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아파트 2층과 4층, 이웃으로 함께 보낸 시간들... 동생의 낡은 신발을 보고 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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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째 동생의 운동화가 눈에 들어온다. 한참 전 동생이 주말에 조카랑 대형마트를 다녀온다고 했다. 다녀와서 집에 놀러 오겠다고 하길래 알겠다고 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동생에게 "신발 좋은 거 샀어?" 했더니, "내 꺼 아니야"한다. "네 꺼 산다고 했잖아" 되물으니 "내 순서는 멀었어"라고 답한다. 아껴 쓰고 절약하는 게 몸에 밴 동생. 간혹 속상할 때도 있다.
동생과 나는 9살 차이가 난다. 동생과 나의 동거 아닌 동거가 시작되고 잠시 끊어지고 한 세월이 벌써 30년이나 되었다. 지금도 진행 중이라고 해야 하나? 시골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동생이 대학교에 원서를 내던 그해. 맏이인 나는 결혼해 서울 성수동 지하방 두 칸에서 첫 살림을 시작했다. 지하방 두 칸에 어른 세 명 앉으면 엉덩이 부딪치는 작은 통로와 개수대 한 칸짜리 싱크대가 전부였다. 등 붙일 방이라도 있어야 도시로 대학을 보낼 수 있었던 친정의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엄마는 동생을 내가 있는 서울로 보냈고, 동생은 대학교에 다니면서 나의 첫 살림집에서 동거를 시작했다.
동생은 이른 나이에 결혼했다. 결혼하기 전까지 나와 같이 지내다 결혼하면서 잠시 헤어졌다. 결혼하면서 동생은 내게 '언니, 내가 다시 언니 옆으로 올게. 좀 기다려봐, 다시 올게' 했다. 헤어지는 게 서운한 말이려니 했는데, 이듬해 아이를 낳고 동생은 시아버지, 남편, 조카 아이와 정말 내가 살던 아파트로 이사를 왔다. 같은 아파트 그것도 같은 동 2층에 동생이 살고, 4층에 내가 살면서 다시 자매의 동거 아닌 동거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서로를 보듬은 우리들
▲ 동생의 낡은 운동화
동생의 낡은 운동화가 영 마음에 걸렸다. 새 운동화를 신고 출근할 동생을 생각하면 흐뭇하다.
ⓒ 김희
2층과 4층을 오가며 동생은 우리 아이 둘과 조카 아이, 이렇게 셋을 양육하고 출퇴근하는 언니의 살림까지 대신 해줬다. 그렇게 아래 위층으로 동생과 같이 살면서 지지고 볶는 일들이 참 많았다. 그렇게 30년의 세월을 같이하며 동생은 나의 희로애락을 곁에서 지켜봤다. 이제는 남편보다 나의 가려운 곳을 더 잘 긁어준다.
재주 많고 눈치도 빠른 동생이 집에서 살림만 하는 게 나는 늘 마음에 걸렸다. 밖으로 나가 직장에 다니면 좋을 텐데 하는 속내가 있어도 각자 삶의 방식이 다르니 외동딸이 다 클 때까지 직접 양육하겠다는 동생의 확고한 신념은 존중하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살면서 언제나 든든한 내 편, 아군이 있다는 건 행운이다. 일단 한 수 깔고 들어간다. 나에게 동생은 그렇다.
퇴직하던 날, 동생이 유명 커피숍 상품권 10만 원짜리를 카카오톡 선물하기로 보내주면서 '언니, 나는 돈이 없어 퇴직 선물 큰 거 못 해줘, 이거로 커피 한 잔 마시고 언니 좋아하는 책도 보고 글도 쓰고 해. 언니는 충분히 쉴 자격 있어 그동안 수고했어'라고 했다. 가성비 따지며 집에서 내려 먹는 드립커피 대신 카페 가서 사람 구경하며 시간 보내라는 마음을 담은 배려의 선물이다.
외동딸 하나를 다 키워 놓고 뒤늦게 동생은 취업 전선에 뛰어들어 직장을 다니고 있다. 적은 월급이지만 '이런 일자리 없다'며 사람들과 어울리며 돈 버니 좋단다. 늘 알뜰히 살다 직접 돈 벌어도 늘 우선순위는 하나 뿐인 딸과 남편이었다. 후순위로 밀린 동생의 운동화가 영 마음에 걸린다. 내년 겨울 패딩 하나 사 입으려 깊숙이 넣어둔 상품권(퇴직하면서 받은 선물)을 꺼내야 하나 그러기를 며칠. 지난 6일, 퇴근하고 온 동생에게 상품권 한 장을 내밀었다.
"꼭 가서 네 운동화 사서 와."
"괜찮아. 아직 신을 만해."
돌아보면 지난 세월 동생과 나는 늘 이랬다. 직장 다니며 애 둘 키우는 언니를 위해 집안 일 하나라도 더 해주고, 같이 마트에 장이라도 보러 가면 넉넉지 않은 주머니 사정을 아니 조카에게 담고 싶은 거 3개 담으라고 해서 대신 계산해 주며 말이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삶을 살아내면서 서로를 보듬었다.
새 신발을 신고 씩씩하게 출근할 동생을 떠올리면 슬그머니 미소가 지어진다. 눈에 보인다. 어떻게 걸어갈지... 동생과 나는 앞으로도 딱 지금처럼, 소소한 일상을 나누며 같이 늙어갈 거다.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아무래도 우리는 전생에 같은 방을 쓴 무수리였나 봐."
덧붙이는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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