장이 만나는 지점, 차를 세우기도 만만치 않았다. 차보다는 걷는 것이 더 나았을 것이라는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오동도는 섬의 모양이 오동잎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지만, 지금은 동백꽃의 성지가 되었다.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빽빽한 동백나무 터널을 만난다. 전설에 따르면 정조를 지키기 위해 바다에 몸을 던진 여인의 피가 꽃이 되었다고 한다. 그 전설 때문일까, 피어나는 붉은 꽃송이가 말 못 하고 눈빛으로만 전하는 고백처럼 애처롭게 다가왔다. 하얀 등대와 기암절벽, 그리고 숲 사이로 부서지는 햇살은 오동도를 여수의 보석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오동도 입구에서 뜻밖의 장소와 마주했다. 여순사건 기념관이다. 1948년 여수와 순천에서 일어난 비극적 사건, 수많은 민간인이 희생된 현대사의 아픈 상흔이 아카이브가 되어 흐르고 있었다. 손가락 총을 형상화한 포토 존 뒤로 해방 직후의 혼란과 눈물이 겹쳐진다. 다음 행선지인 만성리로 향하는 발걸음에 묵직한 서사 하나를 얹어주었다.
▲ 마래2터널
진입 전 신속통과라는 문구가 실감난다. 1차선 왕복차선으로 운전 도중 차를 세울 수가 없다. 내부 사진을 찍기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 김재근
만성리 해변으로 가는 길목, 바위산이 입을 크게 벌린 듯하다. 마래2터널이다. 왕복 1차로인,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도로터널이면서 일제에 의해 건설된 국내 유일의 차량 통행용 자연암반터널이다. 조선인과 중국인 노동자들이 정과 망치로만 팠다고 한다. 신호를 기다려 들어선 터널, 울퉁불퉁 정으로 쪼아낸 자국이 그대로 남은 거친 바위다. 새가 쪼아먹다 남은 백설기 같은 표면이었다. 교행을 위해서인지 100여 미터마다 대피 공간이 있었다.
긴 터널을 빠져나오면 만성리. 형제묘와 위령비가 맞이한다. 여순사건 진압군에 의해 학살된 125구의 시신을 구별할 길이 없어 커다란 봉분 하나에 모두를 묻고 형제라 불렀던 자리다. 죽어 형제가 된 이들의 무덤 앞에서 시선은 아래로 꺾인다. 이 시린 정적 끝에 펼쳐진 만성리 검은 모래 해변은 그래서인지 애잔하게 다가왔다.
노래 한 곡이 일군 기적
▲ 만성리검은모래해변
원조 여수 밤바다. 검은 모래라기 보다는 약간 어두운 색의 모래였다.
ⓒ 김재근
원조 여수 밤바다. 검은 모래라기 보다는 약간 어두운 색의 모래였다. 방파제 계단에는 수많은 커플의 흔적이 이곳이 원조라는 것을 증명하는 듯했다. 잔잔한 바다엔 점점이 배가 떠간다. 너무 큰 기대를 품고 오면 실망할 수 있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마실 나서듯 들르면 만족할 수 있는 곳이었다.
가수 장범준이 여기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여수 밤바다>(2012년 버스커 버스커 1집 수록곡)의 영감을 얻은 낭만의 산실이기도 하다. 노벨 문학상을 거머쥔 밥 딜런이 대중음악의 가사를 문학의 반열로 격상시켰다면, 장범준은 여수의 밤바다를 낭만이 반짝이는 수평선 위에 올려놓았다.
한 곡의 노래가 지닌 힘은 천 편의 시보다 위대했다. 2012년 700만 명에 머물던 관광객이 2023년 무려 2759만 명으로 불어난 경이로운 숫자는 노래 한 곡이 일군 기적이다. 그래서일까. 여수에는 여수를 먹여 살린 장범준이 방문한 곳이라는 현수막을 내 건 식당이 이미 여럿이라 한다(장범준 이야기는 LS네트웍스에서 발행하는 <보보담> 통권 53호 참조).
▲ 하멜등대
네덜란드인 하멜이 13년간의 억류 생활 끝에 일본으로 탈출했던 항구가 연인들의 성지가 되었다.
ⓒ 김재근
▲ 여수 밤바다
해상케이블카에서 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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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정의 마무리는 낭만 밤바다. 땅거미가 내리자, 여수는 본연의 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종포항 하멜등대가 노을로 물들어 가는 시간, 네덜란드인 하멜이 13년간의 억류 생활 끝에 일본으로 탈출했던 항구가 연인들의 성지가 되었다. 등대는 먼바다를 바라보는 이방인의 그리움인 듯 붉게 타올랐다.
종포 포장마차 거리에 불이 하나둘 켜진다. 바로 뒤 자산공원에서 해상케이블카를 탔다. 거북선대교의 조명이 수면 위에 긴 빛줄기를 드리우고, 밤바다의 불빛이 은하수처럼 흐른다. 환한 꽃을 피워내고 있다. 장범준의 <여수 밤바다>를 듣는다. 가사를 따라 흥얼거린다. "여수 밤바다 이 조명에 담긴 아름다운 얘기가 있어 네게 들려 주고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화순매일신문에도 실립니다. 개인블로그와 브런치에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